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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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각들

글쓴이: 미나토 가나에

옮긴이: 심정명

펴낸 곳: 비채


 

 10여 년 전쯤일까? 아니, 그보다 오래된 듯하다. 새로운 소설에 목말라 있던 그때. 추리 소설에 한동안 빠져 있던 터라, 새로운 자극을 갈망했던 찰나에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만났다. 참 오랜만에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라 나중에 영화까지 챙겨봤던 작품. 치밀한 전개와 복선.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답을 유추할 수조차 없는 대단한 필력 덕분에 그 후로도 그녀의 이름을 잊은 적이 없었다. 미나토 가나에, 그녀의 신작 『조각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고백>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으로 '미용'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았다는 그녀. 주제가 어찌 되었든 역시나 자신만의 장기를 발휘하여 탄탄한 구성으로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다.

 

 

 

 한 소녀가 엄청나게 많은 도넛에 둘러싸인 채 자살했다. 모델처럼 늘씬한 아이였다는데, 어라? 아닌가. 학교에서 가장 체격 좋은 뚱보였다는 소문도 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은 중요치 않다. 이 소녀는 대체 왜 자살한 걸까? 이야기의 중심인물이지만, 철저하게 관찰자로 등장하는 미용 외과 의사 다치바나 히사노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이야기를 여닫는다. 학창 시절 32kg이 나갈 정도로 빼빼 말랐지만 이젠 딱 두 배 64kg이 되어버린 시호. 시호는 동창인 히사노를 찾아와 지방 흡입을 요구한다. 시호는 뚱보 동창 요코아미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이야기 끝에 흘린다. 코를 세우고 싶다며 찾아온 단역 배우 아미, 히사노와 학생일 때 잠시 사귀었던 호리구치, 시호의 여동생이자 자살한 소녀 기라 유우의 담임이었던 기에, 어쩌면 유우의 자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고2 때 담임 도키코, 안타까운 인생을 살아온 요코아미 아에코, 자살하기 전 히사노를 찾아와 시술을 요청했던 유우의 상담 기록. 히사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유우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며 유우를 자살로 몰아넣은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히사노의 대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곱 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에 몰입하다 보면 마치 내가 히사노가 된 듯 그들과 마주한 착각에 휩싸인다. 이야기마다 히사노의 존재감을 최대한 줄이고 화자에 집중하게 하는 방식은 정말 신의 한 수! 그렇게 오롯이 이야기에 빠져들고 서서히 드러나는 각자의 사연과 서글픈 진실에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드는데... 아름다워지면 행복해질까? 아름다워야만 행복할까? 내가 옳다고 믿는 잣대를 상대에게 들이댄 권리가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여러 생각과 복잡한 심경으로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는 소설. 살을 빼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다시 어머니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우는 마지막 순간 맞닥트린 뜻밖의 상황에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일까?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뚱뚱한 게 그렇게 큰 죄인지, 어느 누가 미의 기준을 정해 옳고 그름을 저울질할 수 있는지 파도처럼 밀려드는 헛헛함에 가슴이 아리고 또 아렸다. 촘촘하게 짜인 거미줄처럼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미나토 가나에의 『조각들』, 그녀는 역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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