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박완서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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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오늘날을 대표할 수 있는 우리 작가의 좋은 소설은 어떤 것일까..

어떤 소설을 읽어야 좋은 소설 읽었다는 자부를, 아니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최근의 한국 소설을 이끌어 가는 작가들은 과연 누구일까...

어떤 소설이 잘 쓴 소설일까...


참으로 암담한 질문들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답할 수 없고, 쉽게 답해서는 안 될 질문들이다.

그러나 매년 현대문학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라도 하듯 하나의 책을 출간한다.

바로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이다.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현대문학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요즘은 이런 식으로 여러 작가의 단편들이 믹서된 묶음 도서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상문학상 수상 소설집,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황순원 문학상 수상 소설집, 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소설 등 국내 유수의 출판사에서 앞 다투어 그런 식의 소설집들을 묶어 내고 있다. 상금이라도 몇 천 만 원 내 걸린 문학상이라면 여지없이 그 후보작들을 모두 묶어서 책으로 낸다. 이런 도서들은 모두 국내 최고의 작가들의 최고의 소설들로만 엄선되었다는 타이틀을 달고, 홍보를 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도서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마치 우리나라 작가들이 쓰는 단편들은 모두 좋은 소설이 되는 것만 같아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에 대한 의문도 기대감도 사라지게 만든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발표하는 소설 가운데 반은 좋은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즘은 정말 좋은 소설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간혹 정말 좋은 소설이 좋은 소설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런 식의 묶음 도서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책이 바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껏 이런 식의 묶음 도서들을 많이 읽어 본 결과 평균적으로 재미있는 소설들이 가장 많이 수록된 책이 바로 현장비평가... 이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이런 식의 도서를 네 권 읽었는데 그 중 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가장 많은 수의 재미있는 단편들이 실렸다.


2005년 현장비평가... 에는 총 열 명의 작가들이 쓴 열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이중에서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은 다섯 편이다.

나머지 다섯 편 가운데 네 편도 그럭저럭 읽혔으나 한 편은 도통 취향에 안 맞는 소설이라 지루했다.(비평가가 보기에는 그 소설도 잘 된 소설이고, 심지어는 재미있는 소설이라고까지 할 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평가로는 지루했고, 지루했기에 그다지 잘 된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 지 않았다)


잘 읽힌 순으로 작품들을 나열해 본다면,


김애란 - 달려라, 아비

이기호 -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김중혁 - 무용지물 박물관 

박완서 - 거저나 마찬가지

정이현 - 그 남자의 리허설

구효서 - 소금가마니

이혜경 - 피아간

윤대녕 - 탱자

조성기 - 작은 인간 

하성란 - 웨하스로 만든 집


여기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두 편의 소설이 바로 김애란과 이기호의 소설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유난히 눈에 띈 두 작품이다. 두 작가 모두 젊은 작가지만 소설의 색깔은 전혀 다르다. 각기 다른 독특한 색깔을 지닌 젊은 작가들의 출현은 반가운 일이다.


달려라, 아비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는 여고생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상상하는 이야기다. 소박하고 간단한 소설이다. 최근의 젊은 작가의 소설에서 흔히 드러나는 과격하고 모험적이지만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해 휘청거리는 그런 소설이 아니다. 호수처럼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숨기고 있는 소설이다. 깊은 느낌의 감동이 전해지지만 또 소설은 웃기고 가벼운 터치로 일관한다.

여자가 아기를 배자 슬그머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내. 여자는 혼자 아기를 낳고, 아기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생각한다.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그래서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를 상상으로 그려본다. 아기는 자라서 소녀가 되고, 소녀의 상상 속에는 늘 아버지가 있다. 상상 속의 아버지는 늘 달리고 있다. 아니 달려야만 한다.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니까 달려야만 한다. 아내와 자식을 버려야 할 만큼 바쁘고 대단한 일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나간 것이고, 그렇다면 무조건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날까지, 소녀의 눈앞에 나타날 그 날까지, 상상 속의 아버지는 그저 달려야만 한다. 그렇게 소녀는 상상 속에서 늘 아버지를 뛰게 만들며, 그렇게 늘 아버지를 곁에 두고 있었다.

김애란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충분히 심각해 질 수 있는 소재를 대단히 가벼운 어투로 풀어간다. 졸졸졸 냇물이 흘러가듯 경쾌하고 가볍게, 농담을 섞어 가면서... 그러나 그 느낌은 참으로 깊다. 지표의 깊은 곳까지 조용히 스며들 수 있는 물처럼 이 젊은 작가의 시선은 인생의 깊은 곳을 응시할 줄 안다. 그래서 대단히 안정적이며, 따뜻한 소설이 되었다.

