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 롱 웨이 다운

지은이: 제이슨 레이놀즈

옮긴이: 황석희

펴낸 곳: 밝은세상

 

 

 

 영화 《데드풀》의 미친 번역으로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냈던 영상 번역가 황석희 씨의 첫 번역서 『롱 웨이 다운』! 영상 번역과 출판 번역이 얼마나 다른지 잘 알고 있기에, 책에 박힌 역자의 이름을 보고 수십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대단한 도전이다. 살인적인 스케줄일 텐데 그 와중에 어떻게 출판 번역까지? 너무 다른 분야인데 잘 해냈을까?' 우후죽순처럼 떠오르는 갖가지 질문을 뒤로 한 채 펼쳐 든 책은 실로 놀라웠다. 특히 글의 형식과 시각적인 면에서! 이 정도 두께의 다른 책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칠 듯한 적은 분량. 하지만 마치 시처럼 노래처럼 휘청거리는 문장에 담긴 삶의 무게와 깊은 고뇌 덕분에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던 소설! 지금까지 이런 소설은 없었다!

 

 

 

 

거참 난처하다. 줄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적어도 될까? 주인공 윌의 독백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요즘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건 정말 자신이 겪은 일이라고. 안개 자욱한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시간의 흐름조차 모호한 소설이지만, 한 문장이 어렵사리 시간의 개념을 잡아준다. 그저께 형인 숀이 총에 맞아 죽었다고.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진 총성 속에 혼비백산 도망친 사람들. 희생자는 단 한 명. 윌의 형 숀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틀리는 기분. 숀의 엄마와 여자 친구 레티샤가 쓰러진 숀에게 매달려 고통스럽게 울부짖지만 숀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독한 슬픔과 쓰라린 상실감이 덮쳐오는 가운데 윌은 울지 않고 그 순간을 버텨낸다. 그들에겐 세 가지 규칙이 있으니까. '1. 울지 말 것 / 2. 밀고하지 말 것 / 3.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할 것' 형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직감한 윌은 허리춤에 총을 꽂고 복수하러 나선다. 7층. 덜컹거리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여러 번 멈추고 그때마다 윌이 잃은 소중한 사람들이 타기 시작한다. 예전에 죽은 동네 삼촌,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여자 친구, 돌아가신 삼촌과 아빠, 프릭이라는 사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사람까지. 하나둘 모여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운 이 존재들 속에서 과연 윌의 상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걸까? 윌, 너는 살아 있니? 아니면... 아니면... 너도 설마...

 

 

 

 

 

 

 

 

 짧고 간결한 운문 형식의 글에 밤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자리 잡은 여러 문장. 누군가 허공에 외치는 넋두리처럼 잡으면 바스락 사라져버릴 것 같은 문장조차 강렬하고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 작품을 읽으며 작가가 서양인인지 동양인인지, 혹은 백인인지 흑인인지 황인인지 굳이 따지지 않지만 이 소설은 곳곳에 흑인이 지닌 진한 영혼의 흔적이 배어있다. 마치 토니 모리슨의 작품처럼. 이야기에 미쳤다는 작가 '제이슨 레이놀즈'. 밝은세상 출판사의 신간 소설 『롱 웨이 다운』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그가 펼칠 앞으로의 행보가 상당히 기대되는 상황.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그 형식이 어떠하든 그의 깊은 고뇌와 사색을 고스란히 담은 이번 작품으로 독자에게 믿음을 줬기에 가까운 날에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특별한 소설을 찾고 있다면, 짧은 문장이 주는 긴 여운과 마지막에 독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진 뒷이야기를 완성해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 『롱 웨이 다운』 이 책 정말 (좋은 의미로) 특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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