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장편소설을 쓰면서 김연수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눈에 보인다. 그리고 읽는 내내 나도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김연수야 '프로소설가'이니 수많은 취재와 공부들이 즐거운 고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자인 나에게는 그저 고생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다 읽었는데도, 별로 고생하지 않고 읽은 책들에 비해 특별히 더 많은 것을, 혹은 더 값진 것을 얻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고생한 게 아까웠다. 김연수는 적어도 그 고생들의 대가로 원고료는 받았을 게 아닌가. 독자는 작가의 고생에 대한 대가(혹은 치하로) 책값을 지불하는 것으로 일차적인 소임은 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아무리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해도 자신의 책을 사는 독자를 위해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연수는 이 책에서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다. 한자가 나오면 옥편 뒤져가며 찾고, 이해가 안 되면 교과서를 읽듯 두세번 다시 읽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전언한 바대로 나도 고생해서 썼으니, 읽는 독자들도 고생을 좀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불성설이다. 프로소설가의 소설을 읽으려면 프로독자라도 되어야 한다는 얘긴가? 프로소설가야 소설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니 소설 쓰는 일에 완벽을 기하는 게 당연하지만, 독자까지 책 읽는 일에 완벽을 기해가며 읽을 수는 없다. 독자들도 개개의 직업이 있고, 개개의 분야에서는 '프로'일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을 읽기 위해 '프로독자'로서의 자세까지 갖출 여유는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실망스럽다.
이 책은 다분히 김연수 개인의 만족을 위해 씌어진 소설같다. 이 소설을 가장 환호하며 읽을 독자는 아마 김연수 자신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김연수의 사고나 경험, 취향들과 공통분모를 지닌 독자들이라면 김연수와 함께 열렬히 환호를 하며 이 책을 읽었을지 모르겠다. 특히 작가와 비슷한 시대를, 비슷한 경험으로 살아온 비슷한 연배의 독자라면...

그게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연수가 풀어놓는 '이야기들'과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주제 혹은 사상'에 감동할 수가 없었다. 나의 관심사와는 전혀 먼 이야기들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관심을 가질 법도 한 이야기들을 김연수라는 작가가 재미없게(내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불친절하게) 풀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신문기사를 읽는 듯한 역사 속의 수많은 사건들과 구구절절 촌스런 사랑 타령이 짜증나거나 진부해서 하품이 나왔고, 심지어는 화도 났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신문기사 같은 이야기들만 주절댈 것인가, 발끈하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단히 간단하고, 복잡하게 말하자면 말 할 수가 없다. 역사의 거대한 홍수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개인의 고통과 탐구, 혹은 기록에 대한 이야기다. 온몸에 역사의 바퀴자국을 남긴 사람들의 절망과 고뇌와 분노와 성찰...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새롭지는 않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 문학이 다양하게 시도를 해 온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썼고, 어떤 것은 수작이었고, 어떤 것은 태작에 불과했고, 어떤 것은 재미가 있었고, 어떤 것은 재미가 없었다. 이 소설도 여하튼 그런 것들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김연수라는 작가가 문학동네에 새로운 장편을 연재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장편이 이런 이야기인 줄은 몰랐다. 

소설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소설들이 몇 있었다. 먼저 하루키의 여러 소설들이 떠올랐고,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가 떠올랐고, 몇몇 한국 소설들이 떠올랐다.
낡은 사진 한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낡은 책 한권으로 시작하는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와 닮았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서로 얽히고설키며 과거의 이야기가 복원되고, 잊혀졌던 역사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유사하다. 그러나 읽히는 재미를 말하자면 '바람의 그림자'가 압도적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흡인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 물론 이야기도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추측인데, 김연수는 어쩌면 '바람의 그림자'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끊이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방대한 이야기,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지나온 역사 속에서 서로 맞물리며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씩 복원되고,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저마다의 삶과 사랑을 깨닫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내 추측이 맞다면 김연수의 이번 신작은 실패작이다. '바람의 그림자'는 그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설 전반을 흐르는 미스터리와 추리기법이 마지막까지 독자의 긴장과 흥미를 최고조로 유지시킨다. 그러나 김연수의 소설은 가장 중요한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가 시도하고자 한 바들이 독자에게 온전히 먹혀들지 않는다. 이야기는 맥없이 풀리고 엉켜서 가닥을 잡을 수가 없고, 캐릭터들은 매력이 없다. 시종 딱딱하거나 진부한 분위기는 몇 장 읽다보면 절로 눈을 피로하게 만든다. 언뜻 하루키의 8,90년대 소설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지만 역시 재미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다. 굳이 가장 비슷한 소설을 찾자면 내가 하루키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없게 읽은 '상실의 시대'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 떠오른다. 한국소설 가운데서는 수많은 후일담 문학들을 제치고 최근에 읽은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두 소설 사이에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둘 다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것 뿐이지만.  

