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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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옮긴이: 민경욱

펴낸 곳: RHK / 알에이치코리아

 

 

 

추리소설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꼭 건지고 싶은 진주를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여지없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고 답하겠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반해버린 이 작가에게 참 오랜 세월 마음을 주고 응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월 따라 변하는 강산처럼 게이고도 나도 변했는지 어째 요즘은 초기작을 만났을 때의 잔잔한 감동과 짜릿함을 느끼기 힘든데, 어쩌다 다시 그의 초기작을 읽으면 마치 첫사랑처럼 그때 그 두근거리는 설렘이 떠오른다. 이번에 만난 소설 역시 그러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5년 데뷔 후, 이듬해 발표했던 이 소설은 <백마산장 살인사건>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새 옷에 새 제목을 달고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아까 그 부인은 아무것도 없어서 온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대가 아닐까?"

"반대?"

...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에 모두 모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왠지 그럼 느낌이 들어." - p62

 

 

 갑작스럽게 오빠를 잃은 나오코에게 엽서 한 장이 날아든다. 오빠가 죽기 직전에 보낸 그 엽서엔 간단한 안부와 함께 이상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 성경이나 다른 어딘가에 실려 있을 이 문구를 조사해달라는 것. 당시 대학원 시험에 떨어지고 취업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고이자, 밀실에 독이 담긴 컵까지 있었기에 경찰은 이를 우울증에 의한 자살 사건으로 처리하고 종결했다. 하지만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믿을 수 없었던 나오코는 대학 친구 마코토와 함께 오빠의 흔적을 찾아 사건 현장인 머더구스 펜션으로 향한다. 작년 이맘때 손님이 지금쯤 모두 펜션으로 모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두 사람은 펜션 관계자 극히 일부에게만 정체를 밝힌 채 손님 무리에 섞여든다. 펜션 주인인 마스터, 그와 막연한 사이인 셰프, 펜션 종업원인 다카세와 구루미, 의사 부부, 시바우라 부부, 어쩐지 밉상인 가미조, 미남이지만 달갑지 않은 오오키, 곤충과 새를 관찰하는 에나미, 여자를 깔보는 나카무라와 후루카와 그리고 펜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무라마사 경부까지 시차를 두고 만나게 되는 각 인물로부터 나오코와 마코토 콤비는 사건에 관한 열쇠를 하나씩 모으는데, 이때 사건의 큰 틀이자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는 수수께끼가 바로 머더구스 동요다. 방마다 있는 벽걸이에 쓰인 동요 가사.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 이상한 그 동요가 뭔가 큰 비밀을 품고 있음을 감지한 콤비는 당시 사건 정황과 함께 그 동요에 집중한다. 그러던 중 벌어진 또 한 건의 사고. 이번에도 사람이 죽었다. 2년 전 누군가, 1년 전엔 나오코의 오빠 그리고 이번엔 오오키. 대체 누가 왜 그를 노린 것인가? 이것은 연쇄살인일까? 그렇다면 밀실 트릭의 비밀과 머더구스 동요에 숨겨진 비밀은 뭘까?

 

 

 

 역시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답게 그의 간절함과 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래도록 고심하며 완성했을 트릭과 모든 게 밝혀졌다고 생각할 때 날릴 마지막 한 수. 밀실 트릭, 암호, 연쇄살인, 동화와 동요가 자아내는 음산한 분위기와 끝까지 범인을 알 수 없도록 곳곳에 설치한 떡밥까지 이것이 바로 게이고다! '복수'라는 키워드와 사건 속의 사건이 있는 액자식 구성까지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고 할까? 이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은 잊을 수가 없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진하게 번지는 씁쓸함과 생각에 잠기게 하는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이 잔잔하게 물결치듯 끊임없이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이야기. 가독성이 상당히 좋아서 펼친 자리에서 끝낼 수 있는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만은 가볍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만이 줄 수 있는 감동, 그 감동을 아는 독자라면 이 책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은 조금은 쓸쓸한 이 5월에 좋은 선물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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