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김재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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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에 김재영의 단편 '코끼리'를 읽고 이 작가의 소설집이 어서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물론 출간되자마자 책을 사서 단숨에 읽고 그 중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은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읽는다. 한마디로 '코끼리'는 꼭 마음에 드는 소설집이란 얘기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나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박성원의 '우리는 달려간다'처럼.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소설들은 모두 긴 여운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읽히는 게 없다. 마음의 심연까지 조용히 파고드는 소설들이다. 세련된 댄디족들이 나와 세상사 문제들을 만화책 넘기듯 훌훌 넘겨버리며 여유만만하게 살아가는, 요즘의 젊은 신인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쿨한 소설들이 아니다. 당면한 문제들을 가볍게 외면하고 자신만의 판타지로 숨어버리는, 약삭빠르게 가면을 뒤집어 쓰고 능청을 뜰 줄 아는 그런 인간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열 편의 소설들은 모두 비루하고 무서운 삶에 대한 기록들이며 그런 삶을 살아가는 비참한 인간들의 초상이다.

열 편의 소설들에는 현실에 천착한 문제들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며 눈물 짓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삶의 색깔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 비참하고 가련한 인간들을 볼 수 있고, 그들의 얼굴 위로 얼룩지는 땀과 눈물을 볼 수 있다. 작가는 비루한 삶 속에서 귀중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러나 억지 감동을 쥐어 짜려고 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신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성숙된 필체로 담담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담담하고 조용하게 문을 열고 안의 세상을 들여다 보게 해 준다. 보고 스스로 느끼라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그 인간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특히 이 소설집에는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외국인 노동자의 삶과 아픔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 두 편('코끼리','아홉 개의 푸른 쏘냐')이나 실려 있다. 작가는 그 동안 한국문학이 접근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치열하게 그 세계를 탐구하면서 값진 문학적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  

수록된 열 편의 소설 가운데 표제작 '코끼리'를 비롯하여 '아홉 개의 푸른 쏘냐','국향' 등 세 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소설은 이 중에서도 '국향'이었다.  이 단편은 21세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단편으로 선정되어도 무방할 것 같다.

사담이지만 작년 12월에 출간된 이 소설집이 왜 2006년 동인문학상 후보에 오르지 못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직 동인문학상 심사독회가 끝난 것은 아니고, 또 꼭 동인문학상을 받아야만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소설집을 다 읽는 순간 2006년 동인문학상은 이 책에게 돌아가겠구나 하는 기대를 했었고, 그 기대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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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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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백수라니.

번듯한 대학까지 나와 나이 스물여덟이 되도록 번듯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하고(구하지 않고) 아버지 집에서 당당히 기거하며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책을 사고, 읽는 일뿐인 백수라니.

아니 책만 읽는 것이 아니다.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닌다.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친구의 가게를 맡아 줄 만큼 나름 여유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 책만 읽는 삶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삶이다.

 

백수인 서연은 이렇게 말한다. 책만 읽어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인데 일까지 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다시 말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도 인생은 짧다는 거다. 인생은 짧고, 짧은 만큼 소중한 것이니 하고 싶은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다. 맞는 말이다.

누군들 그걸 모르나.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나?

근데 문제는 그렇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싶다, 영화를 보고 싶다, 연애를 하고 싶다, 파티를 하고 싶다, 그냥 맘대로 놀고 싶다, 이런 것들만 하면서 살고 싶다.

하는 따위의 바람들은 그저 밑바닥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을 밑바닥에서 실현하기에는 잡초처럼 거치적거리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즉 삶을 탄탄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기초공사가 끝난 후에나 생각할 문제일 것이다.

삶에 어느 정도의 풍요(로 인한 여유)로움이 깃들 때 비로소 진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 있다.

삶의 최고 풍요도를 레벨 100으로 잡았을 때,

최소한 30 정도는 되어야 그런 바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50정 도는 되어야 그런 바람을 실현할 엄두가 날 것이다. 레벨 20, 10, 혹은 그 이하의 삶이라면, 다시 말해 거지에 가까운 삶이라면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급박할 것이다.

 

그러면 서연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거지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원하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지, 물질적인 조건들에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어쩌면 이것이 이 소설의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꿈을 향해 용감히 나아가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지나기 전에 해 버려라.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라.

 

정말로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향해서만 전진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현실의 문제들 따위는 능히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일까?

 

서연이 만일 중소기업 수준의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없는 천애 고아이고, 거지였다면 그녀의 백수 생활이 이다지도 순탄하고 멋있을 수 있을까.

서연에게 있어 아버지는 서연의 삶을 단숨에 레벨 70 정도로 끌어 올려준 존재, 다시 말해 물질적인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해 온 존재다.

서연이 하고 싶은 일들만 하는 동안 서연이 하기 싫어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다른 일들을 아버지가 대신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서연은 거지 같은 생활을 하지 않는 당당한 백수가 될 수 있었다.