하지만 나는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를 읽었을 때는 김연수라는 작가에 환호하고 감동했었다. 무엇보다 그 소설집은 '재미'가 있었다. 잘 읽혔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는 '원미동 사람들', '카스테라' 등과 함께 내가 읽은 최고의 국내 소설집 중 하나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들떠 그의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사들인 책들이 책장에 다섯 권이나 꽂혀 있다. 그러나 이제 김연수는 더이상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같은 소설을 쓰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의 소설은 점점 그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비슷한듯 하면서도 달라졌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나올 김연수의 소설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더 가까운 소설들일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내가 환호할 수도, 감동할 수도 없는 작품들을 계속 쓸 것이라는 얘기다. 그를 오래 지켜봐 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만큼 그를 더 좋아하게 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세상은 상대적인 것이니. 김연수의 이런 스타일에 환호하고 감동하는 독자들은 계속 그의 책을 사 읽겠지. 지금까지 올라온 리뷰들이 대부분 칭찬 일색인 것을 보면 확실히,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이 소설이 '재미있게', '금방' 읽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특히 평론가들은 더욱 극찬을 할 것 같다.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실망했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는 소설이라...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어... 다음 작품은 좀 더, 재미있게, 독자를 배려할 줄 아는 소설을 써 주었으면 싶다. 그래도 계속 자신이 힘겹게 썼으니, 독자도 힘겹게 읽어야 한다느니, 프로소설가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 하거나, 프로소설의 작품에서 진정한 재미를 발견하지 못 하거나, 혹은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독자 따위는 필요없다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잘 쓰든, 나도 책을 사지 않으면 되니까.

*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읽고 워낙 큰 실망을 한 터라 주절주절 얘기가 길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써 주지 않아서 모종의 배신감 같은 게 느껴진 탓일테다. 여하튼 이렇게 또 한국 소설과 한 걸음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미미여사처럼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신뢰를 주는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좀 있었으면 싶은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김애란이 2005년에 발표했던 단편이다.
나는 정말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같은 기분으로 김애란의 두 번째 소설집을 기다렸다. 그녀는 첫 소설집을 낸 지 채 2년도 안 되어서 두 번째 소설집을 상재했다. 비교적 빨리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달려라 아비>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던 까닭이다. 첫번째 소설집을 봤기 때문에 두번째 소설집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하튼 그녀는 다시 왔다.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끊임없이 달리게 만들었던 것처럼 그녀 자신도 힘차게 달려서 왔다. 지난 2년간 김애란은 꾸준히 질주하고 있었다. 매 계절 끊이지 않고 작품이 발표되었다. 그 결과 여러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내밀었고, 이렇게 빠르게 두번째 소설집을 묶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운 좋고, 인기가 좋은 작가지만, 기본적으로 부지런하고 할 얘기가 많은 열정적인 작가다.  

김애란의 시선은 더욱 낮아졌고, 더욱 깊어졌으며, 더욱 밝아졌다.
한 층 몸을 구부리고, 자신보다 더 낮은 곳의 풍경을 응시하고, 더 낮은 곳에서 흘러드는 풍문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낮은 곳의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남루한 젊음의 초상들. 그러나 겉모양이 남루하다고 꿈까지 남루할 수는 없다. 낮고 그늘진 그 곳에서도 애드벌룬처럼 꿈은 파란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바람이 불고, 물이 넘쳐나고, 복작대는 인파에 치여 이리저리 흔들리며 상처받아도 그들의 꿈은 맹렬히 부풀어 오른다. 솟아오르는 꿈의 끈자락을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쓴다. 언젠가는 거대하게 부풀어진 꿈의 풍선이 자신을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는 정겹고 기분 좋은 곳, 재수생이 아닌 대학생이 될 수 있는 곳, 백수가 아닌 직장인이 될 수 있는 곳,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유롭고 아늑한 곳, 엄마와 아버지가 부재하지 않는 곳, 결핍이 없는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곳,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원한다. 자신만의 네모난 자리를 원한다. 자신의 미래는 더없이 밝고 아늑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믿음만으로 사람들의 입에는 침이 고인다.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겨난다. 그렇게 하루하루 부풀어가는 꿈을 바라보며, 남루한 현실 속의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저마다의 방을 꿈꾸며...
저마다의 별자리를 그리며...