김애란이 구사하는 문장은 참으로 읽히는 맛이 좋고, 아련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달려라, 아비에도 좋은 문장들이 넘쳐난다. 그 중 인상적인 구절을 몇 옮겨 보자면,


  

말을 모르는 몸뚱이가, 세상에 편지처럼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어느 반지하 방에서 혼자 낳았다. 여름날이었고,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본 빛은 딱 창문 크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우리들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도 내 머릿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해왔던 상상이라 잘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버지를 계속 뛰게 만드는 이유가, 아버지가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내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죽여버리게 될까 봐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갑자기 나는 서러워졌고, 그 서러움이 나를 속이기 전에 빨리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애란과 함께 최근 주목하는 젊은 작가가 바로 이기호다. 이기호의 단편도 지금껏 네 편밖에 읽지 못 했다. 그러나 역시 나를 실망시킨 소설은 없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다. 200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렸던 ‘수인(囚人)’이라는 단편에서는 콘크리트로 덮여버린 서점 속에서 자신의 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명작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무명작가는 어쩌면 지금은 없어졌을 지도 모르는 자신의 책을 찾기 위해 곡괭이로 콘크리트를 파 나간다. 마치 그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인 듯, 열심히, 무거운 사명감을 띠고 묵묵히... 그리고는 종래 콘크리트 속에 파묻힌 서점 속에 갇혀 버린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흙을 먹고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그가 흙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83년에 미그기 한 대가 남하했기 때문이다. 미그기가 남하한 일이 남자가 흙을 먹는 일과 무슨 연관이 있냐고...? 소설을 읽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미그기가 남하하고, 북한의 공군 장교 한 명이 귀순을 한 크다면 크고 작다면 별 일 아닐 정도로 작은 헤프닝 하나가 팔랑이는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남자에게 어떤 엄청난 폭풍을 불러일으키게 되는지... 남자는 이제 어엿한 흙요리 전문가가 되어 독자들에게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야채볶음흙의 요리법을 설명하면서 양념처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곁들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그 곁들인 양념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 남자를, 그 남자가 먹는 흙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김애란, 이기호 두 젊은 작가의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독서의 보람이 충분한 책이었다. 2006년에도 좋은 소설을 가려내는 작업이 활발하고 진지하게 계속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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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무덤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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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의 ‘꽃게무덤’은 아홉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90년대 이후에 등단한 국내 작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권지예도 장편보다 단편에서 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인 것 같다.

꽃게무덤을 읽기 전에 내가 읽은 권지예의 소설은 단편 ‘뱀장어 스튜’와 장편 ‘아름다운 지옥’이었다. 아름다운 지옥은 내가 좋아하는 성장소설의 형식을 띠었으며 2004년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꽤나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긴 중편이나 경장편 정도로 묶여 질 수 있을 것 같은, 혹은 따로따로 분리시켜 대여섯 편의 단편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을 두 권짜리 장편으로 늘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번듯하게 잘 생긴 아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반감되고 있는 듯한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꽃게무덤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과연 권지예는 단편에 능한 작가라는 사실을 새삼 통감할 수 있었다.

 

꽃게무덤이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뉴스를 봤을 때 나는 이미 이 작품이 동인문학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권지예의 단편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권지예의 단편들은 읽히는 재미는 물론 작가만의 깊고 뚜렷한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권지예 소설에 드러나는 세계관은 흥미롭고 독특하다. 그녀는 상반되는 두 성분의 대비를 통해서 인생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자와 여자, 불과 물, 젊음과 늙음, 탄생과 소멸 등. 극과 극에 서 있는 두 성분이 대립과 충돌을 거쳐 하나로 엮어지며 쓸쓸한 조화를 이룬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는 저절로 인생의 온갖 ‘맛’을 느끼게 된다.

표제작인 ‘꽃게무덤’이 그렇고,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뱀장어 스튜’가 그렇고, 수록작 가운데 가장 재미 있게 읽은 ‘비밀’, 가장 지루하게 읽은 ‘물의 연인’, 가장 충격적으로 읽은 ‘봉인’ 등이 모두 그렇다. 권지예만의 세계관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 외에 ‘여자의 몸 Before & After’, ‘우렁각시는 어디로 갔나’,’산장카페 설국 1km’ 등에서도 권지예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맛과 향기, 색깔과 주제를 느낄 수 있다. 자전적 소설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참 명쾌하고 시원스런 단편이다. 어쩌면 여기에 실린 소설 가운데 가장 권지예 다운 단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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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가 온다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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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의 소설은 제법 낯설다.

내용이 낯선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낯설다. 낯설고 무섭다. 무섭고 답답하다. 비릿한 생선을 날로 회쳐 먹는 기분이다. 날고기를 씹는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위압감에 눌려, 혹은 독특한 빛깔과 향기에 이끌려 우물우물 씹다 보니 한 접시를 다 비운 듯한, 그런 느낌이다.

