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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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학자의 노트

글&그림: 신혜우

펴낸 곳: 김영사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을 앞두고 소박한 베란다 정원을 점검했다. 겨우내 추위에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아이의 빈 화분도 있고 병충해로 고생 중인 환자도 있다.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며 공중에 뿌리를 내리는 녀석, 꽃 한 송이를 소담하게 드러낸 수줍은 친구, 건강한 푸른 잎을 자랑하는 씩씩한 장군까지 소박하지만 다채롭고 풍성한 베란다 정원은 나만의 소중한 보물이다. 마음이 힘들었던 시절, 식물이 심심한 위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욕심내어 반려 식물을 늘렸던 적도 있다. 결과는 참담했지만, 식물이 속삭이며 선사한 그 싱그러운 나날의 행복한 추억은 여전히 내 가슴에 살아 숨 쉰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심성이 못될 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동지를 만나면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 한데 이번엔 동지를 뛰어넘는 스승을 만났다. 전문적으로 식물을 공부하고 멋지게 그려내는 식물학자 신혜우 씨. 그녀가 쓰고 그려 담아낸 『식물학자의 노트』는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막연하게 따라 그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보태니컬 아트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임을 이제야 알았다. 식물 그림은 식물 종에 대해 깊이 조사하고 전 생애를 관찰하여 최소 1년에 걸쳐 제작된다니! 관찰해야 할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라도 하면 다음 해를 기다리기 일쑤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니, 그간 '예쁘다'란 탄성만 연발하며 감상했던 식물 그림이 얼마나 고된 노력으로 빚어낸 예술품인지 깨달았다. 더럽고 없애야 할 존재라 여겼던 곰팡이가 난초의 모든 생애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다니 맙소사! 물론 집안에 핀 곰팡이와는 다른 종이겠지만, 그간 곰팡이를 홀대했던 게 슬그머니 미안해졌다. 손대면 톡하고 터져버리는 열매를 가진 봉선화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한다. 이런, 우리는 왜 봉선화의 애절한 부탁에 귀 기울이지 않았나! 꽃이 밤에 지고 낮에 피는 달맞이꽃과 반대로 낮에 피고 밤에 지는 낮달맞이꽃도 있다고 한다. '대마초'부터 떠올리게 하는 대마의 줄기가 삼베를 만드는 재료라는 건 금시초문. 연못을 온통 뒤덮었다가 겨울이 되면 사라지는 개구리밥은 죽은 것이 아니라 씨앗 같은 겨울눈을 만들어 동면하고 있는 거라고 한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꽃이 노란 유채꽃이라면, 독도를 대표하는 꽃은 바위틈에서 자라는 해국이라도 한다. 척박한 땅에서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버터낸 그 뚝심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우리의 모습 같아 괜스레 가슴이 찡하다. 식물은 냄새를 못 맡을 거라 생각했는데 냄새를 맡는 식물도 있다고 한다. 식물의 세계가 이토록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니. 효녀 심청이 덕에 눈을 번쩍 뜬 심 봉사처럼 새로운 세상에 눈뜬 나는 더없이 즐겁게 이 책을 즐겼다.

 

 

 

 

 

 

 학술적인 전문 지식이 담긴 글이지만 전혀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학명이 나올 때면 곧이어 쉬운 설명을 따라 붙이고 그 식물에 얽힌 자신의 추억도 슬그머니 공개하며 지루할 틈 없이 재밌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매력적인 식물학자 신혜우 씨. 식물에 관한 진심도 진심이지만, 직접 완성한 다양한 식물 그림이 충격적일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작은 꽃잎, 뿌리 한 줄기까지 온 마음을 다해 그려낸 그 정성과 노력에 감탄하며 이 찬란한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만날 수 있는 이 순간이 행운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식물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슴 뭉클하게 감상한 이 책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자주 펴보고 싶은 소중한 벗이자 보물이다. 손재주는 없지만,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태니컬 아트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동고동락하는 반려 식물의 멋진 초상화를 완성할 그 날까지 찬찬히 노력해보자. 꽃잎 한 장, 줄기 하나를 그릴 때마다 이 책 『식물학자의 노트』가 선사한 뭉클한 설렘이 떠오를 듯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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