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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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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게 한편으로 후회스럽고,
이제라도 읽게 되었다는 게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이런 문학을 국내에 소개해준 출판사에 감사드리고 싶다. 편집장의 안목에 찬사를 보낸다. 물론 작가에 대한 찬사가 앞서겠지만.

왜 일본 문학을 하루키와 바나나가 양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말들을 하루키가 딱 반을 사용했고, 나머지 반을 바나나가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하루키의 책에 몰입하면서 매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던 2000년, 2001년의 내 모습이 바나나의 소설을 읽으며 재현되고 있었다. 이제 바나나의 소설들을 모두 사 읽을 것 같다.

키친은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인 키친과 만월은 이어지는 연작이며, 마지막 수록작인 달빛 그림자는 바나나가 니혼 대학 문학과를 졸업하면서 쓴 단편으로, 예술학부장상을 받으며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이다.

이 소설들은 일단 무지 잘 읽힌다. 하루키의 소설처럼 기막힌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디테일과 스쳐지나가는 작은 존재들에서 우주와도 같은 큰 의미를 포착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루키의 소설과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하루키는 이야기의 힘이 강한 반면 바나나는 분위기의 힘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그녀는 그녀만의 분위기로 이야기를 포장할 줄 안다.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루키와 전혀 다르다. 같은 청춘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지만 하루키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을 보인다. 하루키보다 늦게 데뷔했으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하루키 못지 않은 입지를 다져 나간 것이다. 놀랍다. 과연 작가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진정한 작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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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당신?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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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윤성희의 소설은 전작들에 비해 월등히 성숙되고,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레고로 만든 집을 벗어나 '거기'에 있는 '당신'을 찾아 길을 떠난다.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고, 자아를 돌아보고, 자신에게 보다 충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방향을 잡아 준다. 윤성희는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상처입은 이들을 감싸 준다. 자신은 말을 아끼면서 상대의 말을 끝없이 들어준다.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지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준다.
최근의 국내 소설가 중에서 이 만큼 뚜렷한 자기 색깔과 목소리를 지닌 작가는 드물다고 본다.
역시 윤성희에 대한 내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그녀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기대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문학인 모두의 기대가 크다.

수록된 10편의 단편은 대부분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올해의 좋은 소설 등의 후보로 거론되었던 작품들이고, 그 중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제 50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이 되었다. 또한 이 소설집은 벌써부터 2005년 동인문학상 후보로 강력히 점쳐지고 있다.
이 젊은 작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녀는 분명 2000년대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다.

수록작품 모두가 잘 읽혔지만 그중 베스트를 뽑는다면

어린이 암산왕
그 남자의 책 198쪽
봉자네 분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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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 전2권 세트
앨런 폴섬 지음, 이창식 옮김 / 넥서스BOOKS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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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대단히 빨리 읽게 될 것이라 짐작했었지만 3주가 걸렸다.
헐리웃 액션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강한 흡인력과 끊임없이 고조되는 긴장감과는 별도로 이 책에는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너무 많은 사건들이 담겨져 있기에 하루 이틀 만에 금방 다 읽혀질 책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원고 분량(3천 7백매)만 봐도 결코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물론 연말 연시를 맞아 회사에서도, 또 개인적으로도 바쁘고 심란한 일들이 많아 책 읽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이 대단한 책을 다 읽었다. 두 권짜리지만 페이지 수로는 900매가 넘는, 웬만한 편집본으로는 족히 세 권짜리로 나왔을 이 거대한 장편 소설을 마침내 다 읽은 것이다.

전작 모레에서 보여 주었던 스토리 텔러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작가는 추방에서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영화 같은 소설이다. (분명 헐리웃 영화 제작사에게 판권이 넘어갈 것이다.)
실제로 폴섬은 소설가로 대뷔하기 전에 헐리웃에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때문에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 구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작 모레도 그러했듯이 추방에도 엄청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면서 빈틈없이 꽉찬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추방은 모레와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독자의 시선을 확실하게 사로잡는다. 소년이 소년을 죽이는 스너프 필름을 두 사내가 분노의 눈길로 바라보며 시작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다. 살인자 레이몬드가 탄 기차에 경찰들이 잠복해 있다. 이 경찰들은 보통 경찰이 아니다. 최고의 인재들로만 구성된 최정예 특수 요원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레이몬드라는 살인자도 보통 살인자가 아니다. 레이몬드는 단번에 경찰들을 알아보고 탈출구를 모색한다. 그러나 사건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엉뚱한 사건들과 최초의 프롤로그 사이에는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 세계에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다. 소설은 시작부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놀래킨다. 그 반전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야기이 흐름을 수 없이 뒤바꿔 놓는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 한다.

특히 이 소설에는 추격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정말 압권이다. 다수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는, 도망다녀야만 하는 소수 인물들의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소리가 활자와 지면을 뚫고 나올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음모와 살인, 도주와 추적, 그리고 이어지는 반전들...

2005년 시작부터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게 행운이다.
읽는 데 긴 시간이 걸렸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보람이 느껴지고, 뿌듯하다.
다빈치 코드의 성공에 힘입어 이런 재미있는 소설들이 더 많이 나와 주길 바라는 바다. 그래서 또 100만부 이상 팔리고, 인기를 끌고, 아주 아주 잘 팔렸으면 좋겠다. 재미 없는 글을 쓰는 작가들이 긴장 좀 하게... 재미 없는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 편집장들의 가슴이 많이 쓰라리도록...

* 개인적으로는 추방이 다빈치 코드 보다는 더 재밌고, 앨런 폴섬의 전작이었던 모레보다는 조금 덜 재미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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