여덟 편 가운데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이기도 한 '침이 고인다'였다. 이 단편에는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현재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점들이 다 들어가 있는 듯 했다. '도도한 생활', '자오선을 지나갈 때', '칼자국', '성탄특선', '기도' 등도 좋았다. 수록작들의 재미가 모두 평균을 넘어섰다.
<달려라 아비>에 비해 템포는 조금 느려졌지만, 호흡은 더 안정된 것 같다. 다시말해 이제 더 긴 코스를 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애란은 곧 장편 집필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장편을 기다린다. 벌써부터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같은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착한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나호코를 다시 만나 기뻤다.
스기무라는 이번에도 얼떨결에 탐정 역할을 맡게 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그가 사건을 해결한다.
'이름 없는 독'은 크게 두 가지 사건을 축으로 돌아간다. 두 사건의 중심에는 독기를 품은 두 인간이 있다. 그러나 독을 풀어내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방식은 다르지만, 치명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스기무라는 우연찮게 두 사건 모두에 발을 담그게 되고, 두 곳에서 흘러나온 독을 치유하고 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목숨의 위협도 받고, 가족이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이름 없는 독'은 2006년 '주간문춘 선정 걸작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제4회 서점대상에서도 10위를 차지했다. 또 작가는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화차', '이유', '모방범' 등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이름 없는 독'은 미미여사의 대표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세상을 병들게 하는 범죄와 죄악들을 '독'에 비유한다. 사람의 몸에 깃든 '독기'가 바로 범죄를 유발시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독을 정화시키켜야만 한다. 독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정화해야만 한다. 독은 결국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오염된 땅이 집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병들게 하듯, 정화되지 못한 환경이 그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의 마음을 사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독을 정화하는 작업이란 쉽지가 않다. 세상 모든 사람을 불행에서 건져올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스기무라는 마침내 사건을 해결하지만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두 명의 범인은 검거되지만, 세상의 독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독기들이 아직 많다. 실체를 갖추지 않은 독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사자라는 포악한 짐승에게 '사자'라는 이름을 붙여줌으로해서 인간은 사자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독도 실체가 있어야만 정화시거나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실체를 갖고 있지 않은 위험과 살의가 너무 많다. '이름 없는 독'들이 도처에 고여있는 것이다.
세상이란 거대한 생물은 과연 그런 독들에 얼마나 많이 중독되어 있을까. 그런 세상의 구원이 가능하기나 할까.

스기무라 사부로는 행복한 탐정이다. 그의 아내는 재벌의 딸이고, 그에게는 좋은 직장이 있으며, 귀여운 딸이 있다.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그는 타자의 독에 무감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다. 탐정이 되기에는 너무 무른 인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수함과 순진함이 있기에 사건을, 그리고 범인을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따뜻하고 성실한 노력이 있기에 무시무시한 사건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무난히, 다행스럽게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스기무라는 탐정 보다 인간으로서 매력이 있다. 이런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 시리즈가 하나쯤은 있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사건은 무엇일까.
우리의 착한 탐정, 스기무라가 안간힘을 다해 해결할 다음 사건은 또, 얼마나 무섭고, 추악한 것일까. 나호코는 또 얼마나 심장을 졸일까. 스기무라의 멋진 장인어른도 여전히 건재할까.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작이다. 이 소설은 온다 리쿠의 대표작이 되어도 좋을 듯 싶다.
대단한 작품이며, 잘 쓰여진 소설이란 어떤 것인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좋은 소설이란 어떤 소설인가부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작가의 고뇌,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까지... 책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에 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 속에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동명의 소설책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책이 펼쳐지는 일은 없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소문으로만 떠돈다. 총 4부작으로 이루어진 그 책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도중에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책은 초판이 고작 200부가 찍혀 세상의 일각에만 잠시 풀렸다가 곧 회수가 된다. 작가가 누군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사정이 담긴 책인지도 모르며, 그 책을 읽은 사람도 많지 않다. 책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 소문의 회로 속에 한 발을 내딛으면 그 순간, 깊은 구렁 속으로 빠져들 듯,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의 마력 속으로 끝없이 빨려들어간다.

