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밤
임영태 지음 / 문이당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영태의 소설에는 강인한 흡인력이 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전작이자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 를 읽으며 이미 느낀 바가 있다. 
그의 소설에는 변두리의 3류 인생들이 출현하여 너저분하고 칙칙한 인생담을 소주와 함께 풀어 놓는다. 그 이야기들이 한편으론 슬프고,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무서운 것이다. 

임영태의 첫 소설집 '무서운 밤'에 실린 9편의 단편들은 모두 하나의 줄에 엮인 비릿한 생선들처럼 무언가 질척하게 통하는 것이 있다. 
너무도 잘 읽힌다. 
그리고 반전이 있다(!) 반전.... 
우리네 일상에도 반전이 있는 것일까? 
반전이라는 표현보다 황당무계함, 어처구니 없음, 뜬금없음 이라는 말이 더 좋을 것 같다. 추리소설의 반전처럼 통쾌하거나 감탄을 내지를 수 있을 만큼 멋들어진 그런 반전은 아닌 것이다, 
우리네 일상의 반전이란 것은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고, 우울하고, 어쩌면 반쯤은 예상되었으나, 그래도 막상 당하고 보면, 또 어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한탄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생의 아픔과 허무함을 적나라하게 들춰버리는 그런 무서운 반전인 것이다. 
임영태의 소설들에는 그런 반전들이 꼭 들어있다. 그래서 다 읽는 순간, 다시 한 번 읽은 내용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시 한번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니 인생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상은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지, 우리네 일상이 그랬었지... 뭔가 대단한 것은 없었지... 이정도였지.... 그래. 이것이 일상이었지.... 삶이었지....

이런 반전과 변두리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 수록된 작품 가운데서 '포장마차'라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대신, 정말이지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기를. 포장마차에서는 결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갑부 노인도, 귀인도, 첫사랑도, 은퇴하여 숨어 지내는 고독한 혁명가 따위도 거기엔 없다. 
하기야...... 아직은 모른다. 그런 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기어이 포장마차로 들어간다. 그리고 소주를 한 병 깐다. 그리고 공상에 젖어든다. 무언가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기대에 젖어든다. 그리고 우울하고 우스꽝스런 반전이 펼쳐진다. 
슬픈 인생이다. 그리고 무서운 인생인 것이다. 
이러한 반전들이, 우울하고, 우스꽝스럽고, 한탄스런 반전들이 우리네 일상에서 길게 논의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라는 것이,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가야할 또 하나의 일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다. 

'무서운 밤'
절박한 삶을 살아가는 변두리 인생들에게 권한다. 
아울러 그의 전작인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정들의 미사
로렌스 블록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2년 11월
평점 :
절판



백정들의 미사는 솔직히 내용도 몰랐고, 이런 책이 있는 줄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로렌스 블록의 작품을 검색해 보다가 알게 되었다. 로렌스 블록의 작품이, 그것도 장편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다는 사실에 탄복을 금치 못했고, 즉각 책을 주문했다.
이 소설이 블록이 가장 애착을 가진다는 탐정 매트 시리즈 중의 하나라는 것과 92년 에드가 상 수상작이라는 것은 주문하고 난 다음에 알았다.
블록의 대표작인데다가, 최고 권위의 에드가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다빈치 코드 이상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로 분류되고 있지만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보인다. 탐정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탐정이라는 작자는 무면허에 알콜 중독자다. 전직 경찰이었던 지라 경찰 친구도 있지만 사람을 무자비하게 도살시켜 버리는 살인자도 친구다. 애인은 창녀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특이하다.
탐정 개인의 성격을 따져 보자면 냉소로 일관했던 빅슬립의 필립 말로와도 좀 닮은 듯 하지만 매트는 말로처럼 혼자 행동하지 않는다. 혼자 다니는 일도 많지만 친구를 만나 식사를 같이 하고,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 소설의 최대 미덕은 끊이지 않고 첨예하게 이어지는 인물들의 대화 속에 있다. 대화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생동감이 넘친다. 때문에 시종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이 소설에 잡다한 묘사나 설명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아멜리 노통의 소설처럼 90%가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 속에서 사건이 전개되고, 주제가 드러난다. 현대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는 작가의 섬뜩한 칼날도 보인다.

스너프 필름이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추리 소설에 스너프 필름이라... 책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매트는 우연히 스너프 필름을 보게 되고, 그것을 제작한 살인마들을 쫓는다. 그러나 그가 의뢰 받은 일은 그것이 아니다. 지방 방송국 프로듀서의 아내가 살해되었는데, 그녀를 남편이 죽였는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의뢰 받지 않은 일에 더 열의를 보이는 것이다. 악마들의 만행을 중단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어진다. 모든 사건들이 하나로 맞물린다. 그리고 라스트에는 대 반전이 펼쳐진다.
아, 더 이상 소설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위험하다. 스포일러가 발설될 수 있다.

