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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박현욱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등단작 '동정 없는 세상'도 그랬고, 두 번째 장편 '새는'도 그랬고, 그의 소설은 일단 술술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 장편이자 1억 고료의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인 '아내가 결혼했다'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들면 하루만에 다 읽힌다. 잘 읽힌다는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사상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독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일 것이다. 박현욱이라는 작가는 항상 그랬다. 우선 재미있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쓰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먼저 높이느라 소설이 재미없어지는 줄도 모르는 우를 범하지 않는 현명한 작가인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세 명이다. 세 명이 등장하여 원고지 1200매에 달하는 긴 장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간한 자신감과 역량이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시도다. 그러나 소설은 한 점 지루함도, 식상함도 없이 마지막 장을 닫을 때까지 촘촘한 재미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긴장감...! 단 세 명의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라...
상황은 이렇다. 한 남자가 있고, 그의 아내가 있고, 그 아내의 새로운 남편(애인이 아니라..)이 있는 것이다. 이러니 긴장감이 돌지 않을 수 없다. 예측불허의 당혹스런 에피소드와 갈등이 끊임없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같은 소설을 읽어도 독자에 따라서 느끼는 바는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매력적이다고 느낀 캐릭터가 또다른 이에게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보일 수 있고,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스토리가 다른 이에게는 진부하고 통속적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주인공 인아는 무척 싫어하는 타입이다. 솔직히 말이며 행동 하나하나가 참 마음에 안드는 캐릭터였다. 그런 인아가 좋다고 시종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덕훈이라는 남자도 사실 쪼다같이 느껴졌다. 버젓이 남편이 있는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덤비는 재경이라는 젊은 녀석은 또 어떤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재미있는 것이다.
사실 작가의 전작인 '동정 없는 세상'도 그랬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데 소설은 재미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소설 자체가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그 한심하고 맘에 안드는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엮어가는 에피소드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박현욱이라는 작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재주를 지닌 작가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된다고 본다)
작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을 읽고는 크게 실망을 했었다. 상금을 1억이나 내걸고 한국 문학의 새로운 전위를 꿈꾼다느니 그 중심을 찾겠다느니 뭐니 하며 광고까지 떠들썩하게 해놓고 뽑은 작품이 겨우 이정도였나... 과연 이 정도 소설이 1억의 가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미실'은 실망스런 소설이었다.('미실'의 경우는 등장인물들도 모두 마음에 안들었고, 이야기도 재미없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번 수상작인 '아내가 결혼했다'는 적어도 미실보다는 열배 정도 더 나은 것 같다. ('미실'은 다 읽는데 열흘이 넘게 걸렸고, 이번의 경우는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의 심오함이나 감동의 깊이를 떠나서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도 1억의 가치에 상당부분 도달했으며, 작가는 소설가로서 우선적인 임무를 완수했다고 본다.
박현욱의 다음 작품도 기다리게 된다. 아울러 '아내가 결혼했다'로 인해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까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