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집을 읽기 전에 천운영의 소설을 읽은 것은 단편 세 편이 전부였다. 그러나 세 편 모두 기대 이상의(혹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이 작가를 예의 주시를 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읽을 소설들은 주위에 넘쳐났고, 한동안 천운영을 잊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잠시 잊고 있어도 평단과 독자들은 천운영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 모았고, 심지어는 평론가 지망생들에게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2005년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서 가장 많이 다뤄졌던 작가가 바로 천운영이었다. 이제 겨우 등단 5년을 넘긴 이 젊은 작가에게 과연 어떤 매력이 느껴지는 것일까. 젊은 예비 평론가들을 열광하게 하는 그녀만의 매력은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은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 「명랑」에서 찾을 수 있다. 「명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들은 아주 낯설지는 않지만 한국 문단에서는 분명 쉽사리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여자의(혹은 인간의) 본능과 폭력성이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남자 작가가 아니라 여자 작가의 손에서 탄생된 것이라는 데 이 소설집의, 그리고 작가인 천운영의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것이다.

천운영은 여자의 내면에 숨겨진 야생성을 과감하게 드러낼 줄 안다. 선배 여류 작가들이 감히 손대지 못했던 영역을 이 젊은 작가는 서슴없이 주무르고 파헤친다. 여자의 시선으로 여자의 몸을, 정신을 낱낱이 열어 보일 줄 아는 작가다. 그런 솔직함과 용기에서 기인된 작가만의 세계관은 섬뜩하고 차갑지만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 여성들은 물론 남성 독자들에게까지도 깊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이야기나 낡은 세계관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천운영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가운데서 이러한 천운영만의 특색이 잘 드러난 작품은 ‘명랑’과 ‘멍게 뒷맛’, '세 번째 유방‘이다. 나머지 '늑대가 왔다', '모퉁이', '아버지의 엉덩이', '입김', '그림자 상자' 등도 모두 독특한 맛이 느껴지며 무엇보다 잘 읽히는 소설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명랑」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 단편은 천운영이라는 작가의 대표 단편이 되어도 좋을 것 같으며, 과연 앞으로 이 정도 좋은 단편을 또 쓸 수 있을까 하는 공연한 불안마저 들게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개인적인 느낌을 하나 더 말해 보자면 소설집 「명랑」은 내용뿐만 아니라 책도 참 잘 만들어 진 것 같다. 주황색의 표지와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프로필에 올려진 작가 사진도 멋지다. 들고 나니기에도 책꽂이에 꽂아 두기에도 폼이 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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