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방문객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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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만의 더위라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날, 집에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카페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훅 달려드는 시원한 공기. 태양에 달궈진 몸의 열기와 냉기가 한데 어우러져 머리끝까지 올랐던 더위를 슬며시 식혀주었다. 시원한 카페에 편히 앉으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지만 애써 졸음을 참으며 펴든 <한낮의 방문객>. 얼마 못 읽고 잠드는 건 아닌가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언제 졸렸냐는 듯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고,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무자비한 잔인함에 소름이 돋아 좌불안석이었으니 말이다.


 요금 체납으로 전기와 수돗물이 끊긴 허름한 빌라에서 28세 엄마와 5세 딸이 죽었다. 사인은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 대체 그 모녀는 어떤 사연으로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됐을까? 대학 강사이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주인공, 다지마는 홀로 있던 친형을 5년 전에 떠나보내고 고독사라는 사회 문제에 집중한다. 그러던 중, 월간종합지 '시야'로부터 이 모녀 고독사 사건을 취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사건의 진상을 좇기 시작하는데,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처럼 이 사건은 심연의 터널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간다. 한편, 옆집에 사는 류노스케와 후유코가 정수기 방문판매업자를 쫓아달라며 도움을 청해오고 그렇게 마주하게 된 불량배 녀석들은 어쩐지 상상 이상으로 극악무도한 존재란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믿기 힘든, 믿기 싫은 진실이란!

 <한낮의 방문객>에는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의 시작을 열어 준 28세 엄마와 5세 딸, 다지마의 대학 동기이자 현재 학부장인 스구로, '시야'의 기무라 편집장, 옆집에 사는 류노스케와 후유코, 다혈질 형사 미도리카와, 정수기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떠넘기는 방문판매원 다쿠마와 오노다, 오래전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게이와 아사노, 다지마에게 불쑥 다가온 여대생 미사키 등등. 보통 이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면 한국 이름이라도 헷갈린 지경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전부 일본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헷갈리지 않았다. 아마 다들 개성이 뚜렷하고 독특한 캐릭터라 글자보다는 이미지로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가장 두려웠던 건 '방문판매'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방문판매원 한번 안 만나본 사람이 있을까? 내 경우엔, 윗집 사람이라고 해서 문을 열어주면 신문 구독을 강요하는 판매원인 상황도 부지기수였다. 평화로운 오후, 갑작스레 벨을 누른 사람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악마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한낮의 방문객>에서는 한 건이 아닌 여러 살인 사건과 흉악범죄가 등장하는데, 인연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던 여러 등장인물이 갖가지 접점에서 만나 얼기설기 꼬였던 실타래가 풀어지는 순간, 모든 범죄와 등장인물은 동일 선상 곳곳에 자리 잡는다. 범인은 달라도 결국 어떻게든 연결되는 사건. 작가가 너무 많은 떡밥을 던져 놓았던 터라 어떻게 정리할 셈인지 귀추가 주목됐는데, 읽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모든 사건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건 묘사가 너무 세세하고 잔인해서 진짜 꼭 이렇게까지 써야 했는지 여러 번 작가를 책망할 정도였지만,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결말을 알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누르지 못한 채 끝까지 책을 꼭 붙들고 있었다. 속기도 많이 속아본 덕분에 어느 정도의 결말과 반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알고 당해도 참으로 놀랍고 살벌해서 책장을 덮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더랬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은 과연 한낮에 홀로 집에 있을 수 있을까? 갑자기 울린 벨 소리에 문을 열면 기분 나쁜 미소를 띤 악마가 눈앞에 서 있진 않을지 장담할 수 있는가?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힌 고질 범죄라 더 소름 돋고 실감 났던 <한낮의 방문객>. 부디 현실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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