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특별한 우울 - 우울증에 걸린 정신과 의사의 치료 일기
린다 개스크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당신의 특별한 우울

지은이: 린다 개스크

옮긴이: 홍한결

펴낸 곳: 윌북

 

 

 '우울'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시절이 있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20대. 찬란한 청춘이었지만, 사회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자주 시무룩해지고 자존감도 낮아졌던 것 같다. 내 우울감의 기저에는 가난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여리고 약한 심성도 한몫 거들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선택해야만 했다. 계속 이렇게 살 것인지, 우울감의 원인을 뿌리 뽑고 행복한 삶을 꾸릴 것인지. 당연히 내 선택은 후자였고, 오직 내일을 향해 열심히 달린 오늘이 모여 지금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때의 감정을 돌이켜보면, 우울증이 아닌 우울감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순간의 감정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울'이란 감정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그 감정에 얼마나 나를 내어주느냐에 따라 득이 되거나 실이 된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될 정도로 심해지면 사람들은 정신과 전문의를 찾곤 한다. 비싼 상담료를 내고 주어진 시간에 마음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고 약도 처방받고... 한데, 우리가 뱉어낸 그 말은 모두 어디로 갈까? 말에는 힘이 있어서 절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은 고스란히 듣는이에게 옮겨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들은 괜찮을까?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정신과 의사도 우리와 같은 나약한 사람이며, 그들도 얼마든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 린다 개스크는 어린 시절부터 행복하지 않았다. 찌든 가난, 아버지의 불안정한 직업, 남동생의 정신질환, 딸을 보듬기보다는 질투의 대상으로 여기는 어머니. 집안에는 늘 일상적인 불안감이 감돌았다. 린다는 이런 성장 경험이 의사로서 환자들과 공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지만, 한편으론 독이 되어 마음을 잠식당했다. 불안감을 다스리려는 노력의 하나로 일찍 결혼했지만, 사랑보다는 비즈니스 파트너 같은 그 관계는 린다의 외도로 7년 만에 파국을 맞는다. 유부남이었던 상대는 함께 살자는 약속을 깨버린 채 가정을 돌아가고, 그로 인해 린다는 오래도록 고통스러워한다. 남편과 애인을 잃은 후, 채 낫지 않았던 상처가 상실의 아픔 때문에 다시 드러난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난 후에야 린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한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꼭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린다의 심리치료사 E가 함께했다. 린다는 E에게 품었던 특별한 감정을 글에 여과 없이 실어냈고, 린다의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알기에 훗날 E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뜻밖의 상실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가슴에 남아 우리를 오래도록 괴롭힌다. 린다가 겪은 아픔을 통해 남이 아닌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정말 필요한 약은, 운명이라 생각했던 길에서 완전히 탈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에 깨달았지만, 삶이라는 열차가 탈선하여 내달리는 그 혼돈의 순간에는 때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앞으로 무엇을 바꾸면서 살아야 할지, 그리고 자신을 옥죄는 자신과 남들의 기대는 온당한 것인지, 너무 늦기 전에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다. 그런 의문에 답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목표는 이룰 가능성도 높은 법이니까.' - p101

 

 

 

 

 린다는 다행히 좋은 짝꿍을 만나 두 번째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2년마다 우울증 재발을 겪으며 지금까지 20년 이상 항우울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해왔다. 린다는 아직도 너무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불안할 때가 잦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겨울 때도 있다. (p279, 에필로그) 린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우울증에 불안하게 매달리기보다는, 그 감정 자체를 끌어안고 한발씩 나아간다. 자신을 스쳐 지나간 여러 환자의 사례를 통해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으며, 그 증상 역시 한두 개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더없이 복잡한 이면을 지닌 사람인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 진정성에 스르륵 마음을 열고, 어느새 린다와 동화된 나는 '괜찮아'라고 속삭이며 하염없이 그녀를 보듬고 또 보듬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 쓰러져 있는 20대의 나에게도 '이 정도면 되었다. 고생했어'라며 용기 내 손을 내밀 수 있었다. 린다의 아프지만 씩씩한 고백 덕분에, 세상의 많은 사람이 용기와 감동을 얻고 우리는 혼자가 아님에 감사하며 또 내일을 살아갈 거라 믿는다. 이 뭉클한 감동을 오래도록 가슴에 지닌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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