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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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은희경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장편과, 소설집 모두를.

은희경은 한 때 정말 좋아했던 작가다.
특히 장편 '새의 선물'과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에 실렸던 그녀의 초기 단편들을 좋아했다. 뭔가 사회에 반항적이고 삐딱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소설들이 좋았다. 새의 선물은 외딴 방과 함께 국내 성장 소설 가운데 최고의 수작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후로 은희경을 따라하는(그렇게 보이는)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런 작품들이 난무했고, 심지어는 은희경 스스로도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우라에서 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은희경의 소설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시들해져 갔다. '그것은 꿈이였을까'와 '마이너리그'는 참 잘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소설이기도 했다. 실망은 안했지만 찬사를 보낼 수도 없는 소설들이었다.

상속에 실린 작품들 역시 그런 느낌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듯 했다.
잘 된 작품도 눈에 띄었다.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던 중편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와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아내의 상자'는 확실히 수작이었다. 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기대감이 작용되어 더 꼼꼼히 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은희경 특유의 흡인력이 잘 느껴지는 소설들이라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잘 읽혔기에 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표제작인 '상속'을 비롯하여 '딸기도둑', '내가 살았던 집' 등은 특이할 게 없었다. 물론 떨어지는 작품들도 아니었다. 그저 지극히 은희경스러운 소설들인 것이다.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와 '태양의 서커스'도 그럭저럭 잘 읽혔지만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는 듯 했다. 은희경이라는 중견 작가가 쓴 소설치고는 평범한 정도였다.

이 책을 다 읽는데 9일이 걸렸다. 과거에 새의 선물을(4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편을) 이틀만에 다 읽었던 것에 비하면 이 신작 소설집에 그녀 특유의 흡인력과 감각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곧 그녀의 새로운 장편 소설 '비밀과 거짓말'이 출간된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은희경의 팬이고, 그녀에 대한 기대감은 아직 두 손으로 쥐고도 남을만큼 넉넉히 남아 있다.
그녀가 새의 선물 같은, 혹은 그것을 뛰어 넘는 작품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비밀과 거짓말이 그런 작품이 되어 주길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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