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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ㅣ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평점 :
제목: 화재의 색
글쓴이: 피에르 르메트르
옮긴이: 임호경
펴낸 곳: 열린책들
오랜만에 만난 프랑스
소설! 예전에는 유럽 감성이 그리도 맞지 않더니 요즘은 왜 이렇게 재밌는 것이냐! 술술 읽히는 일본 소설보다 확실히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그
역시 매력이라며 요즘 유럽 소설에 푹 빠져 사는 것 같다. 이번에 읽을 책은 피에르 르메트르 작가의 『화재의 색』.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90여 년 전인 1927년~1933년이다. 세계 1차 대전이 남긴 고통과 이기주의가 팽배했을 그 시기에 다들 얼마나 먹고 살려고
혈안이었을까? 우리가 '헬조선'이라 부르는 현 상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힘든 상황에서 은행 자산가의 외동딸로
유복하게 자랐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믿었던 주변 사람들에게 처절하게 배신당한 한 여인이 등장한다. 복수를 꿈꾸는 그녀, 마들렌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대통령까지
조문 올 정도로 성대하게 거행된 마르셀 페리쿠르의 장례식. 생전 엄청났던 그의 영향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로 장례식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아버지도 남편도 없이 이제 7살 난 아들만 남은 마들렌은 침착하게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비명. 이럴 수가! 마들렌의 아들 폴이 두 팔을 쫙 벌린 채 3층 창문 받침대에 서 있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폴을 날개 꺾인
새처럼 추락하고 끝내 할아버지의 관에 처박혀 피를 흘린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구했지만,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폴. 아버지를
여의고 아들까지 이렇게 되자 마들렌은 은행은커녕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다. 마르셀의 오른팔이었던 귀스타브 주베르는 이런 상황을 악용하여
마들렌과 결혼하고자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복수를 꿈꾼다. 한편 마들렌의 작은 아빠 샤를은 자신이 저지른 비리에 발목이 잡혀 어떻게든 돈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눈곱만큼 떨어진 유산으로 인해 사면초가인 상황. 위험인물은 한 명 더 있다! 마들렌의 친구인 척 곁에서 한몫 챙길 생각만
하는 하녀 레옹스. 앙심을 품은 이 세 사람의 사기극으로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고 쫓겨난 마들렌. 게다가 아들 폴이 뛰어내린 이유가 밝혀지며
복수할 대상은 셋이 아닌 넷으로 늘어나는데... 가장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마들렌은 과연 그 못된 인간들을 응징할 수
있을까?
여자 하나를
두고 이런 몹쓸 짓을 하다니! 그것도 가족, 믿음직한 직원, 친구였던 사람들이 말이다. 몸이 불편한 아들을 데리고 참담한 심정으로 주저앉았을
마들렌을 떠올리며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달려가 만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복수하게 도와주고 싶은
지경이었으니 마들렌의 사연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똑같은 마음이리라. 결론을 말하자면 마들렌은 복수에 성공한다. 다만 기대했던 통쾌한
복수극보다는 살짝 약했다고 할까? 인정 많은 마들렌 덕에 조금은 김이 빠졌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재밌었던 소설. 마들렌이 무너지는 과정과 복수에
성공하기까지 세밀한 심리 묘사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600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을 완독하도록 이끌어준다. 가문, 성별, 신분 그리고 국적을
떠나 온갖 치정과 욕망이 난무했던 『화재의 색』. 유럽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