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슬롯은 한 마디로 지겨운 소설이다.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심사위원 평 중의 하나다. 김형경은 이 소설을 두고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의 모든 뜨거운 통념들을 조용히 배반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조용히 묻고 싶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의 모든 뜨거운 통념은 무엇이냐고? 이 평은 아무리 봐도 그저 생각없이 툭 던진 주례사 평에 지나지 않는다. 세번째 수상작의 면면을 살피기 위해 일년을 기다려온 독자들을 조용히 배반하는 평인 것이다. 
 
미리 얘기하는데, 나는 이 소설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칭찬을 해 줄 것이 없다. 우선 김형경이 한 저 평을 그대로 뒤집는 것이 나의 첫번째 평이 될 것이다. 
즉, 이 소설 '슬롯'은 
'당신이 도박과 여자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뻔하디 뻔한 통념'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바로 내가 생각하고 우려했던 그 뻔하디 뻔한 통념들이 조금의 배반도 없이 그대로, 오히려 짜증스러움만 더 가중되어 묵묵히 펼쳐지고 있었다.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란다. 그건 맞다. 그러나 지리멸렬한 도박과, 지리멸렬한 여자 이야기다. 밋밋하게 시작해서, 지루하게 전개되고, 짜증나게 늘어졌다가, 다시 밋밋하게 끝난다.
 
남자가 카지노로 간다. 헤어졌던 옛 애인과 함께.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카지노를 어슬렁거리면서 슬롯머신을 당기거나 재미도 없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지루한 인용만 늘어놓는다. 가끔씩 박식한 척도 하지만 매력적이지도 않고, 감탄스럽지도 않다. 
매력있는 캐릭터는 한 명도 없고, 서사는 대단히 빈약하다.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죄다 시답잖은 것들 뿐이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 안드는 것은 작가의 여성 판타지다. 
옛 애인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남자와 카지노로 가고 한 방을 쓴다. 그 여자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며 아직도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카지노에서 젊고, 역시 아름다운 여자를 새로이 만난다. 그 여자도 어쩐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일곱살짜리(도무지 일곱살짜리 같지 않은) 예쁘장한 꼬마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 여자도 어쩐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꼬마 여자아이의 엄마(역시 아름다운)도 만난다. 그 여자도 어쩐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술에 취해서 함께 호텔까지 간다.
장난하나, 지금? 
세상 여자들이 애,어른 할 것없이 죄다 자기를 좋아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남자가 대단한 미남도, 부자도 아니고, 성격이 좋거나, 유머러스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되면 이건 판타지가 아닌가? 웃기지도 않는 판타지다. 어설프게 하루키를 흉내낸 것도 같은데 하루키 소설만의 멋과 매력이 모두 빠지고, 분위기가 괴상하게 변질되면 이런 지루하고 짜증나는 판타지가 나올지 모르겠다.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여자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짜증날 뿐더러 여자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사 자체도 딴에는 쿨하게 보이려 애썼는지 몰라도 식상함과 어색함이 반반일 뿐이었다. 특히 일곱살짜리 아이 명혜의 말이나 행동은 상당히 유치하고(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어색하고, 거북스러웠다. 꼬마아이를 왜 그런 식으로 만들었는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지만, 기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부여되는 각자의 삶과 사연들이 너무도 뻔한 것이거나, 재미없는 것이라 굳이 소설이라는 서사장르를 통해 그것들을 구현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뻔하거나 재미없거나... 이 소설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실에서 크게 실망했다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가까스로 만회가 되었는데, 슬롯에서 다시 미실 이상의 실망을 하게 된다. 단단히 실망을 했다. 실망이란 작가와 심사위원 모두에 대한 것이다.  
정녕 이 작품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 없었단 말인가? 이 작품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이 정말로 없었단 말인가? 1억 고료의 세계 문학상 응모작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상의 존폐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심사위원들은 가독성이라는 말로 이 소설을 칭찬하고 있다. 가독성이라는 말이, 특히 최근의 국내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너무 쉽게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뽑아놓고는 무조건 한다는 소리가 가독성 있는 작품이란다. 그렇게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인데 왜 안 팔리는 것일까? 왜 일본 소설들에 줄창 밀리고 있는 것일까?  왜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까? 
가독성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한다. 
이 소설은 근자에 읽은 가장 실망스런 한국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7-08-18 21:03   좋아요 0 | URL
솔직한 평가에 맘이 확~ 땡기는군요. 물론 제가 사서 읽지는 않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기는 해야겠어요 ^*^

리아트리스 2007-08-20 00:1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정말 실망했지만, 또 재미있게 본 분들도 의외로 많더군요. 어차피 소설의 평가는 평론가가 아닌 독자의 몫이니, 님은 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 지 궁금하네요^^
 
