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에 온 편지
김래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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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절기에 온 편지

지은이: 김래임

펴낸 곳: 고즈넉이엔티

 

 

 

 한국 스릴러 소설로 엮은 케이스릴러 시리즈로 주목받는 출판사, 고즈넉이엔티의 여성 서사 장르 소설 『환절기에 온 편지』를 만났다. 출간된 지 한 달 남짓 된 신작 소설인데 벌써 베트남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에 '대작인가?' 내심 기대하며 읽기 시작. 흐드러지게 핀 고운 벚꽃이 하늘과 땅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고즈넉한 순간, 여자가 손에 든 커피잔에서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시선을 옮겨 가만히 살펴본 여자의 얼굴은 평온함과 행복한 미소로 물들어 있다. 그렇게 난 27살, 봉수아를 만났다.

 

 

 

 잘 나가던 청년 CEO에서 하루아침에 망한 빚쟁이가 된 봉수아. 직원들 월급마저 떼먹었다는 소리는 절대 듣기 싫어 사방팔방으로 돈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게 아끼던 애마 아우디 A6를 딜러에게 넘기고 쓸쓸히 돌아오는 길, 갑작스레 날아든 전화 한 통. 3선 국회의원인 임성혜 의원이 수아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었다. 용건은 수아의 외할머니인 유은옥 여사와 관련된 일이라고. 원래였다면 수아의 엄마가 가야 할 자리였지만 조카의 결혼식 참석차 외국에 가 있는 상황이라 수아에게 연락이 닿은 모양인데, 망할 땐 망하더라고 사업가인 수아는 이 일을 빌미로 엄마에게 보증금 500만 원을 뜯어낸다. 의원을 만나러 가는 대신 돈을 달라고.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걸 알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 봉수아가 좀 곱게 보이진 않았다. 아직 허세와 자존심이 상당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수아는 의원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외할머니의 육필원고를 전달받고 외할머니의 지난 기록을 찬찬히 읽어보게 된다. 이야기는 수아가 처한 현실과 육필원고에 담긴 외할머니의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는데 어떤 유기적 관계없이 각자 펼쳐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수아의 현실과 맞물리며 따스함과 내 편이라는 든든함으로 수아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과연 수아는 만난 적도 없는 외할머니에게서 어떤 지혜를 얻게 될까?

 

 

 

 

 

 

 

 

 

'얘, 사는 게 죽을 만큼 힘들 땐, 누구도 위하려 들지 말고. 누구에게도 약해지지 마라.

너만 생각하고 너만을 위해 움직이렴. 그래야 그 힘든 순간으로부터 너를 지켜낼 수가 있단다.' - p148

 

 

'사람한테 궁금증을 갖지 말고 되도록이면 관심을 가지렴.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무관심해버려라.

너의 궁금증이 때론 어떤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단다.' - p164

 

 

 

 

 문득 심은경 양과 나문희 여사가 주연한 《수상한 그녀》란 영화가 떠올랐다. 시든 꽃잎처럼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할머니가 뜻밖의 회춘으로 꿈을 이루는 이야기. 재미와 더불어 자식을 향한 먹먹한 부모 마음과 미처 몰랐던 고생까지, 참 울고 웃으며 재밌게 봤는데... 이 책 『환절기에 온 편지』도 주인공 수아보다는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더 반갑고 기다려졌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살다 두 번의 가출을 감행했던 외할머니. 첫사랑이었던 놈팡이와의 달곰씁쓸한 연애담부터 고고장에서 전 재산을 몽땅 털린 후 힘겹게 일하며 입에 풀칠했던 서울 생활.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 정애와 임성혜를 만나 벌인 노동 운동과 '민주'라는 이름의 딸을 어떻게 고향으로 데려와 길렀는지 등등... 눈물 자국 마를 새 없이 고단한 삶이었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인생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뾰족뾰족 고슴도치 같았던 수아는 다시 사업을 시작하고 늘 티격태격하던 엄마에게 성큼 다가선다. 이 모든 게 외할머니의 육필원고 덕분이라고는 할 순 없지만, 이 책의 독자라면 모두 알 것이다. 외할머니라는 존재가 그리고 그녀가 남긴 글이 수아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응원이 되어줬을지 말이다. 약간의 반전도 있으니 끝까지 책을 놓지 마시길! 나도 딸을 위해 글을 남긴다면 훗날 이런 느낌일까? 오늘은 짧게라도 딸에게 남기는 글을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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