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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평점 :

제목: 기만의 살의
글쓴이: 미키 아키코
옮긴이: 이연승
펴낸 곳: 블루홀식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블루홀식스의 신간, 게다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작가 미키 아키코의 첫 작품을 만났다. 『기만의 살의』. 제목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자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기만(欺瞞): 남을 속여 넘김
살의(煞意):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자어로 그 뜻을 찾아보자 제목의 의미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남을 속여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 『기만의 살의』라... 이 얼마나 제목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인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55년 전인 1966년,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이 발생했다. 후쿠미시의 명문가 니레 가문의 선대 당주 니레 하루시게가 급사한 후, 죽은 지 35일째에 치르는 오칠일에 가족과 주요 사업 파트너들이 저택에 모인다. 당시 저택 안에 있던 사람을 가정부를 포함해 총 열 명. 재를 마치고 원탁에 둘러앉은 이들은 각자 자기 앞에 준비된 커피 혹은 보리차를 마시며 고구마 맛탕을 집어 먹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던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니레 가문의 큰딸 사와코가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 가고 설상가상으로 니레 가문의 후계자이자 사와코와 하루시게의 양자로 편입된 일곱 살 요시오가 독이 든 초콜릿을 먹고 죽는다. 사와코도 목숨을 잃어 두 명이 죽은 상황. 고의로 표적 수사를 벌인 경찰은 사와코의 남편 하루시게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사형을 피하고자 죄를 자백한 그는 40년이 넘는 옥살이 끝에 마침내 세상에 발을 내디딘다. 이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하루시게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는 한편, 사랑했던 연인인 처제 도코에게 이런 저런 정황을 알리는 서신을 교환하며 전개된다. 과연 하루시게의 인생을 산산히 조각낸 진범은 누구일까?

『기만의 살의』, 이 소설을 가장 재밌게 읽는 팁!
팁 하나) 가족 혹은 사업과 관련된 주요 파트너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이래저래 얽히고설킨 끈끈한 관계이기에 이들이 서로 어떤 불편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아는 게 범인을 추론하는 데 관건이다. 책 첫머리에 실린 식당의 자리 배치를 종이에 옮겨 적고 각 인물에 관해 메모하며 읽으면 더 빨리 그리고 깊이 이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팁 둘) 하루시게와 도코 사이에 오간 총 다섯 통의 서신에서 힌트를 발견해보자. 사춘기 소녀처럼 널을 띄는 하루시게의 불안정한 감정에 처음엔 의아하다가도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아하!'라고 외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두 노인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처음엔 살짝 지루할 수 있지만, 점점 흥미로워지니 매 순간 집중할 것!
팁 셋)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맨 처음으로 돌아가 사건이 발생한 전후 상황을 다시 읽어보자. 그 순간, 드디어 누군가의 '살의'를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모두 다 의심스러웠지만, 진실을 알고 난 후엔, 정말 범인의 일거수일투족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다.

감상
동상이몽.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자 딴생각을 함을 이르는 그 말이 자꾸 떠올라 상당히 씁쓸했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은 이토록 다를 수 있음을... 아니, 이건 개인의 차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이뤄질 것 같았던 두 노인의 로맨스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40여 년간 옥살이를 하며 진범이 누구일까 골몰한 하루시게와 추리 소설 마니아였던 도코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펼치는 추리는 상당히 흥미롭다. 서로의 허점을 찌르며 각자 다른 진범을 지목했다 철회하기를 반복하며 대체 이 소설의 끝은 어디로 흘러갈지 점점 궁금하고 안달하게 만드는 소설.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마침내 한숨을 내쉰 후에,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영화 마블 시리즈의 쿠키 영상처럼 등장한 마지막 진실이 어퍼컷을 날린다. 그 강펀치에 제대로 맞는다면 그대로 녹다운! 자신의 이익을 좇아 지리멸렬하게 펼쳐진 명문가의 썩어 문드러진 속사정에 고개를 휘휘 젖다가, 결국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살의'는 대단한 동기가 아닐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40년의 세월을 잃어버린 남자의 그 한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을까? 눈앞의 내 사람이 진정 내가 생각한 그 사람이 맞는지?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