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장석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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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지은이: 장석주

펴낸 곳: 을유문화사

 

 

 언제나 깊이 있고 진중한 책으로 감동을 주는 을유문화사에서 이번에 출간한 신작,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를 만났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행복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본지가 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럽고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신나고 행복하기만 해도 짧디짧건만 삶이란 어쩜 이리 고단한지. 시인, 산책자 겸 문장 노동자라 자신을 칭하는 장석주 작가는 약간의 우울감을 곁들여야 행복의 양감이 분명해진다는 말로 독자를 보듬으며 이 글을 시작한다. 삶을 긍정하고 즐기라는 당부와 말과 함께 담담하지만 자신 있게 풀어내는 이런저런 이야기는 때론 가볍고 때론 철학적이며 때론 더없이 진지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눈앞에서 펄떡이는 활어처럼 꿈틀대고 단단하고 알찬 핵심이 알알이 박혀있는 느낌. '흑요석 같은 밤', '창백한 자아', '기이한 고요와 그늘만이 유골처럼 적막하게 남아 빛난다.'와 같은 가슴 속에 살포시 챙겨 훔치고픈 문장과 구절들이 가득한 이 책, 잔잔한 울림이 있다.

 

 

 네 번이나 방문했다는 베를린 이야기와 함께 중간중간 시간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이리저리 흘러가는 작가의 여러 추억은 행선지를 모르고 출발한 여행처럼 약간은 불안하지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기대감으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그런 설레는 시간이었다. 베를린 노변 카페에서 한가로이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며 각자 책과 원고를 들여다봤다는 부부의 추억 한 조각을 눈으로 맛보며 가보지도 못한 베를린의 그 카페를 가만히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맛있는 커피 한 잔과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딘들 행복하지 않겠냐마는 글로 느낀 그 순간의 감성과 추억이 어찌나 부럽던지! 언젠가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취준생들의 사연에서 '남이 불행하면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냐, 제발 더 힘든 사람 있다면서 위로하려 들지 말아라'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 부분은 상당히 공감했지만, 이 책에서 전하는 다른 입장도 상당히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할 때 어디선가 아침을 거른 채 굶주리는 사람이 있음을, 우리가 수도 요금을 낼 때 어디선가 빗물을 받아 먹고 사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바로 그들에게 빚진 바가 있기 때문이다. -p78'. 같은 이슈도 보는 사람의 입장과 마음가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걸 새삼 체감했던 순간. 나 역시 고단한 삶이지만 후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더 느리고 단순한 '슬로라이프'를 꿈꾼다는 작가는 어쩐지 나무늘보처럼 아무 걱정 없이 느긋하게 살 것만 같지만 어디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다 풀어놓지 못한 사연과 고충이 있었겠지만, 그는 이런 말을 전한다. '과거에 상처에 얽매이지 말자. 과거에 대한 강박보다 현재를 아름다운 순간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더 좋다. 실패에 예민하게 굴지 말고 우울과 짜증에서 벗어나라 - p159'. 이미 오래전에 저지른 실수나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 때문에 괴로웠던 수많은 밤. 이제는 다 내려놓고 오늘과 내일을 행복하게 채우는 데 집중해보자. 글쓰기의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멋진 문장과 인생 선배로서 전해주는 옹골찬 인생 철학 덕분에 행복 충만했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조금은 후련하고 촉촉해진 마음 덕분에 오늘은 바스락거리는 여름 이불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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