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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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밀회

글쓴이: 윌리엄 트레버

옮긴이: 김하현

펴낸 곳: 한겨레출판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소설집 『밀회』를 만났다. 사랑에 관한 강렬하면서도 애잔한 12가지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라는 이름도 이름이었지만, 아름다운 표지와 백수린 작가의 추천사 덕분에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창문을 열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한 여인의 뒷모습. 창밖을 향해 잔뜩 기울인 몸과 함께 펄럭이는 드레스는 사랑하는 이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갈 여인의 다음을 상상하게 한다. 백수린 작가는 이 책을 향해 이런 찬사를 보냈다. '트레버는 이 소설들을 통해서 누구나 마음속 깊이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그 비밀이 우리를 끝내 고독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놀랍게도 트레버 덕분에, 그 고독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윌리엄 트레버가 전하는 사랑이란...

 

이 책이 단편집이란 걸 모르고 읽더라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각 줄기를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사연들이란 걸 눈치챌 만큼 윌리엄 트레버의 색이 진하게 배나니까. 삶, 사랑, 상실, 이별, 과거와 현재... 그가 말하는 사랑은 핑크빛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첫사랑과는 거리가 멀지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올리면 그 뭉클함에 목이 메 울컥할 그런 감정이다. 23년의 애정 없는 결혼 생활 끝에 죽은 남편을 향해 원망 어린 투정을 쏟아낸 아내, 기숙 남학교 식당의 나이 지긋한 가정부와 사춘기 소년 사이에 오가는 아리송한 상상, 미적지근한 소개팅을 끝내고 돌아섰지만 스스로에 대한 존엄으로 은밀한 즐거움을 즐긴 남녀, 책을 좋아하는 인연으로 만나 사랑했던 여인의 유산 상속을 포기하려는 남자,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이자 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했던 여인과 이별하는 남자.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이 지닌 다채로운 색상의 무한함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윌리엄 트레버가 전하는 무채색의 사랑에는 잔잔하고 애절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에밀리는 기도를 올렸다.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랫동안 자신을 모욕한 이 남자의 구원을 빌었다.

두려움이 에밀리가 말한 사랑을 고갈시켜 껍데기만 남았지만,

방문객 앞에서 그랬듯 에밀리는 사랑의 잔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슬퍼할 수 없었고, 애도할 수 없었다.

너무 적은 것만이 남았고,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밀회』, '고인 곁에 앉다' 중에서...

 

 

 

윌리엄 트레버의 『밀회』에 관한 단상...

 

솔직히 고백하자면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심지어 행간에서도 진중함과 진심이 묻어나는 글이었달까. 복잡한 심경으로 그의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밤하늘의 별처럼 가슴에 촉촉 스며드는 뭉클함이 따스하게 온몸을 감싼다. 굳이 다 보여주지 않아도, 일부러 세차게 몰아치지 않아도,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자신만이 뿜어낼 수 있는 오라로 독자를 하염없이 끌어들이는 윌리엄 트레버. 격정적으로 휘몰아치지 않아도 이 역시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로맨스 소설책 추천으로 이 책을 권하면 누군가는 쓴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 하나 하나에 짙게 깔린 감정은 조금씩 다르긴 해도 분명 사랑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의 글을 더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까? 더 많은 읽고 더 많이 쓰며 한층 깊은 독서력을 갖춰야 가능하지 싶다. 그 여정이 쉽진 않겠지만, 문학성 넘치는 이 작품들을 온 마음으로 느낄 순간을 그리며 또 그의 책을 찾으리라. 때론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로 잔잔하게 흘러갔던 이야기 중에 훔치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다. 가슴 한구석에 묻어둔 추억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12개의 단편 소설. 머지않은 날 이 책을 다시 집어 들 것만 같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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