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사카 고타로의 상상력은 기상천외하면서 따뜻하다. 그의 상상력에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묻어난다. 무심코 스쳐 지났던 문장의 의미가 나중에야 되살아나며 짙은 향을 내뿜는다. 그 향은 황홀한 칵테일처럼, 음악처럼 우리를 기분좋게 취하게 한다.  

이번 연작 소설에서 이사카 고타로는 '치바'라는 사신을 등장시킨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신의 모습과 이미지를 깔끔하게 배반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사신이다.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등장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소설을 읽으면 대략 난감해진다.  

고타로가 창조한 사신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인간과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다만 인간의 습성들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인간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과 대화를 나누면 늘 조금씩 핀트가 어긋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다. 인간은 모두 사라져도 좋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이 만들어 낸 음악도 사라지게 될 터이니, 다만 그것이 걱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며칠이고 음반 매장에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다.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니까 해야만 한다. 사신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 죽음에 임박한 인간을 일주일 동안 지켜보고, 그의 죽음까지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일을 한다.
여섯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여섯 명의 인간들을 지켜본다.
죽음에 임박한 인간을 지켜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고민을 듣고, 진심을 가늠하고, 상황을 파악하다, 가可, 불가可(보류)의 판단을 내린다. '가'가 되면 예정대로 죽는 것이고, '보류'가 되면 죽음은 미뤄진다.
그러나 대부분이 '가'다. 죽음이 임박한 인간은 예정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죽는다면 이상하지만, 사신이 찾아왔다는 것은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억울한 일도, 두려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이나, 잠이 와서 잠을 청하는 것이나, 푸른 하늘을 보고 싶어 고개를 드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순수한 일이다.  

작가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한다. 또한 '삶'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담담하게 재해석한다.
행여 죽음이 목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그리고 그것은 목전에 다다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고, 대부분 그 시기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살다가 죽는 것.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한 결론이지만 살아 있는 순간을 늘 최선의 시간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죽음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삶이다.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최선을 다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에 있어서 최선이란, 그 의미를 깨닫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의 마지막 한 순간까지 즐겁게 웃다가 어느날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듯, 가만히 눈을 감는 것.

치바가 사신임을 알아챈 한 노파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죽음은 전혀 특별하지 않죠. 하지만 중요한 일이지요.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인간에게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일은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죽음은 그저, 중요하고, 자연스럽고, 눈이 부셔서 그만 눈을 감는 일일 뿐이다.

수록된 단편들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은 맨 처음에 실린 '사신의 정도'와 맨 마직막 작품인 '사신vs노파'였다. 나머지 단편들도 모두 재미있고, 작가의 또다른 연작 소설 '칠드런'처럼 마지막에는 예상치못한 반전, 혹은 진실들을 하나씩 숨겨두고 있다.
사신이 등장한다고 해서 칙칙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감상에 젖어 늘어지지도 않고, 눈물이나 찔찔 짜면서 신파로 흐르지도 않는다. 여차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사카 고타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작가는 영리하고, 독자를 배려할 줄 안다. 칙칙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날씨는 흐리지만, 내내 죽음을 다루고는 있지만, 시종 재기발랄한 유머와 따스한 감동이 넘치고, 예상치 못한 유쾌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진정 쿨한 소설이란 바로 이런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사카 고타로는 '사신의 정도'로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사냥 - 상
텐도 아라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텐도 아라타의 '가족사냥'은 살이 떨리도록 끔찍하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소설이다. 공포소설로 봐도 무방하고, 추리소설로 봐도 좋다. 실제로 텐도 아라타는 추리소설에도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텐도 아라타는 엽기적인 설정과 묘사, 추리소설을 방불케하는 치밀한 구성과 절묘한 복선, 그리고 가슴저미는 메시지와 강렬한 상징들로 병들어가는 현대 가족을 해부하고, 그 내부를 정교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시작부터 무시무시한 흡인력을 내뿜으며,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보다 더 두꺼운 하권이 훨씬 속도감 있게 읽히는 특징을 보인다. 즉, 서사가 진행되고,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릴 수록 흡인력에 가속이 붙는다는 얘기다. 끝으로 갈수록 강한 힘을 발휘하는 소설. 웬만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쓰기 힘들 것이다.
 
