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독의
꽃
글쓴이:
최수철
펴낸 곳:
작가정신
중독, 디톡스, 독소 배출, 해독... 눈으로 직접 확인하긴 힘들지만 다양한 형태로 산재하는 독과
약.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독이 누군가에겐 약이 될 수 있듯이 독과 약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닐까? 독하든 약하든 우린 매일
무의식적으로 여러 독을 접하고 마시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독은 처음이다. 독으로 시작하여 독으로 끝나는 소설. 최수철 작가의 『독의 꽃』.
책을 읽다가 덮고 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여 검색해볼 정도로 이 책은 온갖 독과 중독 그리고 해독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쯤 되면
궁금할 질문, '그렇다면 이 책은 약초상이나 독극물 처리자에 관한 이야기인가?' 정답은 '아니요'. 평범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괴상하거나 희귀한 인물도 아닌 그저 좀 독특한 '조몽구'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작가는 세상 모든 독과 약에 관해 아우른다. 그 내용이 상당히
심오하여 글자 하나, 글 한 줄, 행간 곳곳에 방울방울 독이 맺힌 듯 정신이 아득하고 혼미해져 책장을 덮고 몇 번이나 심호흡했던
시간.
이 대단한
소설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마치 자살 행위처럼 곰팡이가 슨 음식을 먹고 독에 중독되어 병원으로 실려 온 '나'. 구토와 탈진을
반복하다가 문득 병실에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은 '나'는 그 사내를 찬찬히 살핀다. 수의를 덮고 있는 내 시체와 같은 그 사내의
이름은 조몽구.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끔찍한 몰골도 몰골이지만 깊은 밤 쉬지 않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얘기가 더 기괴하고 섬뜩한 그와의 입원
살이로 『독의 꽃』은 깊고 진한 독의 세계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내'가 듣고 전하는 조몽구의 삶은 온갖 독으로 가득하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몽구는 어린 시절부터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어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몽구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아버지는 그런 두 사람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몽구, 어머니, 아버지, 삼촌, 친구 등등 몽구의 삶은 온통 독 천지다. 들이마시는 공기, 인간이 품은 욕망,
타고난 심성, 독초에서 배어 나오는 즙, 말벌과 독사가 품은 독, 심지어 남녀가 키스로 교환하는 타액까지 세상 모든 독이란 독은 다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몽구는 엄마, 친구, 먼 친척뻘의 간호사 등 여성을 통해 혹은 다양한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하며 해독과 중독을 거듭한다. 아...
대체 이 소설을 뭐라고 해야 할까? 유려한 문체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덕분에 가독성은 좋지만, 내용 자체가 심오하고 유쾌하지는 않은 탓에
읽으면서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덩어리가 자꾸만 가슴을 답답하게 조여온다. 이 소설을 받아내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나'라는 인물이 전하는 '조몽구'의 인생이란 액자식 구성으로 시작한 소설은 말미에 반전 아닌 반전을
뽐내며 마무리되지만, 그 반전에 앞서 이미 마지막을 향해 한 장, 한 장 넘긴 페이지를 타고 흘러들어온 독에 잠식되어버린 마음은 후련하기보단
버거웠다. 종이에 벤 것도 아닌데 손가락 끝이 욱신거리고 머리가 띵해지는 건 아마도 몽구의 삶에 너무 깊이 집중한 탓이리라. 종이에 촘촘히 박힌
활자가 하나하나 떠올라 공기 중에 부유하며 책장을 넘기는 호흡에 따라 내 기도와 폐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야릇한 기분. 책을 잡은 내내
나른하고 저릿하여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이 또한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독으로 시작하여 독으로 끝난 『독의
꽃』. 뒤집힌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을 바라보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부디 이 몽롱한 기분을 어서 털어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