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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트 - 빨간 모자 소녀를 사랑한 꼭두각시 인형의 슬픈 이야기
이우성 글, 최영미.김영미 그림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예전엔 읽었던 안도현님의 시가 생각난다.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그 강렬한 꾸짖음과 깊은 생각에 놀랐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마리오네트]의 서평을 작성하며 왜 이 시가 떠올랐는지 나조차도 의아하지만,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열정과 사랑 그리고 감동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앞에서 나는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책을 처음 받았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갱지에 싸여 있던 택배를 풀어 그 안에 있던 [마리오네트]를 꺼내들기까지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슬로우 무비의 한 장면처럼 여러 번 여러 번 되뇌어 본다. 너무나 예쁘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 표지를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한 장씩 넘기기 시작한 그 이야기들은 참으로 아름다워 오래도록 식어있던 나의 가슴을 조금씩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부러진 팔을 가진 채로 한쪽 구석에 버려져있던 인형과 인형사인 소년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추던 인형의 수줍은 사랑. 어쩌면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인형의 빨강모자 소녀에 대한 사랑은 쉬 지나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했기에 이렇게 책으로도 나오고 그 이전에 비보이 퍼포먼스라는 위대한 예술로 태어난 것이라 믿는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한 사람을 이렇게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빨간 모자를 쓰고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던 그 소녀가 아가씨가 되고 아이엄마가 되고 마침내 할머니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기까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소녀만을 바라보던 그 아름다운 사랑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감정이 사랑이라면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짧지만 적지 않은 양의 글들과 그림들을 보며 잊고 있던 나의 뜨거운 심장을 기억해냈다. [마리오네트]를 읽으며 차오른 눈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져 다시 데워준 나의 이 심장을 이제는 잊지 않고 살아가야지.
이토록 변치 않은 오랜 마음으로 한 사람만을 사랑한 인형이라면 한 번쯤 연탄을 걷어 차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에 홀로 웃으며 끊이지 않는 감동의 물결자락을 손으로 가만히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