부모에게 폭력을 가하고, 등교를 거부하던 문제의 십대 청소년들이 끔찍한 방법으로 부모를 고문하고 살해 한 후,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엽기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희대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피비린내 나는 서사가 전개된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중년의 형사, 사건과 간접적으로 연루된 젊은 미술교사, 미술교사에게 원인모를 적의를 보이는 여학생, 그리고 가정문제를 상담받는 상담원들... 떨어진 한 방울의 꿀에 개미들이 모여들듯, 그렇게 사건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모여들지만, 그들 모두는 각자의 문제를 하나씩 안고 있고, 그 문제는 다름 아닌 각자의 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두들 가족 때문에 갈등하고, 다투고, 괴로워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무서워 스스로 가족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도 있고, 가족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얻고자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비뚤어지는 이도 있고, 자기 가족에 대한 잘못을 다른 가족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병든 가족들, 사랑이 없는 가족들, 내부에서부터 썩어가고, 무너지는 가족들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도 있다.
살인사건은 조금씩 해결되지만, 그들 가슴 속에 맺힌, 그들 가족 속에 얽힌 문제들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건에 얽힌 문제는 해결되도, 인간에 깃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구성원들에 의해 엮어지느 관계들이, 정녕 이렇단 말인가? 이토록 문제투성이고, 끔찍하고, 절망적이란 말인가?
 
이 소설에서 집과 흰개미는 상당한 상징성을 지닌다. 텐도 아라타는 가족의 병폐를 집과 흰개미로 대치하여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며 탄탄하게 서사를 진행시켜 간다. 
흰개미가 집의 내부를 갉아먹기 시작하면 그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쓰면,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징후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흰개미는 절대로 자연발생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날아든다. 최초의 침입 흔적을 빨리 발견하고, 대처한다면 집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집의 내부에 흰개미가 둥지를 틀고, 사방에 구멍을 낸 상태라면, 구제의 길은 없다. 집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고등학생 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아버지는 어느날 자신의 집을 방문한 흰개미 구제 요원이 딸의 문제에 참견을 하려 하자, 우리 가족 문제니까, 당신은 신경을 쓰지 말라, 고 한다. 그러자 그 요원이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의 문제라고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고.
자신의 집에 흰개미가 없다고,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흰개미는 언제든 다른 곳에서 날아들 수 있으니까. 또한 자신의 집을 침입한 흰개미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집을 장악한 흰개미는 언제든지 옆집으로, 또 다른 집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흰개미의 구제를 위해 온 가족이, 온 이웃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집을 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구제의 방법은 쉽지가 않다. 미지근해서도, 극단적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래서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 같다.
텐도 아라타는 특별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엄청난 사건들을 통해 무시무시한 현실을 보여주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라고 충고만 해 줄 뿐이다. 이 소설은 제9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미야베 미유키가 '화차'로 받았던 그 상이다.
 
마지막 한 장까지 살벌한 이 책을 덮고나서, 가족의 필요성에 대해 새삼 고찰해본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가족 속에서 자라고, 성장한 후에는 당연하다는 듯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 없는 것일까?
불편하거나 낙오자의 삶을 살게 되는 걸까?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정상'이 아닌 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가족이란 도대체...
생각할수록 알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간만에 참, 무지하게 안 읽히는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작가는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말의 뜻은 곧, 작가가 일부러 안읽히도록 글을 썼다는 얘기가 아닌가... 나는 과연 참 안 읽혔으니, 나름 잘 읽은 것인가? 

김영하의 신작을 두고 좋지 않은 평을 하려니 마음이 쓰리긴 하다. 김영하의 소설은 '아랑은 왜'를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다. 그 중 '검은꽃',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아주 재미있었고, 충분히 칭찬해 주고 싶은 책들이다. 무엇보다 '재미'. 문학성은 차치하고, 김영하의 전작들은 출중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일단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작들에 비해 문학성이 더 뛰어난 것 같지도 않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20년간 본국으로부터 잊혀진 '간첩'으로 살아오던 한 남자가 어느날 귀환명령을 받고 일어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언뜻 실시간으로 대단히 긴박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들이 촤르륵 펼쳐질 것 같은 줄거리지만, 그런 박진감과 재미를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곧 난감한 지루함과 배신당한 듯한 실망감에 빠져들 수 있다.(나는 그랬다)