추리, 스릴러, 혹은 호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그저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 책의 앞, 뒤표지에 실린 소개글 같은 것은 절대 읽지 말고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속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희경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은희경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장편과, 소설집 모두를.

은희경은 한 때 정말 좋아했던 작가다.
특히 장편 '새의 선물'과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에 실렸던 그녀의 초기 단편들을 좋아했다. 뭔가 사회에 반항적이고 삐딱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소설들이 좋았다. 새의 선물은 외딴 방과 함께 국내 성장 소설 가운데 최고의 수작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후로 은희경을 따라하는(그렇게 보이는)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런 작품들이 난무했고, 심지어는 은희경 스스로도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우라에서 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은희경의 소설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시들해져 갔다. '그것은 꿈이였을까'와 '마이너리그'는 참 잘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소설이기도 했다. 실망은 안했지만 찬사를 보낼 수도 없는 소설들이었다.

상속에 실린 작품들 역시 그런 느낌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듯 했다.
잘 된 작품도 눈에 띄었다.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던 중편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 숲에 덫을 놓았을까' 와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아내의 상자'는 확실히 수작이었다. 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기대감이 작용되어 더 꼼꼼히 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은희경 특유의 흡인력이 잘 느껴지는 소설들이라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잘 읽혔기에 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표제작인 '상속'을 비롯하여 '딸기도둑', '내가 살았던 집' 등은 특이할 게 없었다. 물론 떨어지는 작품들도 아니었다. 그저 지극히 은희경스러운 소설들인 것이다.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와 '태양의 서커스'도 그럭저럭 잘 읽혔지만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는 듯 했다. 은희경이라는 중견 작가가 쓴 소설치고는 평범한 정도였다.

이 책을 다 읽는데 9일이 걸렸다. 과거에 새의 선물을(4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편을) 이틀만에 다 읽었던 것에 비하면 이 신작 소설집에 그녀 특유의 흡인력과 감각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곧 그녀의 새로운 장편 소설 '비밀과 거짓말'이 출간된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은희경의 팬이고, 그녀에 대한 기대감은 아직 두 손으로 쥐고도 남을만큼 넉넉히 남아 있다.
그녀가 새의 선물 같은, 혹은 그것을 뛰어 넘는 작품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비밀과 거짓말이 그런 작품이 되어 주길 희망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나나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게 한편으로 후회스럽고,
이제라도 읽게 되었다는 게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이런 문학을 국내에 소개해준 출판사에 감사드리고 싶다. 편집장의 안목에 찬사를 보낸다. 물론 작가에 대한 찬사가 앞서겠지만.

왜 일본 문학을 하루키와 바나나가 양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말들을 하루키가 딱 반을 사용했고, 나머지 반을 바나나가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하루키의 책에 몰입하면서 매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던 2000년, 2001년의 내 모습이 바나나의 소설을 읽으며 재현되고 있었다. 이제 바나나의 소설들을 모두 사 읽을 것 같다.

키친은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인 키친과 만월은 이어지는 연작이며, 마지막 수록작인 달빛 그림자는 바나나가 니혼 대학 문학과를 졸업하면서 쓴 단편으로, 예술학부장상을 받으며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이다.

이 소설들은 일단 무지 잘 읽힌다. 하루키의 소설처럼 기막힌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디테일과 스쳐지나가는 작은 존재들에서 우주와도 같은 큰 의미를 포착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루키의 소설과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하루키는 이야기의 힘이 강한 반면 바나나는 분위기의 힘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그녀는 그녀만의 분위기로 이야기를 포장할 줄 안다.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루키와 전혀 다르다. 같은 청춘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지만 하루키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을 보인다. 하루키보다 늦게 데뷔했으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하루키 못지 않은 입지를 다져 나간 것이다. 놀랍다. 과연 작가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진정한 작가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당신?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윤성희의 소설은 전작들에 비해 월등히 성숙되고,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레고로 만든 집을 벗어나 '거기'에 있는 '당신'을 찾아 길을 떠난다.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고, 자아를 돌아보고, 자신에게 보다 충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방향을 잡아 준다. 윤성희는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상처입은 이들을 감싸 준다. 자신은 말을 아끼면서 상대의 말을 끝없이 들어준다.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지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준다.
최근의 국내 소설가 중에서 이 만큼 뚜렷한 자기 색깔과 목소리를 지닌 작가는 드물다고 본다.
역시 윤성희에 대한 내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그녀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기대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문학인 모두의 기대가 크다.

수록된 10편의 단편은 대부분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올해의 좋은 소설 등의 후보로 거론되었던 작품들이고, 그 중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제 50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이 되었다. 또한 이 소설집은 벌써부터 2005년 동인문학상 후보로 강력히 점쳐지고 있다.
이 젊은 작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녀는 분명 2000년대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다.

수록작품 모두가 잘 읽혔지만 그중 베스트를 뽑는다면

어린이 암산왕
그 남자의 책 198쪽
봉자네 분식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