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 줄리언 반스가 이번엔 담담하게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48살 수전과 19살 폴의 사랑. 70 노인이 된 폴이 50년 전 첫사랑을 추억하는 이야기. 두 사람의 나이 차만 봐도 '늙은 여우'라며 누구나 수전을 욕할 테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차마 수전을 욕할 수가 없다. 대체 수전과 폴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정확히 어쩌다 불꽃이 튄 건지 별다른 설렘도 없이 물 흐르듯 발전하는 관계가 어쩐지 이질적이면서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듯 자연스러웠던 폴의 첫사랑. 예쁜 색싯감을 만나길 바라는 어머니의 은근한 등쌀에 떠밀려 테니스 클럽에 가입한 폴은 그곳에서 48살 수전을 만난다. 한 팀을 이루어 테니스를 치고 게임이 끝난 후 폴이 수전을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제안하며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테니스와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어느새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여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는데, 섹스라는 행위에 대한 묘사가 전혀 외설스럽거나 문란하지 않고 뭔가 폴과 수전이 치르는 친밀한 혹은 해방을 상징하는 행위로 느껴져 상당히 신선하고 낯설었다.

 가독성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이 책은 정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며칠을 나눠 읽으며 왜 나만 이렇게 읽기 힘들까 고민했지만 다른 분도 힘들게 읽었다는 얘기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한 줄, 한 줄, 까만 글씨를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꾸만 기억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멍한 상태로 그 자리에서 헛돌게 되어 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난 폴과 수전의 사랑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나 보다. 집중하려 해도 자꾸 떠오르는 나이 차와 두 사람이 가족에 관한 괜한 걱정 때문에(이게 무슨 오지랖인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오롯이 빠져들지 못하고 자꾸 겉돌았다. 안 되겠다 싶어 폴의 사랑, 폴의 진심에 집중하자고 다짐에 또 다짐할 때쯤 두 사람의 관계는 한층 깊어져 같이 사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 p13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 p 136

 한순간의 불장난으로 끝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진 건 정말 의외였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피폐해진 수전을 폴마저 포기했을 때는 배신감과 서러움에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폴의 진심을 알고 수전의 고통을 알기에 배신감이라는 감정은 이내 잦아들고 그저 씁쓸하고 아린 생채기를 홀로 쓸어내려야만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났지만, 첫사랑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결국 그 사랑은 끝나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 사실 지금도 난 100% 공감할 수는 없다. 과연 이 사랑이 가능한지, 그런 진심이 있을 수 있는지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줄리언 반스가 풀어내는 사랑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연애담이면서도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는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 그 깊은 감성을 온전히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기엔 내 그릇이 작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찌 보면 어렵고 지루하지만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은 그런 소설. 어쩌면 당신이 찾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바로 이 <연애의 기억>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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