대게 제한된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긴박감 넘치기 마련인데, 더구나 이 소설은 스파이 첩보물 같은 전운을 띠었는데(물론 전혀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었다), 더구나, 더구나 말이다, 3년을 기다린 김영하의 신작 장편인데, 이 소설은 전혀 긴박하지도, 술술 잘 읽히지도, 새롭지도 않다. 인물들의 심리에 공감하기도 힘들고, 당연 감동도 없었다. 지루하고, 무미하다. 감정이 느껴진다면 짜증스러움 뿐이다. 캐릭터들은 참 마음에 안 들고, 꾸역꾸역 하는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다 치밀었다. 짜증나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었다. 심지어는 마리나 소지 같은 이름 조차도 짜증이 났다.(뭔가 쿨 하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 이름이나 별명을 택했는지 모르겠으나, 전혀 쿨하지 않았고, 오히려 촌스러웠다. 촌스럽고 어색하긴 소녀들의 대화도 마찬가지.) 
김영하 본인은 이 소설을 쓰면서 재미 있었을까, 지루했을까... 
김영하는 이 소설을 왜 썼으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라는 폴 발레리의 말과, 하루 동안 인생을 통째로 다시 사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거창한 문구는 독자를 현혹시키게에 딱 좋은 것 같다. 기실, 그 남자의 하루가 폴 발레리의 말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저 말을 이 남자의 하루에 적용시킬 만한지 조차 의심스러웠고, 하루 동안 인생을 통째로 다시 사는 남자의 이야기치고, 그 하루는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늘어졌으며, 예측 가능했다.
그나마 남자(기영)의 이야기는 따라가줄만 한데, 아내와 딸의 이야기는 도무지 집중하기가 힘들었다.(소지도 마찬가지) 인물들의 과거도 마찬가지다. 기영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당췌 새로운 감동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고, 그다지 강렬하거나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도 없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풀리지 않는 의문들도 수두룩했다.
아내(마리)의 사생활을 왜 그런 식으로 그렸는지(사실 이 같은 여자 캐릭터 -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문란(혹은 쿨?)하거나 상처받은 여자 - 는 김영하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데, 나는 작가가 왜 자꾸 이런 여자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귀환명령을 받은 간첩의 고뇌 사이사이에 그의 아내와 딸의 일과가 굳이 교차되어 들어갈 필요가 있었는지, 아빠, 엄마, 딸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맞물리는 접점 같은 것은 무엇이며, 그 접점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밋밋한 결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래서 그 남자는 오래된 사상과, 거짓 일상을 버리고, 새로운 일상, 새로운 삶을 찾았다는 얘긴가?
제목이 왜 빛의 제국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고, 너무 재미있었다느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느니, 긴장감이 넘쳤다느니, 너무 감동적이었다느니 하는 평들에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어 안타깝고 답답할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첫번째 여자 가토 후미에는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자신이 사는 맨션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한다.
두번째 여자 미타 아츠코는 지하철 선로로 뛰어내려 열차에 치어 사망한다.
그리고 세번째 여자 스가노 요코는 야간에 도로를 가로지르다가 택시에 치어 사망한다.

고등학생 마모루는 우연히 이 사건에 끼어들게 된다. 세번째 사건의 가해자로 현장에서 체포된 택시기사가 바로 마모루의 이모부인 것이다. 이모부의 과실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전후 상황으로 볼 때, 여자가 자살을 위해 도로로 뛰어든 것으로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모루의 집으로 '여자를 죽여줘서 고맙다'는 의문의 전화까지 걸려오자, 마모루는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홀로 수사에 나선다.

스가노 요코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마모루는 요코를 포함한 네 명의 여자(가토 후미에, 미타 아츠코, 스가노 요코, 다카기 가즈코)를 알게 되고, 네 여자가 과거에 같은 일을 했었고, 같은 잡지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던 사실도 알아낸다. 또한 네 여자 중에서 요코를 포함한 세 여자가 이미 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밝혀낸다. 게다가 그들의 죽음은 모두 '자살'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의 여자 다카기 가즈코. 그녀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살아있다면 목숨이 위험하다.
그 즈음 마모루의 주변에서는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그리고 또다시 걸려오는 의문의 전화. 배후에 숨어있던 범인이 스스로 마모루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범인은 마모루가 믿고 있던 모든 것을 뒤짚어엎는 엄청난 비밀을 알려준다. 

 이 소설은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작품으로 1989년에 제2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이번에도 작가는 고도로 성장하는 현대 사회의 그늘 속에서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의 상처와 사회의 얼룩을 드러내 보인다. 무시무시하고 스릴 넘치는 사건을 숨가쁘게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무겁고 진지해 진다. '이유'나 '화차'에서처럼 범인의 마음을 일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회에 얼룩진 부조리와 법망을 유유히 뚫고 세상을 활보하는 악의(惡意)들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행동이 나쁜 줄도 모르고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 혹은 과거의 악행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의 감정도 든다. 알고보면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불쌍한 인간들인 것이다. 또한 하나의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있으며, 얼마나 많은 의미가 녹아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많은 의미들을 모른 채, 혹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작가는 특유의 섬세하고 박력있는 필체로 사회의 얼룩진 단면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한 편, 한 편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열정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 작품을 위해 두 가지의 전문지식들을 끌어온다. 하나는 사건의 중심에 숨어 있는 '최면'이라는 정신요법과, 또 하나는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모루가 사용하는 '열쇠'기술들이다. 이 두 가지는 숨가쁘게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무리없이 녹아 있으며, 작품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최면'이 어떻게 사건의 중심을 이끌게 되는지, 그 사건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열쇠' 기술들이 어떤 식으로 발휘되는지... 작가는 이 흥미진진한 요소들을 적시적소에 배치하며 독자들에게 서스펜스의 진수를 만끽하게 한다.  

