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남자 없는 출생> - 남자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

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제목: XX <남자 없는 출생>

지은이: 앤젤라 채드윅

옮긴이: 이수영

펴낸 곳: 한스미디어

 남성은 XY, 여성은 XX. 학창시절 배웠던 남성과 여성의 성염색체. X와 X가 만나면 딸, X와 Y가 만나면 아들이 된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 『XX - 남자 없는 출생』에서 말하는 더블 엑스는 좀 더 큰 뜻을 내포한다. 남성의 성염색체, 더 정확히는 정자가 없어도 난자만으로 임신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됐다는 가정하에 출발하는 소설. 아이를 출산함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우위를 가리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만약 난자만으로도 출산이 가능해진다면 여성의 우위는 선사 시대의 모계 사회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해질 텐데 이 책에서는 과연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굉장히 궁금했다. 과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런 시도가 옳은 것일지 아닐지...

 지역 신문 기자인 줄스와 작가를 꿈꾸며 동네 서점에서 일하는 로지는 동성 커플이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로지 때문에 고민하던 줄스가 정자 기증을 고려해보던 찰나에 난자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신기술이 개발됐다며 세상이 떠들썩해진다. 이 난자 임신을 시도한 여러 커플이 모두 실패한 가운데 줄스와 로지, 홍슈와 아니타 커플만 최초로 임신에 성공한 상황. 하지만 성공적으로 임신한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누군가의 제보로 신상이 공개되며 줄스와 로지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축복받아 마땅할 새 생명의 잉태가 단지 신의 뜻을 거스르고 여성끼리 행해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격한 분노를 쏟아내는데... 곧 남성이 설 자리를 잃고 씨가 마를 것이라는 둥, 이건 남성을 몰아내려는 일부 정당 혹은 레즈비언들의 검은 술수라는 둥 온갖 다양한 이유를 갖다 붙이며 이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과 줄스, 로지 커플을 몰아붙인다. 과격 시위는 물론 한 연구원의 집에 누군가 방화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줄스와 로지는 두려움에 떨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홍슈와 아니타 커플이 아이를 사산하는 슬픈 일이 발생한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이 상황에서 애초에 아이를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줄스는 내적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아이를 무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과연 줄스와 로지 커플은 무사히 출산하고 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사실 난 아이를 원한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냥 분위기에 휩쓸린 거지.

두 엄마 사이 아기가 태어난다는 데, 거기 참여하게 됐다는 데 흥분하기도 했어.

로지가 얼마나 원하는지 알았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도 진짜 느낌, 모성애 같은 게 생길 줄 알았어.

- p239, 줄스의 대사 中에서..."

 이 책을 읽으며 원래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로지를 사랑하기에 마음을 바꿔 임신을 결심한 로지의 심경 변화가 상당히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그저 난자를 제공한 것만으로 내 자식이라는 모성애가 생길 수 있는지, 배 속에서 직접 10달을 품지 않고 파트너가 낳은 아이를 과연 내가 낳은 아이만큼 사랑할 수 있을지. '남자 없는 임신과 출생'이라는 큰 주제만 들었을 땐, 디스토피아 소설인가 싶었지만 열어보니 휴먼 드라마였던 소설. 신기술과 반대 세력이라는 거대한 태풍에 휘말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도 굳건히 아이를 지키려는 로지와 배속의 아이보다는 로지를 사랑하기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는 줄스의 고군분투에 응원하는 마음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던 시간.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으로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변화와 깊은 고민에 공감하며 자신의 믿음을 위배하는 행위에 인간이란 집단이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물불 안 가리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독특한 설정과 술술 읽히는 가독성 덕분에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