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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가끔씩 정말 여자들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해답이나 혹은 어떤 힌트라도 얻고자 하는 심정으로 이런 류의 소설이나 영화를 가끔 보곤한다. 일인칭 여자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나 영화들 말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머리속에 더 많은 의문부호들이 그려지는 느낌이 든다.
정말 이런 것이 여자들의 속마음이란 말인가...?
이게 정말, 과연 정말인가?
이효석 문학상, 현대 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동반되는 젊은 여성 작가 정이현의 첫번째 장편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내내 머리속에는 수많은 의문부호들이 쌓여만갔다. 이런 것이 여자들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자들의, 정말로 현실적인 모습들이란 말인가...???
이 소설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잘 읽힌다는 것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나는 만 하루도 안 되어서 다 읽었다. 재미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고... 확실히, 그런 면에서는 작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재미'라는 것은 모름지기 소설이 갖춰야만 할 최대의 덕목이 아닌가...
소설 속 주인공은 30대의 평범한(과연 이런 삶이 평범한 삶인지는 모르겠다만) 미혼 직장 여성인 오은수이다. 은수가 31세에서 32를 맞이하는 약 일 여년간의 생활모습이 소설의 전부다. 물론 생활 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직장, 가족, 친구, 사랑... 은수도 당연히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작가는 은수의 생활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속의 현실은 드라마 속의 멋진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근사한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나는 은수의 삶도, 역시 소설 속 주인공의 삶답게, 그리 빡빡하거나 볼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더 가깝냐 하면 '현실' 보다는 오히려 '판타지'에 더 가까운 삶이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은수는 우리네 삶이 섹스 앤 시티같지 않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왜 은수와 그 친구들의 삶이 다분히 섹스 앤 시티를 닮은 것처럼 보이는지...
그만한 삶이라면 웬만한 다른 여자들에게는 판타지가 될 수도 있을 듯 싶은 것이다.
연하의 잘생기고, 꼼꼼하고, 사려깊고, 나를 지극히 사랑해 주는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로 시작하여 달콤한 연애를 하고, 연상이고 다소 무뚝뚝하지만, 능력 있고, 평범한 듯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부유하고, 성격좋고, 외모도 비교적 번듯한 친구, 애인이 아니라 순수한 우정으로만 엮어진 오래된 '남자 친구'가 있고,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희노애락을 같이 해온 동성의 죽마고우들이 있다. 대기업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출판편집 대행사라는 꽤 때깔좋고 탄탄한 직장도 있다.
누구처럼 카드 연체금이 있는 것도, 신용 불량자도 아니다. 자기 돈으로 마련한 원룸이 있고, 이따금씩 무슨 자동차를 살까 고민도 한단다.
이만하면 색스 앤 시티의 삶이 부럽지 않을 듯도 한데...
비록 연하의 남자와 헤어지고, 연상의 능력남과의 결혼도 무산이 되고, 친구들과도 가끔씩 다투고, 소원해지기도 하고, 직장도 그만두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수가 슬퍼 보이기나 가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조만간 또 달콤하고 판타스틱한 사랑과 우정들이 파도처럼 은수에게 밀려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연인과 헤어지고 혼자 우수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여도 어쩐지 멋들어진 투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드라마 속에서 그런 역을 맡은 배우가 (멋있게, 최대한 멋있게)연기를 하는 듯... 그 모습들이 그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얼마 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백수생활백서'를 읽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어쩐지 요즘의 한국소설들에는 현실보다 오히려 판타지의 그림자가 더 많이 드리워 져 있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든다.
정녕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모르겠다. 과연 그럴 지도.. 여자가 읽는다면 또 어떤 느낌이 들지, 은수의 삶을, 그 현실을 오롯이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정녕 모를 일이다.
여자들의 마음이란...
내 예측과 얼마만큼 다른 생각을 하고, 내 눈에 보이는 것과 얼마만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은수 또래의 많은 여성들이 정말 은수 같은 사고로, 은수 같은 삶을 살아가며, 은수 같은 고민과 은수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