 

책만 읽고 사는 삶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책만 읽고 살 수 있는 서연의 여유가 부러운 것이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밑바닥에 근접해 있는 잡초 같은 자질구레한 문제들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부러운 것이다.

 

의식주 걱정이 없는,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필요 없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심지어는 죽기 전까지도 지금의 여유가 보장되는 그런 삶이라면 그 안에서 얼마든지 백수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 큰 부자가 되는 것도 필요 없다. 그저 먹고살 만하면 되는 것이다. 그 정도의 여유만 유지할 수 있다면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느니,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도 인생은 짧은 것이다 따위의 훈시적인 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1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임영태의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나 손창섭의 단편 '혈서'등 백수를 다룬 여타의 소설들에 비해 '백수생활백서'가 공감과 감동이 다소 떨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현실과의 거리감에 있는 것 같다. 서연의 행동은 언뜻 오늘날 백수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기실 진짜 백수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 속에서 밑바닥을 살아가는 백수들의 삶이란 서연의 삶처럼 당당하지도, 깔끔하지도, 멋있지도 않다.

'백수생활백서'는 마치 현실을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어쩌면 판타지를 다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백수의 현실이 아니라, 백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판타지의 일종일 것이다(서연, 유희, 채린, .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다분히 로맨틱, 혹은 판타스틱하다).

 

아냐 이게 아닌데, 진짜 백수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닌데, 왜 자꾸만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런 백수의 삶이 등장하는 것일까. 현실을 잠시 잊고 판타지에 젖어 보라는 것인가. 판타지는 누구나 좋아한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판타지에서 깨어나면 현실은 더욱 무겁고 무섭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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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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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현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등단작 '동정 없는 세상'도 그랬고, 두 번째 장편 '새는'도 그랬고, 그의 소설은 일단 술술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 장편이자 1억 고료의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인 '아내가 결혼했다'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들면 하루만에 다 읽힌다. 잘 읽힌다는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사상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독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일 것이다. 박현욱이라는 작가는 항상 그랬다. 우선 재미있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쓰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먼저 높이느라 소설이 재미없어지는 줄도 모르는 우를 범하지 않는 현명한 작가인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세 명이다. 세 명이 등장하여 원고지 1200매에 달하는 긴 장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간한 자신감과 역량이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시도다. 그러나 소설은 한 점 지루함도, 식상함도 없이 마지막 장을 닫을 때까지 촘촘한 재미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긴장감...! 단 세 명의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라...
 
상황은 이렇다. 한 남자가 있고, 그의 아내가 있고, 그 아내의 새로운 남편(애인이 아니라..)이 있는 것이다. 이러니 긴장감이 돌지 않을 수 없다. 예측불허의 당혹스런 에피소드와 갈등이 끊임없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같은 소설을 읽어도 독자에 따라서 느끼는 바는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매력적이다고 느낀 캐릭터가 또다른 이에게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일 수 있고,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스토리가 다른 이에게는 진부하고 통속적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주인공 인아는 무척 싫어하는 타입이다. 솔직히 말이며 행동 하나하나가 참 마음에 안드는 캐릭터였다. 그런 인아가 좋다고 시종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덕훈이라는 남자도 사실 쪼다같이 느껴졌다. 버젓이 남편이 있는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덤비는 재경이라는 젊은 녀석은 또 어떤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재미있는 것이다.
 
사실 작가의 전작인 '동정 없는 세상'도 그랬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데 소설은 재미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소설 자체가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그 한심하고 맘에 안드는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엮어가는 에피소드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박현욱이라는 작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재주를 지닌 작가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된다고 본다)
 
작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을 읽고는 크게 실망을 했었다. 상금을 1억이나 내걸고 한국 문학의 새로운 전위를 꿈꾼다느니 그 중심을 찾겠다느니 뭐니 하며 광고까지 떠들썩하게 해놓고 뽑은 작품이 겨우 이정도였나... 과연 이 정도 소설이 1억의 가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미실'은 실망스런 소설이었다.('미실'의 경우는 등장인물들도 모두 마음에 안들었고, 이야기도 재미없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번 수상작인 '아내가 결혼했다'는 적어도 미실보다는 열배 정도 더 나은 것 같다. ('미실'은 다 읽는데 열흘이 넘게 걸렸고, 이번의 경우는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의 심오함이나 감동의 깊이를 떠나서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도 1억의 가치에 상당부분 도달했으며, 작가는 소설가로서 우선적인 임무를 완수했다고 본다.
 