회가 아니라면 마약 같다. 양귀비 잎사귀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중독이 되어 더 많이 더 빠르게 계속 씹어 먹듯, 그렇게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을 읽어 치웠다. 당연히 포만감이나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쉽게 소화가 안 되는 소설들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분노와 공포의 감정들이 수시로 교차되며 입 안에서 계속 씹혔다.

백가흠은 근래에 출현한 신인 작가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다른 색깔을 지닌 작가다. 다른 색깔이기 보다 짙은 색깔인 것 같다. 고만고만한 작가들 사이에 파묻히지 않고 강렬한 색깔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가다. 하얀 도화지에 제대로 먹칠을 할 줄 아는, 온전한 것들을 제대로 부수고 제대로 난자할 줄 아는, 뭔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줄 아는 작가다. 손에 잡힌 대상에게 치명타를 가할 줄 아는 작가다. 서슴없이 배를 가르고 내장을 파헤쳐 사방에 흩뿌릴 줄 아는 작가다. 아무리 퍼덕퍼덕 날 뛰는 생선들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꼼짝없이 살이 발리고 뼈가 추려져 접시 위에 놓여진다. 그의 손이 이끄는 대로 하나의 회감이 될 수밖에 없다.

백가흠은 오랜 시간 갈아온 자신만의 회칼을 능숙하게 휘두르며 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망쳐 놓는다. 아니 제대로 회를 뜨는 것이다.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이 사랑을 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난폭하고 위악적이며, 퇴행적이고 유아적이다. 그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 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폭력을 통해서 그러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슬픈 판타지다.

백가흠 소설의 남자들이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도 같은 한없이 넓고 포용적인 사랑이다. 그들은 순수하고 무한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기 보다는 기대고 쉴 수 있는 안식처를 갈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식처가 마련되지 않으니 폭력을 자행하는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여자가, 혹은 세상이 움직여 주지 않으니 남자는 답답하고 허전하다. 답답하고 허전하다 못해 위협과 공포를 느낀다. 강한 소유욕이 그 대상을 찾지 못 하자 허기로 돌변하고, 난폭함이 드러난다. 남자는 폭력을 휘두르며 허기에서, 공포에서,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렇게 하면 원하는 바를 얻을 줄 안다. 아니 그렇게 해도 결국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남자도 안다. 현실은 위태롭게 어긋나며 예정된 파국으로 치닫는다. 파국을 알면서도 타인에 대한 폭력을,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학대를 멈출 수 없다. 갈망하는 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유린당한 현실은 더욱 추악해 질 뿐이다. 그래서 상황은 늘 최악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반들반들하게 갈아 놓은 회칼처럼 날렵한 문장들과 사실감 넘치는 대사들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백가흠의 소설은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복어와도 같은 소설이다. 그러나 천천히 잘 씹어 먹으면 독특하고 강렬한 뒷맛을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반응이 극단으로 갈릴 수 있는 소설이며, 작가다. 독과 맛을 함께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 작가에게, 소설에게 중독이 될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새로운 힘을 지닌 새로운 국내 작가의 출현이 반갑다.

새로운 힘을, 과격할 정도로 새로운 힘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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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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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라는 이름만으로 가슴 설Ž던 지난 2년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점을 찾았다. 새롭게 쏟아지는 문예지들 속에서 보석처럼 숨겨진 박민규의 소설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니 그의 소설은 숨겨져 있지 않았다. 문예지에서 그의 이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는 새로운 소설로 이런 저런 문예지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지난 2년동안 내가 읽은 소설만 해도 무려 12편이다. 12편. 웬만한 작가라면 4년 정도에 걸쳐 발표했을 분량이다.
작가의 대단한 필력에 놀랐다. 그 필력에서 뿜어지는 거침없는 경쾌함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지금도 놀라고 있다. 기존의 틀이나 경향 따위는 전혀 상관않겠다는 듯 묵묵히 자신만의 색깔로 한국 문단의 한 모퉁이를 채색해가는 작가의 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하다. 마치 문학이라는 다소 까다로운 존재를 향해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편안하게 다가가고 있는 한 마리의, 도도새 같다.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확실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낼 줄 아는 작가다.
박민규의 소설은 기존의 문학 아우라를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지구만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믿고 있는 지구인들을 바라보며 냉소짓는 수성인처럼.

실제로 박민규 소설의 괴팍함은 기존 문단계의 비위를 건드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로 등단하기 전에 신춘문예 및 각종 공모전에 많은 단편소설을 보냈다고 한다. 그 중 본선까지 올랐던 작품은 '카스테라' 단 한 편 뿐이었다고 한다. 과연 그랬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보기에 그의 소설은 확실히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고, 마치 개복치를 맨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감히 자신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당돌한 소설로, 작가로 여겼을 것이다.
그랬던 그의 소설이, 신춘문예와 공모전에서 많이도 떨어졌던 그의 소설이, 그가 등단한 이후에는 이상문학상을 비롯한 국내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끊임없이 올랐고, 각종 평론가, 작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리스트에도 오른 것이다.
신춘문예 예심에도 못 올랐던 소설이 갑자기 급상승 기류를 타고 올해의 최고 소설로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것은 넌센스가 아닌가. 박민규 소설만큼이나 웃기고 황당한 이야기다.

