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냥 - 상
텐도 아라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텐도 아라타의 '가족사냥'은 살이 떨리도록 끔찍하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소설이다. 공포소설로 봐도 무방하고, 추리소설로 봐도 좋다. 실제로 텐도 아라타는 추리소설에도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텐도 아라타는 엽기적인 설정과 묘사, 추리소설을 방불케하는 치밀한 구성과 절묘한 복선, 그리고 가슴저미는 메시지와 강렬한 상징들로 병들어가는 현대 가족을 해부하고, 그 내부를 정교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시작부터 무시무시한 흡인력을 내뿜으며,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보다 더 두꺼운 하권이 훨씬 속도감 있게 읽히는 특징을 보인다. 즉, 서사가 진행되고,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릴 수록 흡인력에 가속이 붙는다는 얘기다. 끝으로 갈수록 강한 힘을 발휘하는 소설. 웬만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쓰기 힘들 것이다.
 
부모에게 폭력을 가하고, 등교를 거부하던 문제의 십대 청소년들이 끔찍한 방법으로 부모를 고문하고 살해 한 후,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엽기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희대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피비린내 나는 서사가 전개된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중년의 형사, 사건과 간접적으로 연루된 젊은 미술교사, 미술교사에게 원인모를 적의를 보이는 여학생, 그리고 가정문제를 상담받는 상담원들... 떨어진 한 방울의 꿀에 개미들이 모여들듯, 그렇게 사건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모여들지만, 그들 모두는 각자의 문제를 하나씩 안고 있고, 그 문제는 다름 아닌 각자의 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두들 가족 때문에 갈등하고, 다투고, 괴로워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무서워 스스로 가족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도 있고, 가족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얻고자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비뚤어지는 이도 있고, 자기 가족에 대한 잘못을 다른 가족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병든 가족들, 사랑이 없는 가족들, 내부에서부터 썩어가고, 무너지는 가족들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도 있다.
살인사건은 조금씩 해결되지만, 그들 가슴 속에 맺힌, 그들 가족 속에 얽힌 문제들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건에 얽힌 문제는 해결되도, 인간에 깃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구성원들에 의해 엮어지느 관계들이, 정녕 이렇단 말인가? 이토록 문제투성이고, 끔찍하고, 절망적이란 말인가?
 
이 소설에서 집과 흰개미는 상당한 상징성을 지닌다. 텐도 아라타는 가족의 병폐를 집과 흰개미로 대치하여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며 탄탄하게 서사를 진행시켜 간다. 
흰개미가 집의 내부를 갉아먹기 시작하면 그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쓰면,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징후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흰개미는 절대로 자연발생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날아든다. 최초의 침입 흔적을 빨리 발견하고, 대처한다면 집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집의 내부에 흰개미가 둥지를 틀고, 사방에 구멍을 낸 상태라면, 구제의 길은 없다. 집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고등학생 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아버지는 어느날 자신의 집을 방문한 흰개미 구제 요원이 딸의 문제에 참견을 하려 하자, 우리 가족 문제니까, 당신은 신경을 쓰지 말라, 고 한다. 그러자 그 요원이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의 문제라고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고.
자신의 집에 흰개미가 없다고,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흰개미는 언제든 다른 곳에서 날아들 수 있으니까. 또한 자신의 집을 침입한 흰개미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집을 장악한 흰개미는 언제든지 옆집으로, 또 다른 집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흰개미의 구제를 위해 온 가족이, 온 이웃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집을 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구제의 방법은 쉽지가 않다. 미지근해서도, 극단적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래서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 같다.
텐도 아라타는 특별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엄청난 사건들을 통해 무시무시한 현실을 보여주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라고 충고만 해 줄 뿐이다. 이 소설은 제9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미야베 미유키가 '화차'로 받았던 그 상이다.
 
마지막 한 장까지 살벌한 이 책을 덮고나서, 가족의 필요성에 대해 새삼 고찰해본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가족 속에서 자라고, 성장한 후에는 당연하다는 듯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 없는 것일까?
불편하거나 낙오자의 삶을 살게 되는 걸까?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정상'이 아닌 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가족이란 도대체...
생각할수록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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