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부엌 - 맛있는 이야기가 익어가는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딩동댕동!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업 끝 종소리에 책상 위에 있던 교과서를 잽싸게 챙기고 차렷. 의자에 착하게 앉아 집에 가라는 담임선생님 허락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뛰면 10분. 걷다가 뛰기를 반복하며 단숨에 도착한 집. 가방을 내던지며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나 왔어!" 그럼 엄마는 늘 부엌에서 뒤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 왔구나. 식탁에 있는 물부터 마셔." 식탁에 있는 시원한 보리차를 마시고 한숨 돌리면 오늘의 저녁 메뉴는 무엇인지 엄마와 즐거운 스무고개를 했었다. 나에게 부엌이란 그렇게 따스하고 정겨운 추억으로 가득한 장소다.

 <맛있는 이야기가 익어가는 도쿄의 부엌>이란 책을 보자마자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한 우리 엄마의 부엌이 떠오르며 다른 사람의 부엌엔 어떤 이야기와 추억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정성스레 준비한 맛있는 식사를 함께할 가족이 있는 집도 혼자서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1인 가정도 너나 할 것 없이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찰칵하는 셔터 소리와 함께 한 장의 사진에 담긴 그 부엌 정경을 감상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시간. 접시가 맞닿는 달그락 소리. 젓가락으로 탁탁탁 달걀을 푸는 소리. 따뜻한 커피를 호로록 마시는 소리. 귓가에 맴도는 온갖 소리를 벗 삼아 책에 빠져드니 어느새 눈앞에 도쿄의 부엌이 펼쳐졌다.

 

 

 

 이 책에는 부엌 사진뿐 아니라 부엌 주인의 직업과 나이, 가족 관계, 집 종류와 위치, 거주 기간 등의 상세한 정보가 실려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아무 정보 없이 사진만 구경했다면 놓쳤을 재미와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며 작가가 전하는 주인장의 인생담과 사연을 읽다 보면 마치 그 인터뷰 현장에 함께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 순간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멋진 가전제품과 수제 가구로 꾸민 부엌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그런 부엌을 소개해주어 더 특별했다.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런 부잣집 부엌이 아닌 소탈하고 인간미 풍기는 부엌, 그곳엔 때론 고독과 정적이 감돌고 때론 정과 사랑이 넘쳐 흘렀다.

 남의 살림 구경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사실 에세이라고 하기에 모호한 이 책은 '남의 집 부엌 소개와 주인장의 사연 모음'이라고 하는 게 제일 정확할 것 같다. 부엌에 담긴 소중한 추억과 사연이 부뚜막을 타고 모락모락 피어올라 한국에 있는 내게 닿았으니 이것 또한 인연이리라.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다른 이들에게 과연 내 부엌은 어떤 느낌일까? 어린 시절 내가 그랬듯 우리 꼬마에게도 부엌이 엄마의 사랑으로 기억될까? 어제까지 특별할 거 하나 없이 평범했던 내 부엌이 오늘은 유독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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