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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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이지 않는 말들

지은이: 천경우 (작업 노트)

펴낸 곳: 현대문학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도시락통에 휘갈겨 쓴 알 수 없는 꼬부랑글자. 제목부터 특이한 이 책은 모든 면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으로 읽기에 앞서 휘리릭 책장을 넘겨보는데... 어라? 어디선가 본듯한 낯익은 느낌. 알고 보니 2017년부터 2년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서 연재했던 에세이를 한 권으로 묶어낸 책이라고! 20여 년간 세계를 누비며 사진작가이자 공공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천경우 작가의 소중하고 특별한 기록. 조각조각 단편으로 만나도 좋았겠지만 한 권의 책으로 온전히 묶어 연거푸 감상할 기회를 얻다니 행운이다! 그의 퍼포먼스에는 혼자가 아닌 우리가 있고,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이해와 포용 가득한 온정이 넘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 그냥 손잡으면, 음~♬'이라는 유행했던 CM 송처럼!

 

 

 

 

 

 

 

 

움직임 때문에 흔들린 사진도 그대로 예술이 되는 별천지. 때로는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 혹은 일부러 얼굴을 담지 않기 위해 흔들림을 그대로 살린 사진이 눈에 띈다. 특히 기억나는 프로젝트는 '고통의 무게 ( The Weight of Pain)'. 합천 해인사에서 가장 큰 마당에 아직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무거운 고통 덩어리를 모아보기로 한 프로젝트! '고통'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행복'이란 걸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 우리 엄마의 고통을 가늠하여 보자기에 싼다면 나는 몇 개의 돌을 업어 날라야 할까?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외에도 신선하고 특별한 퍼포먼스가 셀 수 없이 많다. 차를 따른 찻잔을 든 채 눈을 감고 한 걸음씩 맞은편 사람에게 다가서거나, 1분간 사과를 살펴보고서 눈을 감고 천천히 음미하며 먹은 후 방금 먹은 사과를 도화지에 그려본다. 몇 분 후에 헤어질 타인에게 잠시 몸을 맡기고 무한한 신뢰와 위로를 느끼기도 하며, 인도 뭄바이에서는 매일 일터로 따스한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도시락 배달원들에게 자신이 배달받고 싶은 메뉴를 도시락에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준비한 도시락 50개를 참가자들에게 배달! 늘 남에게 전하기만 했던 배달원들이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을 선사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다.

 

 

 

 

 

 

 

 

 

 

고전 문학, 명화, 발레와 국악 등 옛것을 좋아하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을 사실 상당히 틀에 박혀 있었다. 잘 짜인 틀에 맞춰 곱게 그려 넣어 벽에 똑바로 걸어야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천경우 작가의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접하며 이 또한 예술일 수 있음을, 아니 정말 훌륭한 예술임을 이제는 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인종과 성별, 종교와 나이를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온정을 내뿜는 인간미 넘치는 프로젝트 덕분에 내 마음도 따스해졌던 시간. 천경우 작가의 퍼포먼스엔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앞으로 그가 펼칠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다. 2020년 새해를 맞아 처음 읽은 에세이였는데 대만족! 천경우 작가의 특별한 작업 노트를 훔쳐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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