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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달다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이 책과의 첫 만남은 상당히 강렬했다. 물에 불은 어묵처럼 퉁퉁한 입술과 주근깨처럼 박힌 작은 눈, 폴짝 뛰어오르기 직전의 개구리처럼 쪼그리고 앉아 슬며시 뒤를 돌아보는 자세. '예쁨' 보다는 '엽기'에 가까운 그림이라 이 책의 주제는 '코믹' 혹은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사이다'인가 했는데, 세상에! 이 작가, 생각지도 못한 글솜씨를 나를 울고 웃게 했다.
힘겨운 사회생활과 사람에 치여 죽을 듯이 괴롭던 삼십 대의 문턱에서 친구를 불러 고민을 털어놓지만, 정작 자신의 얘기는 없고 남들이 보는 시선에만 신경 쓴다며 쓴소리를 들은 작가. 이제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스스로 행복할 거라 믿고 있다. 가난한 작가로 사는 지금이 좋다는 '달다' 작가. 참 매력 넘치는 사람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토라지곤 하셨다.
나는 어쩐지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나의 할머니는 두꺼운 세월 속, 딱딱하게 굳은 노인 같지 않아 기뻤다.
시들어버린 노친네가 아니라
그저 '늙은 소녀' 같아 예뻤다. (p112~113)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갈증나는 순간에만 절실해지기 때문.
...
늘 충분해서 지극히 당연한 사랑은
퇴색한 보석처럼 빛을 잃어 보인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져야
비로소 어둠이 아파진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p148)
경쟁만을 강조하는 이 사회에 대한 조소나 풍자, 냉소적인 따끔한 소리를 기대하며 펼친 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주옥같은 문장에 놀라 어느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더랬다. 구구절절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짧고 굵직한 문장으로 훅 들어오는 감정선에 자꾸만 눈을 깜빡이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진심이 전해지고 사랑과 정, 내가 누군가를 아끼고 있음을 담담하게 전하는 작가. 열여덟 살 때 갑작스레 아빠를 잃은 충격과 슬픔, 미처 전하지 못한 속마음에 대한 아쉬움 등...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나 역경을 극복하는 놀라운 성공담은 전혀 없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특별했다. 세상의 가혹한 잣대에서 나조차도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끌어안고 보듬어 주는 기분이라 서러우면서도 어찌나 후련하던지. 30분은 버스에서, 40분은 오랜만에 들른 카페에서 다 읽어버린 책. 금세 읽어버렸지만, 그 감동과 따스함은 오랜 여운으로 남아 지금까지 내 가슴에 찰랑거린다.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칠 작가가 눈에 선하지만, 지켜내야 하는 것 중 가장 우선은 자신이라 말하면서도 실은 가족과 친구를 누구보다 아끼는 작가의 착한 마음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위로받았던 시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