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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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속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책.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게 가방에 늘 한 권씩 넣어 다니는 나는 이런 가벼운 책은 언제나 환영이다. 총 168페이지. 금방 읽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금방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뭔가 머리가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되는 기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득하건만, 내 그릇이 너무 작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한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하고 씁쓸했다. 점선의 영역, 가볍지만 내용은 묵직한 이 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나'(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작은 보석상을 운영하는 건물주다. 그래, 여기까지는 좋다. 근데 그 할아버지는 일종의 '예언' 능력이 있다. 눈빛이 달라지며 마치 다른 사람인 듯 무심하게 털어놓는 예언은 경이롭기보다는 기괴하고 섬뜩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할아버지의 예언은 시간,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불쑥 터져 나오고 '나' 역시 그 예언을 피할 순 없었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 거다.
소중한 걸 잃게 된다. 힘들 거다
용기를 잃지 마라. 도망치면 안 돼"

 

 그 예언을 비교적 의연하게 받아들였던 '나'는 만나서는 안 될 여자, 서진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두려움을 느낀다. '소중한 걸 잃게 되면 어쩌지?'라면서 말이다. 고작 몇 장 읽었을 뿐인데, 문득 스치는 묘한 느낌. '이 책 참 특이하겠구나'. 그리고 그 예상은 아쉬울 만큼 딱 맞아떨어졌다. 취업이란 높은 문턱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신 서진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다. 그와 동시에 벌어지는 알 수 없는 대규모 정전 사태. '나'는 어쩐지 두렵다. 그림자를 잃고 움츠려 있던 서진이 오히려 당당하게 세상에 나선 순간, '나'는 서진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음을 깨닫고 서진이 거부했던 그림자를 찾기 위해 직접 나선다. 글로 다시 정리해봐도 정말 내용이 독특하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걱정스럽게 자꾸 떠오르던 한 가지. '그 소중한 게 대체 무엇일까?' 처음엔 서진이의 그림자인가 싶었다. 결국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더 놀랐던 그 소중한 존재. 그렇다면 서진의 그림자는 뭘까? 그건 세상을 향한 증오와 분노였다. 아프지 말아야 할 청춘이 마음 편히 발붙일 곳 없는 이 삭막한 사회에 느끼는 절망감. 다시 찾아온 그림자를 거부하는 서진의 모습에서 힘겨운 청춘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었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우여곡절을 거치며 더 불완전해진 순간, 마침내 온전히 하나가 되는 아이러니한 결말.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인생의 음과 양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걸 잃더라도 살다 보면 더 좋은 일도 있고,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진득한 응원이랄까? 작가의 탁월한 묘사력과 유려한 글솜씨 덕분에 글맛은 좋았던 <점선의 영역>. 뭔가 진한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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