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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평점 :

이 소설을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책을 읽고 감상평을 남기려 화면을 보다가 깜빡거리는 커서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봤다. <맥파이 살인 사건> 이 책에는 '추리 소설'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 우선 당부하고 싶은 말은 책의 마지막 장에 찍혀 있는 289라는 페이지 숫자에 속지 말라는 거다.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로 한 개도 아닌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관성이 없는 소설이냐고? 아니, 너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탈이다. 나중엔 이게 소설인지, 현실인지, 실은 둘 다 소설임에도 하나는 현실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당신은 어느새 열심히 범인을 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읽으시길!
<맥파이 살인 사건>은 크라우치 엔드, 런던에 사는 출판사 편집장인 수전 라일랜드의 평범한 일상 글로 시작한다. 수전은 사장이 놔뒀을 게 분명한 책상 위에 있던 원고를 읽으며 주말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맥파이 살인 사건>. 소설로 빠져든 수전은 독자에게 이런 경고를 남긴다.
이쯤에서 경고하고 싶은 게 있으니 그게 뭔가 하면.
이 책으로 인해 내 인생이 달려졌다는 것이다. (p11)
...
설명은 이 정도면 됐을 거라고 본다.
나와 달리 여러분은 미리 경고를 받았다. (p12)
'대체 수전이라는 이 언니 왜 이렇게 겁을 주는 거야?'라며 볼멘소리를 내뱉고 옆으로 눈을 돌리자 <맥파이 살인 사건>이란 제목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아티쿠스 퓐트라는 탐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살인 사건 이야기.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메리라는 중년 여인이 계단에서 굴러 목이 부러진 채 발견되고 며칠 후, 고용주였던 매그너스 파이 경이 목이 잘린 채 살해된다. 모두가 범인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여러 인물이 용의 선상에 오르고 우리의 명탐정 퓐트가 범인을 알아낸 순간 원고는 거기서 끝나버린다. 젠장! 왜 그놈이 범인인지 빨리 밝히라고! 장장 300페이지의 대장정을 달려왔건만 원고가 왜 여기서 끝난 것인지 수전과 내가 울화통을 터트리며 작가의 목을 조르고 싶을 때쯤 수전의 시점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로 사라진 원고를 찾는 일! 하지만 <맥파이 살인 사건>을 쓴 앨런 콘웨이가 갑작스럽게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수전은 앨런이 살해당했다는 의심을 품게 되는데... 이렇게 또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연 <맥파이 살인 사건>의 저자, 앨런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맥파이 살인 사건>은 앨런이 쓴 소설과 그 소설을 읽고 사건을 추적하는 수전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런 특이한 액자 구성 덕분에 독자는 책을 읽고 있다는 현실을 잊고 수전으로 빙의하여 직접 사건을 조사하며 범인을 쫓는 박진감을 오롯이 느끼게 된다. 특별한 소설을 쓰고 싶었던 앤서니 호로비츠의 마술에 보기 좋게 걸려든 셈! 실은 624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은 이야기 별로 쪼개어 페이지를 다시 매기고 독자가 지쳐갈 때쯤 떡밥을 하나씩 던져주며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이 작가 참 나쁜 사람이다! 굳이 이렇게 길게 써야 했을까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있었지만 줄어들지 않던 남은 페이지가 차츰 줄어들고 손목이 저릴 때쯤 '내가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낸다!'라는 오기로 초고속 주행을 하게 되는 그런 소설. 언제나 마지막이 제일 심장 떨리는 법. 부들부들 떨어가며 심장이 쫄깃해질 때쯤 사건은 정리되고 범인이 딱 밝혀지자 긴장이 풀어지며 허무함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몰입감은 대단했다. 사실 중간에 집어 던지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이 작가 정말 밀당의 귀재더라. 벽돌 같은 책을 들고 나흘 밤낮을 씨름했더니 손목이 시큰하고 눈이 뻑뻑할 지경이지만, 결국 난 이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범인이 누군지도 안다! 수전의 말처럼 이 책으로 인해 내 인생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기 전과 후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듯. 작가는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마지막 선물로 안겨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분간 600페이지 넘는 책은 안 볼 생각이지만... 참으로 열정적인 책 읽기였다.
★ 덧붙이는 글 (오타 발견)★
1부 맥파이 살인 사건 편) P192 위에서 8번째 줄
이 공책을 끝까지 훑어보는 데 꼬박 이들이 걸렸고 → 꼬박 이틀이 걸렸고
2부 수전 편) p44 13번째 줄
장미꽃밭은 보이지 않았지만 호스는 있었고 딩글 델인가 싶은 숲도 있었다.
→ 호수 (이 부분은 원문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문맥상 호수가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