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 뼈의 방

지은이: 리옌첸

옮긴이: 정세경

펴낸 곳: 현대지성

 

 

 

 학창 시절, 과학실에 가면 하나쯤 있는 그 해골 표본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수업 중에 어쩌다 과학 선생님 심부름으로 혼자 과학실에 다녀와야 할 때면 어찌나 난감했던지!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하고 후다닥 뛰어 들어가 급하게 프린트물만 챙겨서 다시 뛰쳐나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런 내가 성인이 된 후 미국 수사물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건 참 아이러니하다. 특히 <본즈, Bones>라는 드라마를 참 좋아했는데, 여느 수사물과 달리 이 드라마는 수습한 유골을 연구하며 살인 사건을 풀어낸다. <본즈>의 주인공, 템퍼런스 브레넌 박사란 캐릭터의 직업이 바로 법의인류학자다. 검시관과 법의학자보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직업. 오늘은 『뼈의 방』이라는 책을 통해 그 직업 간의 차이와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다양한 진실을 만나보았다. 뼈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이야! 유골을 수습하여 유가족에게 돌려주는 일부터 산업혁명 당시 안전에 관한 무지로 처참하게 건강을 잃은 사람들, 수십 명을 암매장한 집단 무덤과 죽음을 마주하는 법까지. 뼈가 들려주는 수많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다 보면 시공간을 초월한 특별한 여행이 펼쳐진다.

 

 

 

 '법의인류학자의 임무는 뼈를 분석하여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법의학자는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의 종류와 사망 원인을 관찰해낸다. 법의학자는 연조직이 남아 있는 시체를 주로 다루지만, 법의인류학자들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시체를 다룬다. 심지어는 미라화된 시체를 접하기도 한다.' 뼈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어쩌다 죽음을 맞이하게 됐는지 상세한 증거가 남아 있다. 독극물인 줄도 모르고 납으로 만든 화장품을 사용하거나, 성냥 공장에서 아무 안전 조처 없이 인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들의 사연은 참으로 안타깝다. 1912년에 2,200명 이상을 태우고 출항했던 타이타닉호는 빙산 충돌 후, 700명만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1,500명의 시체는 어떻게 됐을까?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시신은 최대한 수습하고 도저히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160구의 시체는 천으로 싼 뒤 쇳덩이를 달아 바다에 가라앉혔다고 한다. 저자는 세월호의 안타까운 사연도 이 책에 실었다. 가장 끔찍했던 이야기는 슈아족의 풍습 '싼사'였다. 적의 영혼을 머리 안에 봉인하는 의식으로 두개골에서 피부를 분리한 후 한참 끓여 작은 크기로 수축되면 그 머리에 돌이나 모래를 채워 넣고 건조한다. 전체 과정은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데, 슈아족은 그 과정을 거친 완성품은 숲에 던져 버리거나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주었다고 한다. 1960년에 그 풍습은 끝났지만, 작게 수축시킨 머리를 구하려는 수집가들이 있어 암매장에서 공공연히 거래가 이뤄지고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벌어지기도 한단다. 맙소사!

 

 

 


 

 

 

 

역사적 배경, 정치, 종교는 달라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죽음은 한결같은 답을 준다.

바로 뼈 너머의 인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뼈의 방』 p37 중에서...

 

 

 

 단순히 뼈에 얽힌 사건 경위만 다룬 흥미 위주의 글이었다면 이 책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을 거다. 저자는 뼈에 얽힌 이야기를 넘어 살아생전의 고인과 남은 유가족의 애타는 심정까지 보듬는다.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휴머니즘과 출신과 계급을 떠나 고인을 존중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기심이 팽배한 요즘 세상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인간의 선한 본성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깨워주는 느낌이랄까?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와 무연고 처리된 유골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음을 기억해주길 당부하는 저자의 어진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참혹하고 안타까운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수많은 유골을 마주했을 저자. 그녀의 복잡한 심경과 마지막 대화 상대이자 인도자로서 어떤 마음으로 그 유골을 대했을지 너무 잘 와닿아서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뼈에 얽힌 사연과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까지 두루 둘러보게 하는 저자의 글은 그 어떤 호소보다도 강력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추리나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두말할 것 없이 흥미진진하게 읽을 책이지만, 사실 이 책은 누구나 꼭 두세 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뜨겁게 뛰는 심장을 느껴보고 싶은 당신이라면 더욱더!

 

 

현대지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감명 깊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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