하트 모양 상자 모중석 스릴러 클럽 10
조 힐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희귀 물건 수집광인 과거의 록스타 주드는 인터넷을 통해 유령 붙은 양복을 구입한다.
그때부터 주드와 귀신과의 필사의 사투가 시작된다. 양복과 함께 하트 모양 상자에 담겨온 귀신은 엄청난 적의와 소름끼치는 집념으로 주드를 공포와 죽음의 끝으로 내몬다. 주드는 젊은 애인과 함께 귀신으로부터 도망다니는 한편, 귀신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애쓴다.
귀신은 누구인가? 귀신이 주드에게 배달되어진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귀신은 왜 주드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하트 모양 상자'는 한 마디로 잘 쓰여진 공포소설이다. 이렇게만 쓴다면 모두가 입을 다물 것이다. 공포소설을 하위문학으로 취급하는 고매한 순문학 작가들도, 평론가들도 이 작품 앞에서는 입을 딱, 다물고 말 것이다. 그만큼 '하트 모양 상자'는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비판의 날을 들이댈 자리가 거의 없다. 소재의 선택도 좋았고, 주제도 명확하며. 구성도, 문장도 탄탄하다. 시종 여유를 잃지 않는 작가의 태도도 마음에 들고, 유머도 훌륭했다. 젊은 나이에 브램스토커상을 수상한 작가의 빛나는 경력이 과연 믿음직스럽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누구나 칭찬할 수밖에 없는 작가고, 소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포소설 매니아로서의 기대에는 조금 만족스럽지 못 하다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이 작품이 그저 훌륭하고, 재밌게만 읽히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이 작품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나는 젊은 신예 작가 조힐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공포(혹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공포)를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더 젊고, 더 감각적이고, 더 파격적인, 더 무섭고, 더 역동적인, 더 놀라운 환상과, 공포와 서사를 보여주길, 더 새로운 환상문학의 길을 열어주길,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트 모양 상자'는 무난했다. 무난하다 못해, 조금 낡은 느낌까지 들었다. 조힐은 특별히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탄탄하고, 안정적인 문장으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소재를 택해, 탄탄하고 안정적인 이야기를 펼쳐 나갈 뿐이었다. 귀신이 나오고, 귀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귀신에 얽힌 원한의 내용을 알게 되고, 귀신과 최후의 사투를 벌인다는, 탄탄하고 안정적이지만, 조금은 낡은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젊은 감각으로 새롭게 첨가된 공포나 서사는 없었다. 너무 무난한것도 흠이라면 흠일 수 있을 것이다.
분량이 너무 길다는 것도 작은 흠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까지 길게 나갈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이 아닌데, 중편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더욱 깔끔하고 흡인력 있는 소설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주인공의 내면과 일상을 너무 세밀하게 묘사하다 보니 사실성은 살아났으나, 메인 스토리의 진행이 느린 듯 하여 조금은 불만스러웠다.
또한 조힐은 내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모습와 너무 흡사했다. 이 소설은 작가를 '스티븐 킹'으로 슬쩍 바꿔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킹의 작품 분위기와 닮아 있다. 물론 그 대단한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분위기를 닮았다는 것은 이미 작가의 역량이 아버지에 많이 근접했음을 뜻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힐은 아직 젊은 작가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나는 그가 언젠가는 아버지의 역량을 뛰어넘어 새로운 환상문학의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공포를 창조해 낼 것임을 믿는다.
작가의 첫 장편인 '하트 모양 상자'를 읽고 나면 적어도 그런 믿음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여하튼 '하트 모양 상자'는 잘 쓰여진 훌륭한 소설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록실로의 여행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방 안에 한 노인이 갇혀 있다. 노인은 고립되어 있다.
노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며, 이곳이 어디인지, 왜 갇혀 있는 지 알지 못 한다. 처벌 받기 위해 갇힌 것인지, 보호 받기 위해 갇힌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노인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 한다. 그의 앞에는 한 묶음의 원고와 몇 장의 사진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사진 속의 인물들이 한 사람씩 노인을 찾아온다. 노인은 자신 앞에 놓인 원고와 사진과 방문객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복원해 내야 한다.
원고와 사진과 방문객들에게서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가며 노인은 끊어진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은 모호하기만 하고, 진실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고 생각할수록 두려움과 혼란은 가중된다. 진실은 무엇이며, 노인의 과거는, 그리고 현재는, 또 미래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폴 오스터는 기발한 상상력과 감각적이고 치밀한 구성으로 시작부터 소설 속 캐릭터를 혼란에 빠뜨린다. 캐릭터가 혼란을 거듭할 수록 독자도 혼란에 빠진다. 캐릭터가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뒤집히기도 한다. 진실은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보이다가도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다. 진실은 시종 숨어 있다. 아니, 어쩌면 진실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그것을 캐릭터에게 스스로 찾게 하거나, 혹은 스스로 만들기를 종용하는 듯 하다.
그래서 캐릭터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간다. 오로지 머리(상상) 속으로만 진행되는 운명이지만, 그것은 나름 제모습을 갖춰가며, 캐릭터에게 실존의 색깔을 입힌다. 캐릭터는 소설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그려나간다. 물론 난관은 많다. 우선 몸이 자유롭지 못 하다는 게 가장 큰 장애다. 그는 어쨌거나 원고(감금된 방) 속에 갇힌 인물이니까...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캐릭터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고, 심지어는 소설가도 모른다.(물론 소설가는 안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끝이 나니까) 
각자의 상상으로 결말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인생이고, 소설도 인생이니까,
소설 속의 캐릭터도 결국은 인생을 살아가는 거니까...

