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 이만 헤어져요
지은이: 최유나
그린이: 김현원
펴낸 곳 :RHK / 알에이치코리아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인 결혼. 그런 결혼을 아무 생각 없이 쉽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있기야 있겠지만, 결혼이란 살아오며 수없이 내린 어느 선택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혼은? 매일 반복되는 헤어짐이 아쉬워 함께 살기로 약속한 내 사랑이 원수가 되는 상황이란 상상도 하기 싫지만, 연애 시절의 뜨거웠던 감정 그대로 살아가는 부부가 얼마나 있겠는가! 사랑에서 정으로, 때로는 전우애로 가정이란 소중한 존재를 지키다가 다양한 이유로 남남이 되기를 택한 부부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혼 소송 전문인 최유나 변호사와 김현원 만화가가 전하는 이혼 이야기 『우리 이만 헤어져요』. '이혼'이란 단어에 반사적으로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랑과 전쟁'이 떠올라 잠시 움찔했지만, 이 책이 전하는 이혼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도 신파극도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였다. 이혼을 주제로 한 글과 그림이 이리도 뭉클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따스했던 이야기. 가족이 모두 잠든 늦은 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울고 웃으며 읽은 이 책, 참 좋다.
『우리 이만 헤어져요』에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사이다 판결도, 어벤져스급 변호도,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도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놓인 작은 조약돌은 바로 공감. 필요하니 만난 사이지만, 진심으로 의뢰인을 걱정하며 공감하려 애쓰는 변호사와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고 조금씩 단단해지는 의뢰인의 관계가 단지 '돈' 때문이라고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현실과 달리 미화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책이 전하는 따스함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 난폭한 운전자가 주먹을 휘둘렀던 아찔한 순간을 경험한 후,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의뢰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는 최변.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이혼 당사자와 아이의 입장을 뼈저리게 통감했다는 그녀. 승소를 위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변호사 이야기, 나이 든 어르신을 신문하며 쩔쩔맨 에피소드, 시월드에서 벌어지는 저세상급 시집살이와 남편의 외도, 황혼 이혼, 상담을 통해 오히려 부부 관계를 회복한 사연까지 남의 집 이야기는 어쩜 이리 흥미진진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읽었다. 우리의 최변은 이렇게 당부한다. 결혼도, 이혼도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라고. 소설 <82년생 김지영> 이야기와 함께 등장한 30대 부부의 이혼 에피소드는 어찌나 공감되던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 알콩달콩했던 신혼 시절이 언제였나 무색하게 육아 전쟁으로 감정이 극에 달하는 부부.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싶어 안심했다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열심히 돈 벌고 애 키우며 옥신각신하는 우리 부부는 지극히 정상이구나 싶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시어머니, 엄마, 나 그리고 꼬마 아가씨. 물론 남편도 빼놓을 순 없지. 좋은 날도 많았지만, 펑펑 울만큼 속상했던 적도 있었다. 명절 후에 이혼하는 부부가 그렇게 많다던데, 어휴. 왜 아니겠는가. 정말 이해한다. 그런데 정말 이혼은 신중하게 생각하자. 남편의 외도로 신뢰가 무너져 살 수 없거나, 시월드가 도저히 못 견딜 만큼 고약하거나,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같이 못 살 정도로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린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라고 권하고 싶다. 너무 괴롭고 힘들어도 한고비 넘기면 분명 행복한 순간이 올 테니,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가정의 소중함을 부디 잊지 말고 기운을 내주었으면. 그만큼 우리가 일군 오늘과 가족은 소중한 존재니 말이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굳은 다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설사 헤어졌다고 해도 당신은 패배자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꾸릴 멋진 사람이라는 걸 꼭 기억하시길! 가족의 소중함, 다양한 사연을 지닌 여성 의뢰인들에게 느낀 연민, 진심으로 공감하며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따스함에 한껏 말랑해진 마음으로 새삼 자신을 돌아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