지금의 박민규 소설을 바라보는 기존 문단의(어른들) 시선은 어떨까?
아직은 곱지 않은 듯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좀 기분이 나쁜 듯 하다. 그래도 점점 더 칭찬해 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박민규라는 작가는 이제 스타니까. 문학의 위기니, 소설의 위기니 하는 소리들이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지금의 시점에서 현문단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스타'일 것이다.

카스테라가 출간되자마자 저자 싸인본이 들어간 책으로 곧장 구입을 했다. 그리고 이미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어 나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간절한 바램이 생겨났다.
박민규가 도도새처럼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까부는 이들이 있으면 헤드락을 걸어 꼼짝 못 하게 하고,
기존의 문단과 절대 타협하지 않기를...
그 재미있고 슬프고 통쾌한 문장의 색깔을 잃지 않기를.. 
끝까지 너구리로, 기린으로, 개복치로, 대왕오징어로, 펠리컨으로 남아,
때로는 요구르트 같은, 때로는 카스테라 같은 소설을 계속 써 주길...
가난과 슬픔과 고독에 찌든 삼류 밑바닥 현대인들에게,
쉴 곳과 누울 곳을 마련해주는 갑을고시원 같은 소설을 계속 써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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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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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지영은 단편보다 장편이 더 좋은 것 같다. 예전에 무슨 문학상 최종 후보로 올랐던 공지영의 단편을 읽다가 도무지 지루해서(길어봐야 고작 열 몇 장에 불과할 단편이 지루하면 얼마나 지루하다고) 끝까지 읽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직전에 공지영의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었기에 그 단편에 대한 지루함의 강도는 더욱 크고 당혹스러웠었다. 이 후 또 어느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그녀의 단편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 지루했다. 도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이리도 지루하게 끄는가, 속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사이에 소설은 끝이 나 있었다. 이 후로도 문예지에 실린 소설들을 읽다가 공지영의 단편들을 가끔씩(결코 자주는 아니었다) 접하게 되었지만 모두 그냥 넘기고 말았다. 지난 해 가을 공지영의 새로운 단편집 ‘별들의 들판’이 출간되었을 때 살까말까를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의 단편에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장편은 달랐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근래에 읽은 한국 소설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쉽고 재미있게 읽힌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쉬운 소설이다. 그것이 소설의 최대 매력이자 장점이다.

제목부터가 쉽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다.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그녀와 그가, 혹은 그와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쉽게 읽히는 가운데 보편적인 감동을 느끼게 한다. 보편적인 감동이지만 카타르시스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감동이다.

사형을 언도받은 자와 자살을 시도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듯 하면서도 서로 닮아있는 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긴장을 풀고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어둠 속에서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아름다운 구름과 무지개와, 귀여운 동물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매직아이와도 같은 것이다. 아주 작은 각도의 차이지만 그 차이로 인한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칼의 날을 쥐면 그 자체가 나를 공격하는 대상이 되어 버리지만 손잡이를 쥐면 나에게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작은 차이를 깨달아 가는 과정인 것이다. 바로 인생이란, 삶이란 것이...

자살을 시도하는 자에게는 삶 그 자체가 절망이 되지만 사형을 언도 받은 자에게는 삶 그 자체가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친 문유정이라는 여자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사형을 언도 받은 정윤수라는 남자가 운명처럼 만나 상처로 얼룩졌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치유와 구원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아주 교훈적인 이야기다.

섣불리 쓰면 유치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은 유치함이 아닌 순수한 감동의 수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힘 있게 끌어간다. 물론 도를 벗어나는 듯한 신파도 보이긴 했다. 유정이 윤수에게 마침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의 죽음에 정말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는 것 마냥 그토록 애달파 한다는 설정은 읽기에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과잉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러니까 네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겠는가, 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만 다른 각도로 인생을 돌아보면 행복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 얼마나 쉽게 행복을 잡을 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것이다.

 

떡 한 조각을 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털어 놓을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는 대상을 만날 수 있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아니 그 짧은 순간들이 인생의 모든 행복이 되어 버렸던, 정윤수라는 남자의 인생을 통해 유정이, 그리고 우리들이 자각하고 반성해야 할 바는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을 찾는 일이란 그야말로 찻잔 속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그 안에 차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쉽고 간단한 것이다.

인생은, 삶은,

살아갈 수만 있어도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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