지금까지 읽은 폴오스터의 소설 가운데서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기록실로의 여행'은 폴 오스터의 2006년 최신작이며, 그 대단했던 '공중 곡예사'나 '뉴욕 3부작'보다 더 강한 흡인력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참으로 독특한 소설이다.
분량은 고작 200여 페이지로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엄청난 것이다. 심지어 그 끝이 열려 있어, 책을 덮고도 아직 소설이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일상에서, 무의식중에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소설이다.  

소설 속 노인이 감금된 방 안에 홀로 갇혀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처럼, 폴 오스터라는 작가도 아마 그런 치열한 고뇌와 탐구를 거듭하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할 것이다. 소설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타자는 영원한 타자일 뿐, 나의 문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 한다.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고, 노력이며, 고통이고, 즐거움이다. 그 지독한 과정을 열렬히 사랑하고, 즐기지 못 한다면 진정한 소설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산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제한된 공간, 제한된 자유 안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탐구하고, 증명하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만 하는 무모하고 고된 작업. 그러나 그 작업을 한 순간이라도 멈추게 된다면, 존재는 순식간에 공백(blank)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인생은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쓰다 만 미완의 원고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탐험가들 모중석 스릴러 클럽 8
데이비드 모렐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나에게 별 다섯 개 짜리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한 치의 지루함도 없고, 한 치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그래서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최고'라고 말 할 수 있는, 바로 이런 소설. 

패러곤 호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환희와 좌절, 숨겨진 아픔과 공포의 역사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지금은 문을 닫은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거대한 화석 같은 건물이다. 
밤 열 시. 다섯 명의 크리퍼(도시탐험가)들이 지하터널을 통해 패러곤 호텔로 잠입을 시도한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탐사다. 버려진 건물이나 시설 등에 잠입해 그곳에 서려 있는 과거의 시간과 그 안에 깃든 추억들을 음미하고, 잠들어 있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거대한 공포가 그들을 삼켜 버린다. 그 낡은 건물은 벗어날 수 없는 악몽 속으로 크리퍼들을 인도한다. 100년의 시간이 숨 쉬듯 살아있는 섬뜩한 과거의 신전 속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괴물이 그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이제 크리퍼들의 목적은 오직 살아남는 것. 출구가 완전히 봉쇄된 암흑의 공간 속에서 크리퍼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적과 사투를 벌인다. 금고 속에 갇혀 있던 정체불명의 한 여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가 오고 있다'
'그는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늦었다.
'그'는 이미 호텔에 있었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옥 같은 폐건물 속에서 크리퍼들은 한 명씩,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
크리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의 정체는 무엇이며, 패러곤 호텔에 숨겨진 잔혹한 비밀은 무엇일까?
두터운 과거의 시간층 속에 숨겨져 있던 진실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소설은 밤 아홉 시부터 시작하여 여덟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그린다.
여덟 시간 동안 상상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평온했던 크리퍼들의 신상에 엄청난 변화가 온다. 추억이 공포로 바뀌고, 탐험이 사투로 바뀌고, 과거가 현실로 바뀌고, 삶이 죽음으로 바뀐다.
데이비드 모렐은 소설을 어떤 식으로 써야 독자를 끝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지를 제대로 아는 작가다. 그는 거의 정공법적인 방식으로 호러와 서스펜스의 진수를 보여주다가 별안간 예상치 못한 반전을 터뜨리며 엄청난 박진감과 카타르시스로 독자를 마지막까지 악몽의 끝으로 내몬다.
마치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펼쳐지는 역동적인 서사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숨막히는 스릴, 지루한 틈을 주지 않는 긴박한 사건과 위기의 연속...  
'장르'의 특성을 떠나 떠나 모름지기 '소설'이 갖춰야할 최고의 미덕, '재미'로 완전하게 무장을 한 작품이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독자는 작가의 손아귀에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 한다. 

