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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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천 반의 아이들

지은이: 솽쉐타오

옮긴이: 유소영

펴낸 곳: 민음사

 

 

 

 제법 묵직한 중국 소설을 만났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솽쉐타오라는 작가의 『9천 반의 아이들』. 책을 열면 <9천 반의 아이들>, <평원의 모세>, <대사>, <절뚝발이>, <긴 잠>, <건달>, <기습>, <큰길>, <그라드를 나오다>, <자유 낙하> 이렇게 10개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현대적이라기보단 빛바랜 사진에 담긴 추억이나 탈탈 털면 먼지가 날 것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 책날개에 실린 작가의 나이를 보지 못한 채 읽기 시작했기에 나중에 작가가 1983년생이라는 걸 알고 흠칫 놀랐다. 직접 경험해본 적도 없는 시대의 이야기까지 어찌 이리 잘 표현했을까? 단단한 알맹이가 있는 10개의 이야기 중 책의 제목을 차지한 <9천 반의 아이들>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중편 소설 <평원의 모세>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편집자의 의도적인 배치였을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만으로 솽쉐타오라는 작가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끼게 된다.

 

 

 

 

 

 

 

 

《시험에서 일등을 해도 9천 위안을 내야 다닐 수 있어

이곳은 '9천 반'이라 불렸다.》

 

 

 

 <9천 반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주인공 '내'가 중학교 시절 친구인 안더례와 우연히 만난 이야기로 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안더례와 함께 보낸 그때 그 시절로 흘러가는 기억.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도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교육열은 막을 수 없나 보다. 주인공 '나'는 어렵사리 경쟁률 높은 중학교에 입학한다. 시험에서 1등을 해도 별도로 9,000위안을 내야 입학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학교를 '9,000반'이라고 불렀다. 입학 후 '나'는 억울한 상황에 휘말려 지저분한 괴짜 안더례와 맨 뒷줄에 함께 앉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축구를 통해 우정을 쌓은 두 사람. 어는 날 안더례는 불쑥 이런 말을 한다.《마냥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서는 안 돼, 넌 앞쪽 자리로 가야 돼. 뒤창은 내가 지켜보면 되고, 넌 열심히 공부해야지. 우리 둘은 달라. - p42》. 안더례의 이 한 마디에 선생님에 대한 오기가 발동한 '나'는 자신이 바보가 아니란 걸 증명하고자 공부에 매진하고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한다. 성적이 발표된 후 안더례는 이번 시험 1등은 싱가포르로 유학을 보내준다는 공문을 봤다며 선생님이 성적을 조작해 '내'가 아닌 자기가 아끼는 학생을 추천하려 한다는 어두운 이야기를 꺼낸다. 안더례는 친구인 '나'를 위해 이 사실을 밝히고 결국 1등은 '나'도 '그 학생'도 아닌 다른 여자아이로 정정된다. 그리고 안더례는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후로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은 운명처럼 재회했지만 안더례는 이미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 소중한 학창 시절을 함께했던, 날 위해 싸워주었던 친구의 진실한 우정과 세월의 무상함에 안타까움이 방울방울 맺히는 이야기였다.

 

 

 

 

 중편 소설 <평원의 모세>는 앞서 등장했던 <9천 반의 아이들>과 동일한 서술 방식으로 진행된다. <9천 반의 아이들>은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한층 스케일이 커진 <평원의 모세>에서는 작가의 이런 서술 방식에 숨이 막혔다. 등장하는 여러 주인공의 관점에서 세월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 문제는 큰따옴표의 부제다.《내가 말했다. 어, 아빠 오늘 넘어진 것 아니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아냐. 내가 말했다. 그럼 왜 그런 건데? 아버지가 말했다. 생각 중이야. - p95》 이런 식... 대체 왜 작가는 이런 식의 전개로 숨통을 조이는 것인가! 그래도 자꾸 보니 눈에 익는지 차츰 이야기에 집중. 좡더쩡과 푸둥신 부부의 아들 좡수, 리페이와 그녀의 아버지, 잠복 수사 중에 목숨을 잃은 경찰 장부판, 진료소를 운영하는 쑨톈보와 쑨위신 부자 등등 다양한 인물의 삶이 자투리 천처럼 따로 놀다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어져 하나의 조각보로 완성된다. 진실을 향해 달려가자 숨 막히는 서술 방식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넘쳤던 이야기. 단연 작가의 대표작이라 꼽을 만한 소설이었다.

 

 

 

 

 10개의 소설은 쓰인 시기가 달라서인지 아니면 작가가 마음 내킬 때마다 스타일을 달리 한 것인지 큰따옴표가 있다가 없기를 반복한다. 내용 자체도 묵직하지만 숨통 트일 새 없이 연결에 연결되는 문장의 습격이 좀 아쉬웠던 책. 이건 편집자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듯하다. 작가가 애초에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구성하여 썼다면 훨씬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단단한 알맹이가 있는 소설 임에도 살짝 고리타분한 전달 방식 때문에 소설에 누가 된 듯하다. (실제로 읽다가 몇 번 잠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그 아쉬운 부분을 제외하면 진중한 자세로 누군가의 인생을 담아내는 문장과 색다른 분위기를 맛보는 재미를 선사해준 소설이었다. 작가의 다음 소설이 나오면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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