이 신비의 책을 둘러싸고, 네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번째 이야기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한 청년이 회장의 저택으로 초대받아 그 곳에서 회장의 친구들과 함께 3일을 보내는 이야기다. 일종의 내기가 진행된다. 청년은 저택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아내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청년은 회장과 그 친구들로부터 책의 내용과 소문들에 대해 듣고, 나름 단서를 찾아나가지만 책의 행방은 묘연하다.
두번째 이야기는 출판사 편집자로 있는 두 여자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작가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하는 이야기다. 그들은 야간 열차 안에서 술을 마시며 끊임없이 책과 저자에 대한 궁금증들을 주고받으며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놀라운 진실이 그들을 맞이한다.
세번째 이야기는 아름다운 두 소녀의 추락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다. 두 소녀가 공원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이것이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 남학생과, 그 소녀들의 이복 언니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간다. 죽은 소녀들에 얽힌 무섭고 안타까운 비밀이 조금씩 베일을 벗고, 그 과정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의 서막이 오른다.
네번째 이야기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을 쓴 저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저자는 이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을 완성하려고 하고, 그 이야기 속에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의 시작을 알리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다. 삼월에만 학생들을 받는 수수께끼 같은 학원을 배경으로 소년 소녀들의 끔찍하고 가슴 아픈 핏빛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비로소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씌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책은 총 4부작으로 마무리된다.
각 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모두 미스터리를 안고 있다. 추리소설처럼 마지막 순간에 늘 예상치 못한 반전이 터진다. 또한 호러와 드라마와 로멘스가 깔려있기도 하다. 판타지도 물론 있다.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색깔들을 다 보여주는 책이다. 이야기 또한 진수성찬을 이룬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를 낳기도 한다. 심지어,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하기도 한다. 책을 펼치면 수많은 이야기가 무성히 달린 이야기 나무가 눈앞에 서 있는 듯 하다. 가히 소설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장르와 이야기들을 아우르는 것은 노스텔지어다. 온다 리쿠를 노스텔지어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책 한 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장르들이 노스텔지어로 채색되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온다 리쿠만의 색깔을 낸다. 그것은 곧 온다 리쿠만의 멋진, 이야기인 것이다.  

읽는 내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역시 책에 대한 이야기이며, 책 속의 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같다. 미스터리부터 로멘스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으며, 책장을 펼치면 멈출 수 없을 만큼 재미있다는 것도 같다. 차이점이라면, 노스텔지어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바람의 그림자'도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향수의 색깔이 온다 리쿠의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선입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남성적인 향수와 여성적인 향수의 차이 같다. 사폰의 글은 아련하면서도, 어딘지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온다 리쿠의 노스텔지어는 여성적이면서 동시에 유년적이다. 부드럽고 섬세하며, 연약한듯 하면서도 긴 여운을 끈질기게 남긴다. 서사의 강렬함에서는 사폰이 조금 앞서는 듯 싶고, 노스텔지어의 마력은 온다 리쿠가 더 강한 것 같다.   
여하튼 '바람의 그림자'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든, 멋진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에 대한 감탄과 존경심이 마구 발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말로 멋진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작가에 대한 존경심보다 이야기 자체에 대한 감탄과 환호가 앞서기 마련이다. 작가고 뭐고 다 잊고, 다만 이야기가 주는 황홀경에만 젖어드는 것이다. 

책 속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정말로 멋진 이야기는 작가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게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야기가 열리는 나무가 있고, 작가는 다만 그 이야기를 옮겨 적는 일을 할 뿐일지도 모른다. 정말, 정말 멋진 이야기라면 말이다.
과연, 머리가 끄덕여진다. 진짜 멋진 이야기는 개인의 체험, 혹은 역사 따위에서 비롯될 수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 혹은 역사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관점 같은 게 개인의 머리를 거쳐서 개인적으로 채색된 이야기는 결코 아주 멋진 이야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주 멋진 이야기는, 이 책에 씌어진 표현처럼, 애초에 그저 존재하고 있어야만 한다.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이야기가 열리는 나무가 있거나, 혹은 그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정말 멋진 이야기를 써 내는 작가는, 그런 이야기가 열리는 나무, 숨어 있는 멋진 이야기들의 꼬리를 발견해 낼 줄 아는 작가인 것이다. 
온다 리쿠는 어쩌면 이야기가 열리는 나무를 발견한 작가일 지도 모른다. 온다 리쿠에게 꼭 맞는 이야기들이 열리는 나무. 그래서 그녀는 작가로서 행복할 것이다. 그녀의 애독자임을 자처하는 나도 그래서 행복하다.  

