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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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퍼스트 러브

글쓴이: 시마모토 리오

옮긴이: 김난주

펴낸 곳: 해냄 출판사


교수이자 화가인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

풍족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며

아나운서를 꿈꾸던 미모의 여대생이

어느 날 아빠를 죽인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제159회 나오키상 수상작, 『퍼스트 러브』.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에 선이 고운 여인. 갓 스물이나 넘겼을까? 오뚝한 코와 탐스러운 입술. 비단 같은 머릿결 뒤로 숨어버린 눈이 궁금하다. 분명 예쁠 텐데. 왠지 모르게 지독하게 슬프고 쓸쓸한 이 장면에 해골 석고상이 음산함마저 더해 순간 섬뜩했다. 아름답지만 무섭고 두려운 오묘한 감정. 왜 이런 사진을 표지로 선택했을까? 제목과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첫사랑... 대체 이 책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임상 심리사인 유키는 한 용의자의 사연을 글로 써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대상은 아빠를 찔러 죽인 혐의로 체포된 여대생 칸나. 직접 만나본 칸나는 아나운서 지망생답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표정과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로 유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녀. 변호를 맡은 가쇼마저 의뢰인인 칸나의 속내를 알 수 없어 애를 먹는다. 형수와 도련님 사이인 유키와 가쇼.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는 두 사람 사이엔 뭔가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듯한데, 어째 정리하지 못한 묵은 감정이 꽤 깊숙이 자리한 것 같다. 칸나는 대체 왜 아빠를 죽였을까? 유키와 가쇼는 칸나가 숨긴 진실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마침내 칸나는 재판대에 선다. 생각지도 못한 발언으로 재판장을 술렁이게 하는 칸나. 과연 그녀는 정말 아빠를 죽였을까? 그렇다면 칸나를 그렇게 몰고 간 상황은 대체 무엇일까?


 미스터리와 추리적 요소를 지닌 이 책은 특이하게 형사나 검사 혹은 추격자가 사건의 진실을 좇지 않는다. 임상 심리사와 의뢰인의 변호사가 이야기의 주축이 되어 진실을 밝혀가고 그 속에 또 다른 여러 인생이 녹아 있다. 직접 손을 대거나 성적 학대를 가한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굉장한 압박감에 시달렸던 칸나의 모습을 보며 과연 아이를 학대하고 괴롭힌다는 게 어떤 방식으로까지 자행될 수 있을지 그 끔찍함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슬그머니 스며든 물에 어느새 흠뻑 젖어버린듯 칸나의 인생은 그렇게 목이 졸리고 칼에 베이며 그녀를 잘못된 방식으로 망가트렸다.


"내게는 존경할 만한 게 없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단언하는 칸나가, 그야말로 텅 빈 인형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칸나 씨는 자기 아버지를 살해했어요.

하지만 그전에 칸나 씨의 마음을 수많은 어른들이 죽인 거야. - p280"


 부모님에게 상처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닌 유키, 가쇼와 칸나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참으로 씁쓸하고 허탈했다. 이 책의 제목은 왜 『퍼스트 러브』일까? 착한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린 유키, 이제야 마음의 빗장을 푼 듯한 가쇼, 아직 진짜 사랑을 만나지 못한 칸나. 모두에겐 지금의 상황 혹은 앞으로 닥칠 상황이 진정한 첫사랑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초반에 굉장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이지만, 중반에는 살짝 나른한 진행. 하지만 진실과 진심이 밝혀지는 후반은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결말을 향해 내달리게 한다. 책을 덮은 후, 상당한 여운이 밀려왔던 작품. 슬프고 애처로우면서도 때론 이해가 안 되고 나라면 감당 못 했을 칸나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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