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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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늦가을 무민 골짜기

글쓴이: 토베 얀손

옮긴이: 최정근

펴낸 곳: 작가정신


 무민과의 강렬한 첫 만남을 기억한다. 홍차에 빠져 예쁜 다구에도 한껏 열을 올리던 시절, 블로그 이웃님 사진에 등장한 하마 같이 생긴 캐릭터 머그잔을 보고는 궁금증이 발동! '대체 무민이 뭐지?', 궁금증이 발동하여 이리저리 검색해본 결과 알 수 있었다. 무민은 핀란드 숲에 사는 요정(?)이고 가족을 이루고 있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캐릭터란 걸.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예쁘장한 무민 머그잔의 가격은 깜짝 놀랄 만큼 비쌌다. 그 후로 무민은 그저 귀엽고 신비로우며 몸값이 비싼(?) 녀석 정도로만 내 추억 속에 남아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무민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늘 같았다. '응, 좋아하지! 귀엽잖아.' 이 애매한 애정은 어디서 솟아난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던 어느 날 무민 연작소설, 그중에서도 마지막 편인 8권 『늦가을 무민 골짜기』가 내 품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작가정신에서 비매품으로 만든 <무민의 세계>라는 무민 백과사전까지 등장하여 손에 넣고자 무작정 1권 <혜성이 다가온다>, 2권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까지 주문해버렸다. 아무래도 드디어 제대로 무민을 만날 때인가 싶다.


 연작소설이라고는 했지만 8권부터 읽어도 될 줄 알았는데...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람? 이 책엔 주인공인 무민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아무리 책을 탈탈 털어도 나오지 않는 무민.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나? 무민 가족이 외딴 등대섬으로 떠난 뒤 텅 빈 무민 골짜기에 무민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이 잊어버린 다섯 음계를 찾아 돌아온 스너프킨, 머리카락을 양파 모양으로 단단히 묶어 올린 밈블, 뱃머리에 몰래 숨어 살던 훔퍼 토프트, 결벽증과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필리용크, 모험을 꿈꾸지만 떠나지 못하는 겁쟁이 헤물렌 그리고 나이 지긋한 그럼블 할아버지까지 생각지도 않은 여섯 캐릭터의 조합이 빚어내는 하모니는 처음엔 삐걱삐걱 낯설고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서로 조금씩 가까워지며 한마음으로 무민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애정이 느껴지자 마음에 노란색 작은 전구가 반짝 켜진 듯 은근히 따스했다.


 무민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이라도 확실히 알고 읽기 시작했다면 훨씬 더 재밌었을 텐데, 무작정 8권부터 뛰어들었으니 뜨거울 걸 뻔히 알면서 달아오른 전등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따로 없구나! 무민을 좋아했던 마음도 마지막 편을 호기롭게 펼쳐 든 용기도 참으로 무모했다. 그럼에도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무언가 부족한 여섯 명이 모여 마음의 고향이자 든든한 버팀목인 무민을 그리는 가슴 따스한 이야기였다. 완벽한 인물 하나 없이 어딘가 모나고 부족한 캐릭터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더 인간미 넘치고 정이 생기더라는... 바다를 바라보며 오매불망 무민 가족이 돌아오길 바라는 토프트의 모습에서는 이제나저제나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 생각이 나서 코끝이 찡했다. 마침내 불빛과 함께 무민 가족이 탄 배가 멀리서 등장하며 이 작품은 끝난다. 작가 토베 얀손은 어떤 마음으로 주인공을 쏙 뺀 소설을 썼을까? 작가는 어머니를 여의고 그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썼다고 한다. 무민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무민 시리즈라는 이 책은 어쩌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자신과 다른 가족, 즉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이 아닐까 싶다. 모두 어떻게든 오늘을 살아가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한 무민 가족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듯이 작가는 그토록 어머니를 그리워했나 보다. 앞서 일곱 권의 책을 읽지 못한 이 죄인(?)은 이제 마음을 다잡고 새 출발을 하려 한다. 무민의 모든 것이 담긴 백과사전 <무민의 세계>도 손에 넣었으니, 대체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 하얗고 작은 귀를 가진 평범한 캐릭터에 열광하는지 제대로 알아보자. 처음부터 찬찬히 무민을 알아가면, 다시 『늦가을 무민 골짜기』로 돌아왔을 때 느낄 감정은 사뭇 다를 것 같아 벌써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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