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 - 김연지 여행산문집
김연지 지음 / 바이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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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앞자리가 3으로 바뀌던 해에 한 친구는 그동안 다녔던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이유는 오직 하나. 파리에서 새해를 맞고 싶은데 이왕 유럽에 갈 거면 1달은 있다 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온갖 연차와 휴가를 다 끌어써도 1달을 쉬게 해줄 리는 만무하니 마음 편히(?) 사표를 던진 거였다. 이 대책 없는 용기와 자신감에 모두 어안이 벙벙했지만 정작 1달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온 친구는 파리에서 새해를 맞이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종종 입에 올리곤 한다. 너무 행복했노라고. 그 추억으로 지금도 살아가노라고 말이다. <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이란 책을 읽으며 그 친구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마 우연이 아니리라. 세상 인연 중 그냥은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김연지 작가와 나 그리고 그 친구를 하나의 선으로 이어 조그만 삼각형을 그려보았다. 그러고 나니 작가가 사회를 뒤로하고 세상에 먼저 내디딘 발걸음이 무모한 게 아니라 용감하고 사뭇 멋져 보여, 괜스레 생판 남인 내가 자랑스럽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래, 소중한 추억을 공유했으니 이제 우리는 남이 아닌 소박한 인연일 거다.

 <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은 작가가 세계를 누비며 찰나의 순간에 겪은 추억과 단상을 담은 책으로 기행문이라기엔 애매하고 여행 에세이 혹은 여행산문집에 가깝다(표지에도 그렇게 쓰여 있음). 한창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작가는 휴학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목적지가 정해진 여행이었는지 아니면 그 순간에 충실하여 이런 일주를 쭉 이어갔는진 모르겠지만, 때로는 정처 없이 때로는 성실하고 꿋꿋하게 세상 곳곳을 누빈다. 자꾸 눈길이 가는 멋진 사진과 함께 몰래 훔쳐본 작가의 소중한 추억 조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추억과 연결되어 하나의 퍼즐처럼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갔다. 비록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비슷한 추억과 분위기 그리고 그리움은 어떻게든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마주 잡더라.

 햇살이 유난히 좋았던 날, 카페에서 아이스 녹차를 마시며 펼쳐 든 첫 장. 햇살이 좋아서인지 책이 좋아서인지 한껏 들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넘기고 또 넘겼던 책장. '무엇을 선택하든 그게 최선이다'라는 말에 위로받고 '곤자, 유 디드 베리 웰'이라며 작가를 토닥여주던 할아버지 여행객의 푸근함에 울컥하며 나는 작가를 따라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도 하건만 우리의 여행은 어떤 감정 기복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 흐르듯 잔잔하게 흘러갔다. 여행하며 만난 지인에게 오야코동 요리법을 배웠다는 작가는 여행이 무르익으며 요리를 거듭할수록 그 오야코동 맛이 점점 풍부해졌다는데, 그때쯤 책 첫 장부터 홀짝이던 내 아이스 녹차도 진하게 우러나 처음과는 다른 풍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작가의 행복했던 혹은 외로웠던 아니면 가슴 벅찼던 소중한 여러 추억을 공유하며 <나로부터 당신까지의 여행>을 읽는 시간 만큼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내 자신일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 풋풋하고 솔직한 그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눠줘서 고마워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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