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공포증
배수영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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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햇빛 공포증

지은이: 배수영

펴낸 곳: 몽실북스


 창가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이리저리 손에 든 책을 움직여본다. 각도를 달리하면 받아들이는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홀로그램. 햇빛이 만들어낸 영롱한 무지갯빛 오로라에 취해 표지를 한참 만지작거리며 잠시 첫 장을 미뤄두었다. 이 아름다움이 끝나지 않길 바라면서... 홀로그램에 마음을 뺏긴 탓도 있지만, 실은 뒤표지에 실린 세 줄의 글이 가슴 깊이 파고들어 쉬이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견딜 수 없어 자신마저 지워 버린 남자

◑ 모든 것을 잃고 복수만은 기다려 온 남자,

● 이들의 인생에 드리운 상처로 얼룩진 인연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를 당한 35세, 경비행기 조종사 한준. 깨질듯한 두통에 괴로워하며 몸을 겨우 가누려는 그에게 날아든 문자 한 통. '우리 이제 헤어지자.' 프러포즈하려고 했던 애인 희우의 이별 문자. 엘리베이터에서 어렵사리 구출된 한준은 정신병동에서 눈을 뜬다. 대체 왜 한준은 그곳에 있을까? 더 이상한 건, 사고를 기점으로 시작된 빛에 대한 발작 증세. 한준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

 


 

 한준의 정신과 담당의 주승. 감정이란 없는 도자기 인형처럼 차갑고 냉철하게 한준을 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준과 어떤 연관이 있는 듯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악감정이랄까? 실험실에 가둬놓은 쥐처럼 한준의 숨통을 서서히 쥐고 흔드는 그는 대체 무슨 원한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소설의 굵직한 줄기는 한준과 주승이라는 두 남자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멋도 모르고 당하던 한준의 반격과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주승의 핏발 서린 광기가 어떤 결말로 치닫게 될지 궁금하여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소영과 송화도 뜻밖의 행보로 소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무엇보다 스릴 넘치는 건 한준이 조각조각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 그 기억이 사실인지, 혹은 한준이 아닌 다른 이의 기억은 아닐지 촉각을 곤두세우면 읽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데... 소설 중반부에 돌입하며 밝혀진 진실에 더 남은 이야기가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아니, 아직 200여 페이지가 더 남았는데 그럼 무슨 이야기가 이어질까? 이런 고민도 잠시, <5장, 천사의 고백>에 다다르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마지막 진실의 퍼즐 조각을 손에 쥐게 된다. 조심스레 꾹꾹 눌러 완성한 이들의 이야기에서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은 없다. 각자 지닌 마음의 상처로 서로를 물고 뜯어 생긴 생채기에서 진한 슬픔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배어 나와 서글프고 가슴 아팠던 결말. 이런 인생도 있을 수 있겠구나... 세상 어디선가 휘청이고 있을 한준과 주승을 떠올리며, 위태롭게 올라선 소설과 현실의 경계에서 차마 나는 냉정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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