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슈카와 미나토의 소설집은 <새빨간 사랑>을 가장 먼저 읽었고, 다음에 <꽃밥>, <도시전설 세피아>순으로 읽었는데, 재미와 감동의 순위를 매기자면 읽은 역순이다. <도시전설 세피아>는 슈카와 미나토라는 작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가히 슈카와 미나토 작품 세계의 원형과도 같은 소설집이다. 
이제서야 국내에 소개가 되는 <도시전설 세피아>는 놀랍게도 작가의 데뷔작이다. 슈카와 미나토는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 가운데 중편 '올빼미 사내'로 올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등단 다음해에 첫번째 소설집 <도시전설 세피아>를 출간해 그해 나오키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도시전설 세피아>는 기념비적이며, 놀라운 데뷔작인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다섯 편의 중편(혹은 긴 단편?)이 실렸는데, 개인적으로 다섯 편 모두가 마음에 든다. 개개의 작품들에 절대평가를 내려본다면 모두 90점 이상이다. 이렇게 수록작들이 고르게 우수한 소설집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웬만한 역량의 작가라면 그런 소설집을 써내지 못 할 것이다.(로알드 달 정도나 되면 모를까) 그 대단한 스티븐 킹이나 하루키의 소설집도 수록작들이 모두 훌륭한 것은 없었다. 한 두개 정도는 떨어지거나, 적어도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는(그래서 재미 없는) 소설이 끼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시전설 세피아>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들은 모두 마음에 꼭 든다. 읽히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모두 소설적 완성도와 작품성도 뛰어나다. 섬뜩한 공포를 가득 머금고 있으면서도 노스텔지어를 강하게 자극하는 매혹적인 문장 또한 더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데뷔작이 이렇게 좋으니, 과연, 작가의 습작기가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이었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슈카와 미나토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는데, 그만큼 철두철미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는 말이 된다. 한마디로 기본기가 탄탄한, 이미 오래 전에 준비된 작가였다는 말이다.  

수록작 다섯 편은 모두 공포소설로 분류되어도 좋을 만큼 오싹하고 잔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분위기도 섬뜩하고 무섭다. 다만, 공포 속에 노스텔지어가 스며 있다. 그리고 그 향수 속에 아파하고, 고뇌하는 인간의 얼굴이 있다. 무언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혹은 순수한 열정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 밑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야성적인이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본능이 매혹적인 문장으로 그려진다. 사람이 죽고, 잔혹한 풍경이 묘사되지만, 소설이 끝날 즈음에는 분노도, 공포도 사라지고 노을빛처럼 아름답고 쓸쓸한 감동과 슬픈 여운만 남는다.
'올빼미 사내'에서는 도시전설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전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가 전혀 밉거나 무섭지 않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안쓰럽고 애처로울 뿐이다. 마지막 순간의 반전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며,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며, 섬뜩하지만 아름답고, 열정적이지만 쓸쓸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반전은 늘 가슴 시린 여운을 남긴다.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럴 것이다. 즉, 나도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이고,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나약하고 쓸쓸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피아 빛 전설 같은 것을 가슴 속에 하나씩은 묻어두고 살아가지 않을까.  

수록작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마지막에 실린 '월석'이었다. 이 작품은 꿈 같은, 너무나 가고 싶어 발을 구르고 애를 태우지만 결코 갈 수 없는, 먼 옛날 이미 지나가 버린 한 줄기 빛 같은, 행여 먼발치에서 보게 되더라도 결코 붙잡을 수는 없는, 그런 꿈 같은 이야기며, 그런 꿈 같은 아련한 슬픔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꽃밥>에 실려있던 '도까비의 밤'과 함께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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