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떼가 나왔다 -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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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 문단에 등장한 어린 작가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설에 감탄하는 사람은 많다. 독자들도, 평론가도, 심지어는 문단의 원로들도.

어린 작가들의 소설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문장이나 구성 면에서 기본기는 다져 놓았다. 그러나 그런 기본기만으로 누군가를 놀라게 하거나 감동시킬 수는 없다.

그들 소설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장 강력한 힘, 매력은 상상력이다. 불온한 듯 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 기존의 관념들을 뒤엎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풋풋한 상상력들!

그 상상력이 있기에 다소 거친 문장들과 헐거운 듯한 구성이 완성도 있는 소설로 옹골차게 다져질 수 있는 것 같다. 평론가들은, 또 독자들은 그들의 상상력에 반한다. 어디로 튈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상상력들! 그것이 바로 어린 작가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악어떼가 나왔다」로 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안보윤도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 공식을 무너뜨리며 제멋대로 흘러간다.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각기 다른 구멍으로 빠졌던 당구공들이 결국 같은 공간 속에서 하나의 삼각형을 이루며 얌전히 모이듯 제각각 따로 노는 듯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하나의 틀을 만들고, 하나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물 속에서 시체가 떠오르듯 별안간 놀라운 반전이 펼쳐진다. 반전과 함께 소설은 신속하게 ‘정리 단계’에 들어간다.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쌀알들이 하나의 괘를 이루고 한 인간의 운명을 담아내듯 장황하게 펼쳐져 있던 사건들이 모두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명쾌한 궤적을 그린다. 그 뚜렷한 궤적은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하나의 공약수가 되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서 최종적으로 묶여지는 하나의 공약수! 그 공약수는 새로운 목소리를 낸다. 아니 새롭다기 보다 더 크고 강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작가의 목소리이자 주제가 될 것이다. 독자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에 흠뻑 취했다가 사건이 정리되는 시점에서 작가의 강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된 사건과 스토리를 작가는 가장 눈에 띄는 방법으로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내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방법이란 가장 강력한 흡인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 작가만의 상상력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 대단한 상상력의 힘이 흡인력을 최대치로 이끌어 올린다. 작가의 기발하고 다채로운 상상력에 빠져드는 순간 책장은 영화 필름처럼 파르륵, 빠르게 넘겨지고 독자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역동적인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공포스런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라면 공포소설로 분류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이의 몸에 문신을 놓고, 사람을 죽여 토막내고,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고. 그리고 강의 수면 위로 시체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어린 여자 작가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이렇게 자극적인 방법으로 풀어낼 수 있었는지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다. 작가의 얼굴만 보고, 또 심사평만 보고, 또 출판사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읽기를 한참동안 미뤘던 소설인데, 이제는 안보윤이라는 이름에 믿음이 간다. 안보윤이라는 이름이 찍힌 책이라면 이제 곧장 손이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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