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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엄마의 태교법 - '기질 바른' 아이를 낳기 위한 500년의 역사
정해은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1월
평점 :
제목: 조선 엄마의
태교법
지은이:
정해은
펴낸 곳:
서해문집
임신했을 때,
쏟아지는 축하 인사와 함께 들었던 얘기, '이제 태교해야겠네?'. 먹고 살기 바빠서 일도 줄이지 못한 채 하루에 7시간 이상 수업하고 집에
돌아와 일거리가 있으면 또 일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생각해서 최대한 잘 자고 잘 먹으려 노력했지만, 태교는 남의 나라
얘기인 양 꿈도 못 꿨던 힘든 나날. 남들은 바느질도 배우고 동화책도 읽어 주고 산모 요가도 한다는데, 나는 오로지 일, 일, 일, 잠.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속상해하자 친정엄마는 그러셨다. '예쁜 것만 보고 좋은 소리만 듣고 맛있는 음식만 먹고 행복한 생각만 하면 괜찮아. 그럼, 아이도
좋아해.' 어쩌면 임산부와 태아에게 있어 최대의 적은 스트레스일 거다. 미안함도 속상함도 다 털어버리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더니 참 밝고
쾌활한 꼬마 천사를 만났다. 그래, 태교가 뭐 별거야? 문득 궁금했다. 태교란 건 대체 누가 알아내서 퍼트렸을까? 태교는 현대 의학의 발달과
함께 생긴 심리 처방인가? 이번에 읽은 책, 『조선 엄마의 태교법』은 우리 선조가 어떻게 태아를 대하고 산모에게 무엇을 권했는지 잘 설명해준다.
그 시절에도 태교했다니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 여자의 인생은 왜 이리 고단한가 한숨이 흘러나오더라. 이제 조선 시대의 태교법 이야기를
해보자.
다들 알다시피 고려 시대는 남녀가
평등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딸과 아들에게 재산을 골고루 나눠줬다는데, 유교 사상의 유입과 함께 차츰 남존여비 인식이 확립되며, 후반으로
갈수록 남아 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파고들었다.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전제하에 아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던 그 시절,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은 늘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었을 터. 아들을 낳아야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에는 우리가 떠올리는 태교법을 넘어서는 낭설에
가까운 기괴한 비법이 확실한 사실인 양 팽배했다. 성별 구분, 임신 중에 딸을 아들로 바꾸는 법과 아들을 임신하는 법 등등 지금이라면 절대 이해
못 할 이야기들. 책 초반부터 이어지는 아들, 아들, 아들 타령에 화가 나서 책을 덮어버릴까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가라앉혔다. 이는 작가의
주장이 아니라 조선의 실상을 전한 것이니, 감정은 배제하고 오로지 학술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읽기 시작. 끓어오르는
분노를 힘겹게 억누르며 집중하기 시작하자 후반으로 갈수록 다행히 태교법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왕실의 태교 같은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컬러로 실은 사진 자료와 여러 문헌을
통해 만나는 그 시절 태교법은 신비로우면서도 지금과 많이 닮았다. 가수 동방신기가 생각나는 책 제목, 『태교신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이
책은 동아시아 태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이사주당이라는 여인이 쓰고 아들이 편집했다고 한다. 열혈독서광이었던 이사주당은 옛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연구한 바를 책으로 엮으며 놀랍게도 태교는 여성 혼자의 몫이 아니라 남편과 가족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마도 조선 최고의 태교 지침서가 아닐까 싶다. 『태교신기』를 비롯하여 여러 문헌에서 전하는 태교법의 핵심은 결국 어떻게 건강하며 심성이 고운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였다. 불쾌한 남아 선호 사상만 빼면 사실 지금과 상당히 비슷하다. 복중 태아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산모가 무사히
순산하기를 바라는 마음, 낳기 전에 태아의 성별을 알고 싶어 하는 궁금증, 무거운 것을 들지 말고 안전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등의 상식까지
결국 옳은 이야기이기에 지금까지 비슷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인 낭설들, 특히 아들을 얻는 비법이라는 헛소리는
곱게 봐주기 힘들었지만 '태교'라는 오랜 전통을 시대적 상황과 함께 살펴 본 유익한 시간이었다. 딸이 최고라는 요즘 세상을 보면 선조들은 어떻게
나오실지. 혀를 쯧쯧 찬다거나 거품 물고 쓰러지진 않을까? 여자로서 괘씸하고 분한 마음이 들어 잠시 통쾌한 상상을 해보았다. 혹시나 해서
당부하는데, 『조선 엄마의 태교법』은 태교법을 알고 싶은 임산부가 아니라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다. 다양한 자료와 상세한 설명이
담겨 있으니 태교의 역사을 알고 싶은 분들께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