이제 작가의 또다른 걸작인 '브레이브 스토리'를 읽을 예정인데, 그 전에 나도 이 한 마디를 외쳐보고 싶다. 책 맨 뒷장에 작은 글씨로 씌어 있는 센스 있는 한 마디.

"미미여사 파이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김서령이라는 작가의 삶과 상상력 속에 소설적 소재가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쩐지 이 한권의 소설집에서 나는 김서령의 많은 부분을 이미 읽어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작가가 추후에 발표하는 단편들이나, 혹은 장편이라 할 지라도, 과연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에서 얼마나 멀리 달아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이 소설집에 실린 아홉편의 단편들은 내용이나 분위기가 전부 하나로 묶여지는 것 같다. 조금조금씩은 다르지만, 아홉 편의 소설들이 보이지 않는 실들로 촘촘하게 엮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의 단편을 읽고, 또 다른 단편을 접할 때면, 긴장감과 흥이 조금씩 줄어드는 기분을 느낀다. 또 이런 이야기야... 그리고, 또 하나의 단편을 읽고, 다시 다른 단편을 읽으려 하면 긴장감과 흥은 더 줄어든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읽은 두 세편은 밋밋했다. 대 여섯 번 우려먹은 사골을 한 번 더 우려서 맹탕물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읽기 전에는 참으로 기대가 컸는데, 다 읽고 나서 그 기대가 사그라드는 느낌은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경험하는 것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다만, 김서령이라는 젊은 작가에게서 나는 김애란이나 김재영 이상의 기대를 잠시나마 가졌던 것이 사실이고, 그 기대를 이 소설집이 충족시켜 주길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밀려드는 실망감은 조금 더 씁쓸했다. 

아홉 편의 소설들은 모두 상처로 얼룩진 인간들의 이야기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 참 많은 한국 작가들이 다루고 있다. 이 신예작가도 그것들을 한번 더 다룬다. 그것도 다분히 통속적인 분위기를 고수하며...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홀로 애를 낳거나, 지우거나, 사랑에 속고, 사랑에 울고, 운명에 휘둘리고...

소설에 몰입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가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뜨는 쿨한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렇게 통속적인 인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구나, 통속적이면서 쿨한 척 하는 인물은 가장 싫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그런 인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커다란 불행을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작가는 마치 인간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비극을 안겨주려고 작정한 것 같다. 그들은 인생을 포기한 늙은이들처럼 차디찬 슬픔에 젖어 있거나, 답답하고, 궁상맞고, 청승스런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센척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꾸역꾸역, 담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척 하지만, 불행을 최대한 현명하게 대처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열정어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듯 둔하고, 미련스런 모습만 보인다. 한 마디로 곁에 있으면 따귀라도 한 대 갈겨 버리고 싶은 짜증나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우리 주위에 실제하는 인물들인가?
이들의 미련스럽고, 짜증나는 모습들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런 인간들의 모습이 정녕 우리네 삶의 모습이고, 현실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면,
잘 알겠다고 대답하며, 책을 덮고 싶다.
그리고 그 책은 다시는 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현실이 답답하고 짜증난다는 것은 굳이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작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큰 깨달음이나, 발견이 아닌 것이다.
소설로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다.
그러나 현실이 답답하고 짜증나다고 해서 소설까지 답답하고 짜증나서는 곤란할 것이다. 
가령 폴 오스터나, 아멜리 노통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들은 어떤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현실이고, 인간이다. 보잘것 없고, 답답하고, 무섭고, 너저분한 현실과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설은 어떤가? 얼마나 깔끔하고, 재미있고, 매력적이며, 기발한가? 이야기도 캐릭터도 참으로 담백하고, 쿨하다. 상처를 대하거나 치유하는 자세도 훨씬 건강하고, 현명하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나의 분위기로 끝까지 밀고나간 작가의 뚝심은 칭찬해 줄 만 하나, 이런 식으로는 더 많은 독자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기는 힘들 것 같다.
친근감 넘치는 정겨운 제목과, 노란 색 밝은 표지가 소설 속의 내용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황망한 기분이 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from 파아란 영혼 2007-10-17 21:40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지음), 실천문학사 제법 탄탄하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표현력을 가진 김서령의 첫 소설집 읽기의 시작은 매우 유쾌했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 요즘 작가들은 왜 여기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불쾌해졌다. 도리어 뒤에 찬사에 가까운 평문을 쓴 방민호(문학평론가)나 소설가 이혜경, 문학평론가 서영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러 단편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거나 불행하거나,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