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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개미지옥 -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빨갛고 예쁜 꽃이 피어있는 지붕 아래 여러 명의 여자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모두들 거울을 보느라 혹은 물건을 만져보느라 바쁜 모습이다. 확실히 백화점 건물은 사람을 많이 끌어 들인다. 양귀비 같은 독성으로 손님들의 생활 속 깊은 곳으로 침투하여 잠시 망설일 겨를도 없이 혼을 쏙 빼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백화점을 싫어한다. 친절한 인사와 살살거리는 태도로 간도 빼줄 듯이 굴다가 카드를 긁고 돌아서면 남이 되는 그런 기계적이고 이중적인 모습들이 너무나 싫어서 될 수 있으면 가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견물생심이라고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이기에 과소비를 피하기 위해 언제나 백화점은 나의 가장 조심해야 할 곳 이었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은 그런 백화점을 소재로 하여 그 안에 있는 대여섯 명의 각기 다른 상황을 그려내고 우리시대의 썩어 문드러진 물질만능주의를 뚝뚝 건드려 그 고름을 터트리는 소설이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와 모두가 한 번쯤은 공감해 보았을 그런 경험들은 알 수 없는 동질감과 유대감을 갖게 한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은 주인공이 누구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휴학하고 백화점에서 장기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소영, 예뻐지고 싶은 욕망으로 극심한 다이어트 증후군에 시달리는 지영.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죽기보다 창피한 미선, 매장에 자주 오는 손님과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갖게 된 정민, 이들에게 자신의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러 백화점에 오는 현주, 그리고 상품권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영선까지... 백화점에 있는 이들의 인생은 하나같이 다양했다. 각기 다른 사정과 사연들이 그들의 노곤한 삶을 표현해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었다. 바로 돈. 물질만능주의 아래 힘없이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에 불과한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해 살아간다. 당연히 보기 안 좋은 모습들이지만 솔직히 우리 모두가 돈의 노예는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우리 역시 무이자란 말에 혹해서 무리한 구매를 하고 한 달 후에 나온 카드명세서에 기절 직적까지 가본 경험이 있고 돈을 벌기위해 나쁜 일을 해볼까 생각해 본적이 있으며 친구가 산 명품가방이나 화장품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돈인 것이다.
숨 막히도록 빨리 달리는 100미터 경주처럼 이 소설을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우리를 백화점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여러 여인들을 만나게 해준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우리 누구라도 그들 중 한 명과 같은 수 있다는 비참한 현실에 눈뜨게 해주며 돈에 발목이 잡혀 이도저도 못하는 생활을 조심하라는 따끔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마다 가로채서 먼저 사가는 현주의 카디건을 빼앗으려다 살인까지 저지르는 영선의 모습이나 백화점 앞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하며 착하고 성실한 척 하는 노인이 매춘을 알선하고 사채까지 내어준다는 그런 부분들은 우리 사회를 풍자하기 위한 조금 과장된 표현들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아... 물론 내가 모르는 암흑세계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부분들만 빼면 훌륭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백화점이라는 하나의 장소만으로도 이토록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과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잘 살려낸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아... 여인들이여~ 돈의 노예가 되지 말자. 그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돈과 동등하게 살아가자. 돈이 우리를 지배하는 상황은 참으로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