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린이의 문장
지은이: 정혜영
펴낸 곳: 흐름출판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탤런트 고두심 아주머니를 닮았던 담임 선생님은 유난히 글쓰기를 강조하셨다. 매일 일기를 써서 검사받지 않으면 혼나는 분위기라 울며 겨자 먹기로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어느덧 한 권, 두 권 늘어나 5학년이 끝날 때쯤 8권이 되었다. 처음엔 어른에게 일기를 보여준다는 부담감에 알맹이 없는 일상을 기록했지만, 계속 쓰다 보니 내키는 날에는 솔직한 마음이나 친구 관계에서 느낀 감정들을 적었다. 늘 "우"였던 점수가 그럴 때면 늘 어김없이 "수"로 바뀌었다. 일기에 점수라니 지금 생각해도 좀 황당하지만, 그 시절엔 거의 그랬다. 《어린이의 문장》을 쓴 작가 정혜영 선생님처럼 짧더라도 글에 관한 감상을 남겨줬다면 어땠을까?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그간 잊고 있던 추억들이 방울방울 맺힌다.
어린이의 글은 잊고 있던 나를 일깨운다.
꾸준하게 글쓰기를 장려하는 23년 차 초등학교 선생님이 모은 어린이의 문장으로 어른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하는 에세이. 아이들은 바이킹 맨 끝에 탔던 긴장감과 두려움을 배가 간질간질했다고 표현하고, 70% 할인해도 떡볶이가 팔리자 않자 사람들이 양심이 없다며 투덜거린다. 솔직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표현에 나도 모르게 키득키득. 상황의 흐름과 감정이 빠진 아쉬운 글은 잘못됐다고 무턱대고 고치지 않고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채우고 이어서 더 멋진 글로 완성할 수 있게 돕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과 함께라면 미래에 멋진 작가가 여럿 탄생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글로 위로받은 가장 큰 수혜자는 자기였다는 선생님의 고백에 동심을 잃었던 어른 독자 마음은 울컥 뭉클해진다.
나에게 관대함과 애정을 선사하는 행복한 순간
"어린이의 마음을 만나 잊고 있던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현재의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그간 살아온 나의 길을 되돌아본다.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혹은 자포자기로 방치했는지, 때론 왜 미워하기까지 했는지. 때 묻지 않은 어린이의 문장과 인자한 선생님의 글을 마음에 담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나, 청소년이었던 나, 어른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렸던 대학생 시절의 나, 그리고 화살처럼 스쳐 간 세월에 어느덧 이 나이가 된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잣대와 판단도 들이대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지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좀 더 단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마주한 시간. 가슴이 간질간질한 이 기분 좋은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해야지.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