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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록 - 조선군 사령관 신류의 흑룡강원정 참전기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2
신류 지음, 계승범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9월
평점 :

한국사에서 어느 나라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고구려를 꼽겠다. 만주벌판을 달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그 당당함과 강인함이 좋아 우리도 제발 그때처럼 기 좀 펴고 살자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안타깝게 상상해보곤 한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시기를 꼽으라면 그건 단연 조선 시대다. 대한제국 직전까지 이어졌던 500년 역사의
왕조. 지지리도 못난 왕, 치맛바람으로 왕실을 뒤흔든 악녀, 충신과 간신 등 재미있는 요소가 가득하기에 조선을 늘 매력적이다. 오늘은
<북정록>이란 책 덕분에 새로운 조선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조선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청나라는 러시아 세력을 물리치고자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다. 1654년 1차 나선 정벌 이후, 1658년에 2차 원정에 나서는데, <북정록>은 그 두 번째 원정을 이끈 신류 장군이
직접 기록한 진중일기다.

100페이지가량의 얇은 책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 일단 종이가 참 마음에 들었다. 하얗고 눈부신 종이가 아니라
미색이 감도는 부드럽고 도톰한 재질로 역사를 담기에 상당히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신류 장군이 기록한 '북정록'을 만나기에 앞서 옮긴 이의
해설이 실려 있어 당시의 시대 상황과 신류라는 인물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 귀한 자료가 빛을 보게 된 사연까지 차근차근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사진 자료도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

<북정록>에
담긴 신류 장군과 조선 군대의 기록을 잠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4월 6일 - 군사 점검
5월 2일 - 출발, 첫 강을 건넘
5월 9일 - 험하고 고된 원정길을 거쳐 출발 7일 만에 청나라 군대 사령부인 영고탑에
합류
6월 10일 - 적선 11척과 대전, 대승리
8월 18일 - 조선으로 출발
8월 27일 - 드디어 귀국
날짜를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 대체 6월 10일에 잘 싸워서 이겨놓고, 왜 8월 18일이 되어서야 귀향길에 올랐는가? 우선 전투의 승패부터
말하자면 조선군의 활약으로 압승을 거뒀다. 그럼 바로 집에 보내 줄 것이지, 왜 2달 이상 발목을 붙잡아 두었을까? 욕심 많고 이기적인 청나라
오랑캐 대장이 화근이었다. 그 인간이 적선에 실린 귀한 물건을 차지할 속셈으로 배에 불을 지르지 말라고 하여 육탄전으로 치닫게 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자기네 싸움 도와주러 온 조선군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군량미 문제로 피를 바짝 말리는 것도 모자라(조선에서 쌀을 갖다 먹으라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2개월 넘게 조선군의 발을 묶어 두었다. 그 대장놈이 내 눈앞에 있었으면 정말 멱살을 잡고 메다꽂고
싶었던...(참아야 하느니라.) '보내줘! 보내주라고!'를 연발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는! <북정록>은 전투를 기록한 진중일기지만,
전시상황뿐 아니라 신류 장군의 마음과 당시 상황이 상세히 적혀 있어 더욱 귀한 자료다. 비 내리는 광활한 벌판의 아득한 끝을 좇으며 고국과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삼키고 안타깝게 전사한 부하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나열하며 애통해하고 부상자도 살뜰하게 챙겼던 신류
장군은 고개가 절로 숙어지는 존경스러운 지도자였다. 자신의 욕심 채우기에 바빠 조선군을 갖은 방법으로 짜증 나게 했던 오랑캐 대장에 대한 신류의
감정 변화도 주목할 부분이다. 처음엔 그러려니 이해하는 듯하다가 돌아가고 싶지만 발목이 잡혀 있을 때는 얄밉다는 등의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
솔직함에서 느껴지는 인간미 덕분에 더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귀한 책을 만날 수 있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느낌!
<북정록>에는 조선 장군의 기개와 부하를 아끼는 세심함부터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던 안타까움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어 마치 순간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남동생에게 이 책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꼭 읽어보고
싶다며 바로 빌려달라고 했다. 동생이 다 읽고 나면 신류 장군 칭찬도 하겠지만 아마 나처럼 오랑캐 대장놈 욕도 하겠지. 몸 사리며 제대로 통역
안 해주던 통관도 짜증 났다. 둘이서 열 올리며 수다 좀 떨면 억울하고 약 올랐던 마음이 조금은 풀릴 듯. 부디 다들 <북정록>을
읽고 이 귀한 역사의 순간을 함께 하시길... (같이 신류 장군 칭찬도 하고 오랑캐 대장 흉도 보면서 북정록에
감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