 * 책을 읽으면 누구나 책 속에 등장하는 동명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읽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애태울것 없다. 이 책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이미 책 속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은 것이니까. 당신이 그토록 읽고 싶어하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바로 당신이 읽고 있는 그 책인 것이다. 4부작까지 다 읽고 나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 제목이 되게 애매했는데(삼월은 붉은 구렁까지는 좋았는데, 뒤에 '을'이라는 목적격 조사가 왜 붙어야만 했는지 되게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과연, 저 제목 말고 다른 제목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꼭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슈카와 미나토의 소설집은 <새빨간 사랑>을 가장 먼저 읽었고, 다음에 <꽃밥>, <도시전설 세피아>순으로 읽었는데, 재미와 감동의 순위를 매기자면 읽은 역순이다. <도시전설 세피아>는 슈카와 미나토라는 작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가히 슈카와 미나토 작품 세계의 원형과도 같은 소설집이다. 
이제서야 국내에 소개가 되는 <도시전설 세피아>는 놀랍게도 작가의 데뷔작이다. 슈카와 미나토는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 가운데 중편 '올빼미 사내'로 올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등단 다음해에 첫번째 소설집 <도시전설 세피아>를 출간해 그해 나오키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도시전설 세피아>는 기념비적이며, 놀라운 데뷔작인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다섯 편의 중편(혹은 긴 단편?)이 실렸는데, 개인적으로 다섯 편 모두가 마음에 든다. 개개의 작품들에 절대평가를 내려본다면 모두 90점 이상이다. 이렇게 수록작들이 고르게 우수한 소설집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웬만한 역량의 작가라면 그런 소설집을 써내지 못 할 것이다.(로알드 달 정도나 되면 모를까) 그 대단한 스티븐 킹이나 하루키의 소설집도 수록작들이 모두 훌륭한 것은 없었다. 한 두개 정도는 떨어지거나, 적어도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는(그래서 재미 없는) 소설이 끼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시전설 세피아>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들은 모두 마음에 꼭 든다. 읽히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모두 소설적 완성도와 작품성도 뛰어나다. 섬뜩한 공포를 가득 머금고 있으면서도 노스텔지어를 강하게 자극하는 매혹적인 문장 또한 더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데뷔작이 이렇게 좋으니, 과연, 작가의 습작기가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이었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슈카와 미나토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는데, 그만큼 철두철미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는 말이 된다. 한마디로 기본기가 탄탄한, 이미 오래 전에 준비된 작가였다는 말이다.  

수록작 다섯 편은 모두 공포소설로 분류되어도 좋을 만큼 오싹하고 잔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분위기도 섬뜩하고 무섭다. 다만, 공포 속에 노스텔지어가 스며 있다. 그리고 그 향수 속에 아파하고, 고뇌하는 인간의 얼굴이 있다. 무언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혹은 순수한 열정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 밑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야성적인이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본능이 매혹적인 문장으로 그려진다. 사람이 죽고, 잔혹한 풍경이 묘사되지만, 소설이 끝날 즈음에는 분노도, 공포도 사라지고 노을빛처럼 아름답고 쓸쓸한 감동과 슬픈 여운만 남는다.
'올빼미 사내'에서는 도시전설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전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가 전혀 밉거나 무섭지 않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안쓰럽고 애처로울 뿐이다. 마지막 순간의 반전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며,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며, 섬뜩하지만 아름답고, 열정적이지만 쓸쓸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반전은 늘 가슴 시린 여운을 남긴다.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럴 것이다. 즉, 나도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이고,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나약하고 쓸쓸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피아 빛 전설 같은 것을 가슴 속에 하나씩은 묻어두고 살아가지 않을까.  

수록작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마지막에 실린 '월석'이었다. 이 작품은 꿈 같은, 너무나 가고 싶어 발을 구르고 애를 태우지만 결코 갈 수 없는, 먼 옛날 이미 지나가 버린 한 줄기 빛 같은, 행여 먼발치에서 보게 되더라도 결코 붙잡을 수는 없는, 그런 꿈 같은 이야기며, 그런 꿈 같은 아련한 슬픔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꽃밥>에 실려있던 '도까비의 밤'과 함께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