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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제목: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글쓴이: 사쿠라기 시노
옮긴이: 이정민
펴낸 곳: 몽실북스
가족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다가, 자식은 나이가 차면 다른 누군가와 결혼하여 또 하나의 가족을 꾸린다. 피가 섞여야만 가족인 것인지, 아니면 남이라도 오랜 세월 서로 아끼고 위하면 가족이 되는지... 한때는 가족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고 지켜주고 싶은 작은 생명이 태어나 부모와 자식이 되고, 그 자식이 성장하면 다시 둘이 되는 부부. 남과 남이었던 사람이 피를 나눈 혈육보다 더 끈끈하게 아끼며 살아가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경이롭고 축복받을 귀한 일이다. 이번에 읽은 몽실북스의 신간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에는 그런 가족의 시작과 그 가족이 탄탄하게 여물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천천히 단단해지며 오늘도 부부가 되어 가는 노부요시와 사유미.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영사기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노부요시는 아내인 사유미를 사랑하지만,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간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사유미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껴 쓰고 살뜰하게 살림을 꾸리는 것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시나리오 출품에 도전하지만, 어째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 일주일에 한 번, 먼 곳에 있는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어머니 데루의 성화에 노부요시는 부담과 피로를 느낀다. 어김없이 병원에 나선 어느 날, 데루는 비싼 장어덮밥을 먹자고 한다. 노모의 지갑에 기대야 하는 노부요시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마음과는 달리 맛있게 장어덮밥을 비워내고 두 사람은 잠시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이야.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노부요시는 아내마저 오지 말라며 홀로 조촐히 장례를 치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었다.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과 세월의 무상함에 씁쓸함이 밀려올 때, 잔잔한 듯 불안했던 부부의 삶에 조금씩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난 그 집이 참 좋았는데. 어머님이 늘 돌아가신 아버님과 함께 있다는 생각으로 사셨던 게 느껴졌거든. 같이 슈퍼에 갔을 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머님은 줄곧 그 집에서 아버님과 함께였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
"식료품을 매번 2인분씩 사셨잖아."
혼자서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이 장을 본 것과 폐기한 식료품이 죽은 아버지 몫이었다는 말에 숨이 턱 막혔다. 1년 전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실이 노부요시의 몸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p132~133중에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자식은 없다. 세일 코너에서 먹지도 못할 만큼의 식료품을 샀던 어머니. 그게 설마 돌아가신 아버지의 몫일 줄이야. 자식도 아닌 며느리가 풀어낸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나니 코끝이 찡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직업이 없는 노부요시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유미의 어머니는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노부요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반드시 온다. 노부요시는 장인의 도움으로 영화 관련 기사를 쓰는 작가 오카다의 조수로 들어가 어엿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 누구나 감춰둔 비밀은 있다. 일자리를 소개받은 노부요시는 장인어른의 은밀한 취미 생활을 알고는 당황한다. 그건 장인어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을까? 때로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중년의 노총각 오카다는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 지켜달라는 여인과 진지한 만남을 갖게 된다. 사랑은 불안과 안심의 반복이다. 노부요시의 여자 동창을 신경 쓰던 사요미는 남편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런 사요미를 노부요시 역시 변함없이 사랑한다. 찰랑찰랑 따스하게 차오르는 이야기의 마침표를 눈에 담고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부부라는 이름으로 만나 서로를 알아가며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 내 짝이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오늘도 탄탄히 부부가 되어 가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행복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