이 소설은 서스펜스 스릴러로 분류하기보다 호러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무난할 듯 싶다. 최고의 호러소설에게 주어지는 '브램 스토커 상'을 2006년에 수상한 작품이며, 무엇보다 스티븐 킹의 최신작이었던 '셀'보다 '공포'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체감 공포'와 '호러적 재미'면에서 이 작품을 능가하는 호러소설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물론 '호러적 재미'가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작가는 그 유명한 영화 '람보'의 원작인 '퍼스트 블러드'로 데뷔를 했었다. 장르적 재미 이면에 진지한 고찰과 감동을 깔아놓을 줄 아는 훌륭한 작가다. 게다가 작가는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취재와 조사, 연구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속에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숨막히는 공포와 손에 잡힐 듯한 리얼리티가 멋진 조화를 이루며 '걸작'이 탄생되는 것이다. 
호러소설의 세계적인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븐 킹과 딘 쿤츠 등도 이 작품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현재 영화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사카 고타로의 상상력은 기상천외하면서 따뜻하다. 그의 상상력에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묻어난다. 무심코 스쳐 지났던 문장의 의미가 나중에야 되살아나며 짙은 향을 내뿜는다. 그 향은 황홀한 칵테일처럼, 음악처럼 우리를 기분좋게 취하게 한다.  

이번 연작 소설에서 이사카 고타로는 '치바'라는 사신을 등장시킨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신의 모습과 이미지를 깔끔하게 배반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사신이다.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등장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소설을 읽으면 대략 난감해진다.  

고타로가 창조한 사신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인간과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다만 인간의 습성들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인간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과 대화를 나누면 늘 조금씩 핀트가 어긋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다. 인간은 모두 사라져도 좋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이 만들어 낸 음악도 사라지게 될 터이니, 다만 그것이 걱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며칠이고 음반 매장에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다.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니까 해야만 한다. 사신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 죽음에 임박한 인간을 일주일 동안 지켜보고, 그의 죽음까지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일을 한다.
여섯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여섯 명의 인간들을 지켜본다.
죽음에 임박한 인간을 지켜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고민을 듣고, 진심을 가늠하고, 상황을 파악하다, 가可, 불가可(보류)의 판단을 내린다. '가'가 되면 예정대로 죽는 것이고, '보류'가 되면 죽음은 미뤄진다.
그러나 대부분이 '가'다. 죽음이 임박한 인간은 예정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죽는다면 이상하지만, 사신이 찾아왔다는 것은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억울한 일도, 두려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이나, 잠이 와서 잠을 청하는 것이나, 푸른 하늘을 보고 싶어 고개를 드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순수한 일이다.  

작가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한다. 또한 '삶'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담담하게 재해석한다.
행여 죽음이 목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그리고 그것은 목전에 다다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고, 대부분 그 시기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살다가 죽는 것.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한 결론이지만 살아 있는 순간을 늘 최선의 시간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죽음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삶이다.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최선을 다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에 있어서 최선이란, 그 의미를 깨닫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의 마지막 한 순간까지 즐겁게 웃다가 어느날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듯, 가만히 눈을 감는 것.

치바가 사신임을 알아챈 한 노파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죽음은 전혀 특별하지 않죠. 하지만 중요한 일이지요.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인간에게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일은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죽음은 그저, 중요하고, 자연스럽고, 눈이 부셔서 그만 눈을 감는 일일 뿐이다.

수록된 단편들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은 맨 처음에 실린 '사신의 정도'와 맨 마직막 작품인 '사신vs노파'였다. 나머지 단편들도 모두 재미있고, 작가의 또다른 연작 소설 '칠드런'처럼 마지막에는 예상치못한 반전, 혹은 진실들을 하나씩 숨겨두고 있다.
사신이 등장한다고 해서 칙칙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감상에 젖어 늘어지지도 않고, 눈물이나 찔찔 짜면서 신파로 흐르지도 않는다. 여차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사카 고타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작가는 영리하고, 독자를 배려할 줄 안다. 칙칙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날씨는 흐리지만, 내내 죽음을 다루고는 있지만, 시종 재기발랄한 유머와 따스한 감동이 넘치고, 예상치 못한 유쾌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진정 쿨한 소설이란 바로 이런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사카 고타로는 '사신의 정도'로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