박현욱의 다음 작품도 기다리게 된다. 아울러 '아내가 결혼했다'로 인해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까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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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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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을 읽기 전에 천운영의 소설을 읽은 것은 단편 세 편이 전부였다. 그러나 세 편 모두 기대 이상의(혹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이 작가를 예의 주시를 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읽을 소설들은 주위에 넘쳐났고, 한동안 천운영을 잊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잠시 잊고 있어도 평단과 독자들은 천운영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 모았고, 심지어는 평론가 지망생들에게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2005년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서 가장 많이 다뤄졌던 작가가 바로 천운영이었다. 이제 겨우 등단 5년을 넘긴 이 젊은 작가에게 과연 어떤 매력이 느껴지는 것일까. 젊은 예비 평론가들을 열광하게 하는 그녀만의 매력은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은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 「명랑」에서 찾을 수 있다. 「명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들은 아주 낯설지는 않지만 한국 문단에서는 분명 쉽사리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여자의(혹은 인간의) 본능과 폭력성이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남자 작가가 아니라 여자 작가의 손에서 탄생된 것이라는 데 이 소설집의, 그리고 작가인 천운영의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것이다.

천운영은 여자의 내면에 숨겨진 야생성을 과감하게 드러낼 줄 안다. 선배 여류 작가들이 감히 손대지 못했던 영역을 이 젊은 작가는 서슴없이 주무르고 파헤친다. 여자의 시선으로 여자의 몸을, 정신을 낱낱이 열어 보일 줄 아는 작가다. 그런 솔직함과 용기에서 기인된 작가만의 세계관은 섬뜩하고 차갑지만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 여성들은 물론 남성 독자들에게까지도 깊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이야기나 낡은 세계관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천운영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가운데서 이러한 천운영만의 특색이 잘 드러난 작품은 ‘명랑’과 ‘멍게 뒷맛’, '세 번째 유방‘이다. 나머지 '늑대가 왔다', '모퉁이', '아버지의 엉덩이', '입김', '그림자 상자' 등도 모두 독특한 맛이 느껴지며 무엇보다 잘 읽히는 소설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명랑」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 단편은 천운영이라는 작가의 대표 단편이 되어도 좋을 것 같으며, 과연 앞으로 이 정도 좋은 단편을 또 쓸 수 있을까 하는 공연한 불안마저 들게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개인적인 느낌을 하나 더 말해 보자면 소설집 「명랑」은 내용뿐만 아니라 책도 참 잘 만들어 진 것 같다. 주황색의 표지와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프로필에 올려진 작가 사진도 멋지다. 들고 나니기에도 책꽂이에 꽂아 두기에도 폼이 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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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떼가 나왔다 -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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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 문단에 등장한 어린 작가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설에 감탄하는 사람은 많다. 독자들도, 평론가도, 심지어는 문단의 원로들도.

어린 작가들의 소설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문장이나 구성 면에서 기본기는 다져 놓았다. 그러나 그런 기본기만으로 누군가를 놀라게 하거나 감동시킬 수는 없다.

그들 소설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장 강력한 힘, 매력은 상상력이다. 불온한 듯 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 기존의 관념들을 뒤엎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풋풋한 상상력들!

그 상상력이 있기에 다소 거친 문장들과 헐거운 듯한 구성이 완성도 있는 소설로 옹골차게 다져질 수 있는 것 같다. 평론가들은, 또 독자들은 그들의 상상력에 반한다. 어디로 튈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상상력들! 그것이 바로 어린 작가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악어떼가 나왔다」로 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안보윤도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 공식을 무너뜨리며 제멋대로 흘러간다.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각기 다른 구멍으로 빠졌던 당구공들이 결국 같은 공간 속에서 하나의 삼각형을 이루며 얌전히 모이듯 제각각 따로 노는 듯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하나의 틀을 만들고, 하나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물 속에서 시체가 떠오르듯 별안간 놀라운 반전이 펼쳐진다. 반전과 함께 소설은 신속하게 ‘정리 단계’에 들어간다.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쌀알들이 하나의 괘를 이루고 한 인간의 운명을 담아내듯 장황하게 펼쳐져 있던 사건들이 모두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명쾌한 궤적을 그린다. 그 뚜렷한 궤적은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하나의 공약수가 되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서 최종적으로 묶여지는 하나의 공약수! 그 공약수는 새로운 목소리를 낸다. 아니 새롭다기 보다 더 크고 강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작가의 목소리이자 주제가 될 것이다. 독자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에 흠뻑 취했다가 사건이 정리되는 시점에서 작가의 강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된 사건과 스토리를 작가는 가장 눈에 띄는 방법으로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내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방법이란 가장 강력한 흡인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 작가만의 상상력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대단한 상상력의 힘이 흡인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올린다. 작가의 기발하고 다채로운 상상력에 빠져드는 순간 책장은 영화 필름처럼 파르륵, 빠르게 넘겨지고 독자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역동적인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공포스런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라면 공포소설로 분류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이의 몸에 문신을 놓고, 사람을 죽여 토막내고,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고. 그리고 강의 수면 위로 시체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어린 여자 작가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이렇게 자극적인 방법으로 풀어낼 수 있었는지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다. 작가의 얼굴만 보고, 또 심사평만 보고, 또 출판사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읽기를 한참동안 미뤘던 소설인데, 이제는 안보윤이라는 이름에 믿음이 간다. 안보윤이라는 이름이 찍힌 책이라면 이제 곧장 손이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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