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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제목: 섹스와 거짓말
지은이: 레일라 슬리마니
옮긴이: 이현희
펴낸 곳: 아르테
입 밖으로 솔직히
내뱉는 것이 금기시되는 여성의 성욕을 정면으로 마주한 소설, 『그녀, 아델』로 큰 호평을 불러일으킨 레일라 슬리마니. 출간 당시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만 올려두고 재밌다는 이웃님들 평에 군침만 흘리고 있었는데, 『그녀, 아델』에 앞서 작가의 다른 책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이란 부제와 깡마른 여인의 뒷모습이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섹스와 거짓말』. 히잡을 뒤집어쓰고 목숨
바쳐 처녀성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나라, 모로코에서 태어난 레일라 슬리마니는 여성의 영혼을 짓밟고 무자비하게 차별하며 말도 안 되는 정절을
고집하는 자기 나라를 세상에 고발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모로코를 검색해보니 아프리카 대륙 최북단에 있는 나라였다. 멀고도 먼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은 같은 여자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한 인간으로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해도 분통 터지기 일쑤였다. 대체 여자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건지!
작가는 이 책 『섹스와 거짓말』에서 장장 6장 반에 걸친 긴 서문으로 자신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힘주어 말한다. 성적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섹스를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박의 대상으로 달고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
작가는 사회학적 연구서나 모로코의 성생활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자 한 게 아닌, 자신을 찾아온 여성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날것 그래도 전하고 싶다고
한다.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풍기문란죄로 처벌받고 동성애자들은 이유 없이 뭇매를 맞는 모로코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여성이 왜곡된 사상과 사회적
탄압에 신음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응당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 '내 몸 소유권'을 되찾고 싶다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아버지
친구에게 팔려가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강간당하고도 창녀라 손가락질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현실. 처녀성을 잃으며 제대로 가정을 꾸릴 수 없으며 성욕
자체를 가슴에 품는 것만으로 죄인이 되는 그곳에서 모로코 여성들의 욕망은 성난 파도처럼 꿈틀거린다. 하지만 큰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란 걸
알기에 각자 숨은 채로 혹은 아이러니한 처지에 괴로워하며 그들은 오늘을
살아간다.
멀고 먼 북아프리카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인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난잡한 성문화가 옳다는 건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생활은 반대니까. 다만 성생활에 있어 그들이 한 선택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지 사회나 기성세대가
나서서 좌지우지하려 드는 상황은 옳지 않다. 강하게 저지하고 못 하게 할수록 인간의 욕망은 더 끓어오르기 마련인데, 어찌 모르고 저리 행동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성을 더럽다 치부하고 여성에게 온갖 책임과 형벌을 지우는 그 나라가 포르노 시청은 세계 5위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에
분노하며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남성이기에 괜찮고, 여성이기에 잘못된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절을 지키며 얌전히 사는 것도, 자유롭게 몸을
섞는 것도 결국 개인의 선택이니 가정 파탄 같은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가타부타 말이 필요 없거늘... 고구마 백 개 삼킨 듯 답답한 이야기
속에서 여성의 행복과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본 시간이었다. 남성도 귀하고 여성도 귀하다! 여성에게도 똑같은 자유를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