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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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아한 연인

지은이: 에이모 토울스

펴낸 곳: 현대문학

 

 

 

 작년 여름, 중후함과 고급스러운 멋을 풍기는 『모스크바의 신사』를 만났다. 실물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지만, 바로 읽을 자신이 없어 아쉽게 내려놓았던 그 책. 서점을 나서는 발걸음에 망설임이 서려 몇 번을 머뭇거리다 결국 다음을 기약했는데... 그땐 왜 그리 망설였을까? 그로부터 1년이 흘러 예쁜 분홍색 새 옷을 입고 나타난 『우아한 연인』을 만났다. 『모스크바의 신사』로 기억한 작가 에이모 토울스를 『우아한 연인』으로 드디어 만나게 되다니, 오래전부터 동경한 누군가를 만났듯 심장이 쿵쾅쿵쾅. 예쁜 금박으로 표현한 대도시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오래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뉴욕. 추억 속에 소중히 간직한 모습과는 많이 다른 1930년대의 뉴욕이지만, 익숙한 지명이 등장하면 반갑고 거리를 누비는 청춘남녀의 모습에 타임슬립이라도 한 듯 상상과 추억을 넘나들며 그들을 따라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담담하지만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1938년의 청춘 한 조각. 누군가의 잊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인생 한 자락을 뚝 떼어 몰래 훔쳐보듯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내 가슴 속에 파고들었다.

 

 

 

 1966년 10월, 중년의 끝자락에 접어든 어느 부부가 사진 전시회를 둘러본다. 공공장소에서 찰나의 순간에 셔터를 눌렀기에 무방비 상태로 자연스럽게 찍힌 사진들. 인생의 애환이 담긴 그 사진들 틈에서 케이티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다. 팅커 그레이. 케이티의 기억은 순식간에 1938년, 그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날아간다. 케이티는 같이 사는 친구 이브와 1937년의 마지막 밤을 축하하러 클럽으로 향한다. 수중에는 3달러뿐. 쌈짓돈마저 술로 털어 넣은 마지막 순간, 거짓말처럼 나타난 대단한 미남, 팅커 그레이. 금세 합석하게 된 세 사람을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 후로도 만남을 이어간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던 세 사람의 데이트는 1월 7일에 갑작스레 당한 사고로 꼬일 대로 꼬여버리는데... 속도를 줄이지 못한 우유 트럭에 치인 팅커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이브는 차창을 뚫고 도로로 나가떨어져 얼굴 한쪽이 갈리고 다리를 다치게 된다. 그들이 서로를 알고 가까워진 시간은 단 8일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안타까움을 전하는 정도로 이브를 위로했겠지만, 운전대를 잡았던 팅커의 죄책감은 상당했고 그로 인해 이브를 자신의 집에 들여 돌보게 된다. 이브 역시 부유한 팅커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고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웃고 즐길 수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팅커와 케이티에게는 분명 찌르르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다가설 수는 없는 상황. 의식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결국 엇갈리고 만다. 이브의 회복을 위해 떠난 휴양지에서 연인이 되어버린 두 사람... 팅커의 멱살을 붙잡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은 나와 달리 케이티는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브가 팅커의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케이티는 일상으로 돌아와 충실하게 삶을 꾸려간다. 새로운 친구와 가까워지고 직장을 옮기고 잠깐의 데이트를 즐기며 케이티의 삶 역시 안정되어 가는 듯했는데, 이브가 잔잔했던 케이티의 삶에 또 돌을 던진다. 과연 이번에야말로 팅커와 케이티는 이어질 수 있을까? 이어질 듯 말듯 아슬아슬한 두 사람의 마음을 기대하는 한편, 케이티가 팅커 없이 오롯이 꾸린 삶 역시 상당히 흥미로웠다. 직장에서 차츰 성공을 거두고, 월러스와 디키라는 다정한 남자들 덕분에 잠시 행복했던 케이티. 이젠 드디어 연결되겠구나 싶은 순간에 자꾸만 엇갈리는 팅커와 케이티를 보며 너무나 안타까웠던 수많은 순간... 차마 글로 담을 수 없는 그 섬세한 감정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전개는 책으로 꼭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과 완벽히 맞는 사람하고만 사랑에 빠진다면,

       애당초 사랑을 둘러싸고 그런 소동이 벌어지지도 않을 거야. -p477'

 

 

 

 『우아한 연인』은 연애 소설이지만, 절대 시시하지 않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부를 쥐여주지 않아도, 절제하듯 써 내려간 케이티의 감정선은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하고 상상하게 한다. 마치 내가 케이티가 된 것처럼 설레고 행복했다가 애잔하고 가슴이 시리다. 책이 두꺼운 만큼 이 글엔 미처 다 적지 못한 이야기가 무한정 펼쳐지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잔잔하게 흘러가던 모든 순간이 슬프든 즐겁든 전부 아름다웠던 듯. 대체 어떻게 1938년의 뉴욕이 이토록 익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걸까? 이뤄진 사랑은 아니었지만, 진심이었기에 애절하고 애틋한 그들의 이야기.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묵직한 삶의 무게와 운명의 장난 앞에 어떤 참견도 할 수 없이 그저 응원하고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분명 사랑이리라.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문학 작품! 책을 좋아하는 주인공 케이티 덕분에 다양한 소설 이야기가 등장한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애거서 크리스티, 버지니아 울프 등등. 작가의 힘을 빌려 주인공을 통해 듣는 <월든>의 인용은 슬그머니 그 책을 장바구니에 넣게 만든다. 책 속의 책인 셈. 지긋이 나이 들어 안정된 생활을 꾸린 케이티가 1938년 젊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들려준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듯하다. 어쩌면 그저 평범했을 그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특별하고 아름답게 다가온 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성 덕분이 아닐까? 드러내고 감정을 쏟아내지 않아 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더 안타까웠던 『우아한 연인』. 미치도록 낭만적이고 애절하지만 아름다웠던 그들의 이야기. 여전히 가슴에 남아 일렁이는 그 따스한 여운과 놓치기 싫어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순간들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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