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무덤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의 ‘꽃게무덤’은 아홉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90년대 이후에 등단한 국내 작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권지예도 장편보다 단편에서 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인 것 같다.

꽃게무덤을 읽기 전에 내가 읽은 권지예의 소설은 단편 ‘뱀장어 스튜’와 장편 ‘아름다운 지옥’이었다. 아름다운 지옥은 내가 좋아하는 성장소설의 형식을 띠었으며 2004년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꽤나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긴 중편이나 경장편 정도로 묶여 질 수 있을 것 같은, 혹은 따로따로 분리시켜 대여섯 편의 단편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을 두 권짜리 장편으로 늘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번듯하게 잘 생긴 아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 그 아름다움이 반감되고 있는 듯한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꽃게무덤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과연 권지예는 단편에 능한 작가라는 사실을 새삼 통감할 수 있었다.

 

꽃게무덤이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뉴스를 봤을 때 나는 이미 이 작품이 동인문학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권지예의 단편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권지예의 단편들은 읽히는 재미는 물론 작가만의 깊고 뚜렷한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권지예 소설에 드러나는 세계관은 흥미롭고 독특하다. 그녀는 상반되는 두 성분의 대비를 통해서 인생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자와 여자, 불과 물, 젊음과 늙음, 탄생과 소멸 등. 극과 극에 서 있는 두 성분이 대립과 충돌을 거쳐 하나로 엮어지며 쓸쓸한 조화를 이룬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는 저절로 인생의 온갖 ‘맛’을 느끼게 된다.

표제작인 ‘꽃게무덤’이 그렇고,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뱀장어 스튜’가 그렇고, 수록작 가운데 가장 재미 있게 읽은 ‘비밀’, 가장 지루하게 읽은 ‘물의 연인’, 가장 충격적으로 읽은 ‘봉인’ 등이 모두 그렇다. 권지예만의 세계관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 외에 ‘여자의 몸 Before & After’, ‘우렁각시는 어디로 갔나’,’산장카페 설국 1km’ 등에서도 권지예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맛과 향기, 색깔과 주제를 느낄 수 있다. 자전적 소설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참 명쾌하고 시원스런 단편이다. 어쩌면 여기에 실린 소설 가운데 가장 권지예 다운 단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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