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지은이: 로저 에커치 / 옮긴이: 조한욱
펴낸 곳: 교유서가
우리에게 밤이란 어떤 존재일까? 인류 역사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간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밤. 돌이켜보면 밤은 아름다운 경외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 출처를 알 수 없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온몸의 감각이 또렷해지는 밤. 과거의 사람들에게 밤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중세 말부터 산업 혁명 이전까지 유럽 전역과 미국에 드리웠던 수많은 밤에 관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며 20년 넘게 집필한 책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이 책에서 그들의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2016년에 국내 첫 출간 후, 더 예쁜 표지로 돌아온 개정판! 고요한 밤의 바다를 유유히 누비는 듯한 몽환적인 표지가 마음을 사로잡는 이 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밤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밤, 두렵지만 신비롭고 매력적인 시간!
밤의 문화는 결코 획일적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태도와 인습은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주류였던 시절엔 밤을 유난히 두려워할 이유가 많았다고 하는데... 인류는 오랜 시간 어둠을 죽음과 동일시해왔다. '밤은 악령에 속한다'라는 한 속담이 경고하듯, 중세인들은 밤을 사탄의 계획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라 믿고 두려움에 떨며 경계했다. 인간이 벌인 약탈, 폭력, 방화와 단조로운 삶 그리고 빈곤은 최악의 유혈 사태를 빚어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니 밤에 순찰하며 특정 시간에 소리를 질러 도시를 깨우고 밤을 경계하게 하는 밤의 경찰 '야경'은 어쩌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벌벌 떨며 집에 틀어박혀 있기만 했을까? 우리나라에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답이 나올 듯하다. 수백 년 전에도 밤은 은밀한 사생활을 벌일 유혹의 시간이자 추가적인 수입을 위해 야근을 하기도 하는 번외의 시간이었다. 밤이 지나도 가장 고되게 일하는 노동자에 여성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맥주와 치즈를 만들기도 하고 실잣기, 뜨개질, 양털 다듬기, 천 짜기 등의 일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과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어쩜 이리 똑같은지!

밤, 밤, 밤. 그리고 또 밤
종교적, 사회적, 심리적 이유로 밤에 관한 두려움이 컸던 시절이지만, 수백 년 전에도 밤 문화는 당연히 존재했다. 농부들은 밤낚시를 즐기기도 했고, 중산층은 카드놀이, 주사위놀이 같은 노름을 즐겼으며, 예상할 수 있듯이 술과 남녀 간의 만남도 부지기수였다. 밤은 모든 낭만적 관계를 위한 풍요로운 시간이었기에! 책을 덮으며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왔다. 여러 고증 자료와 다채로운 그림을 통해 만나는 과거의 생활상, 그리고 밤에 관한 태도와 분위기는 사뭇 새로우면서도 현재와 매우 비슷했다. 편지나 회고록 같은 개인이 남긴 자료와 법률 자료 같은 공적인 문서를 적극 활용하여 그 시절 다양한 계층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자세히 서술한 책이니, 근대의 문화, 특히 밤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에겐 이 책이 특별한 선물이 될 듯. 문득 내가 보내고 있는 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